13. 최규석의 ‘송곳’ - 상

노동현실 폐부 찌르는 날카로움 불편하면서 정겨운 서사 특징 한국사회 노동쟁의 현장 묘사 연기법에선 노사 모두 섬기고 서로 보살피는 공생관계 지향

2020-07-14     유응오

최규석 작가의 ‘송곳’은 단적으로 평가하면 정겨우면서도 불편하다. ‘송곳’을 읽은 독자라면 ‘불편하다’  평가에 대해서는 수긍하면서도 ‘정겹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송곳’을 ‘정겹다’고 정의한 이유는 첫째, 작품의 시·공간적 배경이나 독자의 세대와 무관하게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서사, 즉,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이기 때문이고, 둘째, 서사장르의 구성주의 비평 요소인 주제, 구성, 문체, 인물, 사건, 배경이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고전적이기 때문이고, 셋째, 웹툰임에도 그림체가 이상무, 허영만, 이현세 등으로 대표되는 극화체의 계보를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나 그림체의 면에서는 웹툰의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인 아마추어리즘이 아닌 프로페셔널리즘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점이 이색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 작품이 불편한 이유는 두려워서, 번거로워서, 나랑 상관없어서 지나쳐버리는 혹은 무섭기 보다는 더러워서 피하는 한국사회의 노동쟁의 현장을 여과 없이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서사는 푸르미 마트의 이수인 과장이 노동운동가 구고신의 도움을 받아 노조지부를 설립하고 노조활동을 하는 게 주된 골자이다. 전쟁판과 같은 직장생활의 현실을 고발한다는 점과 ‘법구경’의 한 구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색적인 잠언이 수시로 쓰여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미생’과 유사하지만, 직장생활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두 작품은 상이하다. 직장생활을 바둑판에 비유하면서 인간관계란 무엇인가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미생’은 ‘이상적’인 반면, ‘서는 곳이 다르면 보는 곳이 달라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그 아비규환의 다툼 속에서 비열하기 짝이 없는 인간군상을 그린다는 점에서 ‘송곳’은 ‘현실적’이다. 그런 까닭에 ‘미생’을 읽고 나면 삶의 존재론적 비의(悲意)를 깨닫는 반면, ‘송곳’을 읽고 나면 삶의 관계론적 비의를 깨닫는다.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은 중층적이라는 것이다. 우선, 노사의 입장뿐만 아니라 자신의 경제적 이득 때문에 그 중간에서 갈팡질팡하는 입장, 나아가서는 노사 양측을 제3자적 시선으로 견지하는 입장까지도 충실하게 묘파함으로써 신자유주의라는 경제체제에서 한 개인은 얼마나 나약하고 추악한 존재인지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고, 다음으로, 노동자 측은 옳고 고용주 측은 그르다는 이분법적 구조가 아니라 선과 악으로 간단히 분류하기 힘든 입체적인 인물들의 이해관계가 어지럽게 얽혀 있고, 마지막으로 대단히 문학적인 비유와 은유와 환유와 역석적인 표현을 통해 ‘세상 모든 곳에서 누군가의 걸림돌’에 지나지 않았던 존재가 ‘가장 앞에서, 가장 날카로웠다가, 가장 먼저 부서져 버리고 마는’ 존재로 승화되고 있다.

작품 속 ‘죽어도 제 발로 나가야 되는, 누가 치워 주지도 않는 링’인 노동시장의 현실은 부처님이 설한 고용인과 피고용인 간 상호의무에 대해 상기하게 된다.
“고용인은 다섯 가지로 피고용인을 섬겨야 한다. 힘에 맞게 일을 배정하며, 음식과 급료를 제공하며, 아플 때 치료해주며, 맛있는 음식을 같이 나누고, 적당한 때 쉬게 해준다. 고용인의 다섯 가지로 돌봐야 한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일을 잘 처리하고, 피고요인을 명예롭게 하고 칭송한다.”

‘섬겨야 한다’와 ‘돌봐야 한다’는 서술어나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역할의 차이가 대등하지 않다는 이유로 전근대적인 노사관계에 지나지 않다고 치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카스트제도가 있는 계급사회에서 노동자는 노동한 대가로서 정당한 임금을 받을 권리가 있고 직장에서 작업도중 상해를 당했을 때 산재보상을 청구할 권리가 있다는 오늘날의 노동자 권리와 다르지 않은 가르침을 줬다는 사실만으로도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위 규정은 고용인과 피고용인이라는 지위에 따라 그 역할과 의무가 다르지만, 그 관계의 성격만은 수평적이라는 점에서 놀랍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상호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연기법에 따르면 인간관계란 서로 섬기고 보살피는 공생의 관계이지, 지위나 신분에 따라 착취하고 착취당하는 관계가 아닌 것이다.

유응오 소설가 arche442@hanmail.net

[1545호 / 2020년 7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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