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 쭌다에게 설한 붓다의 교설
더럽혀진 수행자와 깨끗한 수행자 구분법 “사문의 종류” 묻는 쭌다에 붓다는 “네 유형이 있다”고 설해 ‘길의 승리자’ ‘길을 설하는 자’ ‘길에 의지해 사는 자’가 수행자 ‘길을 더럽히는 자’는 계율 안 지키면서 지키는 척하는 위선자
쭌다(Cunda)는 말라(Malla)국의 수도 빠와(Pāvā)에 살았던 금세공인(kammāraputta)이었다. 그를 흔히 ‘대장장이의 아들’이라고 번역한다. 고대 인도에서는 금속을 다루는 자를 모두 대장장이(kammāra)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금・은・쇠 등 주로 어떤 금속을 다루는지로 더욱 세밀하게 장인의 종류를 구분했다. 쭌다는 금을 주로 다루는 장인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쭌다를 ‘금세공인’이라고 번역한다.
붓다는 만년에 꾸시나라(Kusināra)로 가는 길에 빠와에 도착하여 쭌다의 망고 숲에 잠시 머물렀다. 그때 붓다는 쭌다가 올린 ‘수까라맛다와(sūkarama ddava, 돼지고기)’라는 음식을 먹고 이질에 걸려 결국 꾸시나라에서 입멸하셨다.(DN.Ⅱ.126)
붓다는 입멸 직전에 아난다 존자에게 쭌다를 찾아가서 그를 격려하고 안심시키라고 당부했다. 다른 사람들이 상한 음식을 붓다에게 올려 이질에 걸려 돌아가시게 했다고 비난하는 것을 중지시키고, 쭌다가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해서였다. 아난다 존자는 붓다에게 베푼 공양은 큰 공덕을 지은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라고 쭌다를 위로했다. 후대의 불교도들은 붓다의 깨달음 직후에 수자따(Sujāta)가 올린 최초의 공양과 마지막으로 쭌다가 올린 공양이 최상의 공덕을 지은 것이라고 칭송했다.
‘숫따니빠따(Suttanipāta, 經集)’의 주석서에 의하면 쭌다는 음식을 황금그릇에 담아 내놓았다. 몇몇 승려들은 그 그릇을 사용했지만, 나머지 승려들은 그 그릇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런데 한 승려가 황금그릇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갔다. 쭌다는 어떤 승려가 황금그릇을 훔쳐가는 것을 알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오후에 그는 붓다를 찾아가서 이 세상에는 몇 가지 종류의 사문(沙門, samaṇa)이 있는가에 대해 여쭈었다. 쭌다의 질문에 답변한 것이 곧 ‘쭌다-숫따(Cunda-sutta)’이다. 이 경은 여덟 수(首)의 게송으로 이루어진 짧은 경이다. ‘숫따니빠따’의 제1 ‘뱀의 품(Uragavagga)’에 수록되어 있다. ‘쭌다-숫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쭌다] “광대한 지혜를 갖추신 성자, 깨달으신 분, 진리의 주인, 갈애를 여의신 분, 인간 가운데 가장 높으신 분,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분[調御者]께 여쭙니다. ‘세상에는 어떤 사문들이 있습니까?’ 말씀해 주십시오.”(Sn.83)
[세존] “쭌다여, 네 종류의 사문이 있고, 다섯 번째는 없습니다. 그 물음에 그대에게 답하겠습니다. 길의 승리자, 길을 설하는 자, 길에 의지해 사는 자,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자가 있습니다.”(Sn. 84)
[쭌다] “깨달으신 분께서는 누구를 가리켜 ‘길의 승리자’라 하십니까? 길에 대해 명상하는 자(maggajjhāyin)가 어째서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는 스승입니까? ‘길에 의지해 사는 자’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길을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Sn.85)
“의혹을 벗어났고 고뇌를 여의었고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포함한 세계를 이끄는 자, 이런 사람을 ‘길의 승리자’라고 깨달은 자는 말합니다.”(Sn.86)
“여기 최상의 것을 최상이라고 알고, 그 자리에서 법을 설하고 분별하고, 의혹을 벗어나 욕망이 없는 성자를 비구들 중에서 두 번째로 ‘길을 설하는 자’라 부릅니다.”(Sn.87)
“스스로 제어하고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허물없는 길을 따르며, 잘 설해진 진리의 말씀인 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을 비구들 중에서 세 번째로 ‘길에 의지해 사는 자’라 부릅니다.”(Sn.88)
“선행자(善行者)인 척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무모하고 오만하며, 자제력이 없고 말이 많으며, 위선적인 사람을 가리켜 ‘길을 더럽히는 자’라 합니다.”(Sn.89)
“이러한 것들을 꿰뚫어 배운 바가 많고 지혜로운 제자라면 그들이 모두 똑같은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가 더럽혀진 자와 더럽혀지지 않은 자, 깨끗한 자와 깨끗하지 않은 자를 똑같이 볼 수 있겠습니까?”(Sn.90)
어떤 비구가 황금그릇을 훔쳐간 사건은 붓다가 마지막 공양을 받았을 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쭌다-숫따’의 내용은 예전에 붓다가 쭌다의 공양초대를 받았을 때 있었던 일이다. 이 경에서 말하는 네 종류의 수행자란 길의 승리자(maggajina), 길을 설하는 자(maggadesaka), 길에 의지해 사는 자(maggajīvī), 길을 더럽히는 자(maggadūsī)이다. 앞의 세 종류의 사문은 훌륭한 수행자이지만, 네 번째 사문은 길을 잘못 가고 있는 나쁜 수행자이다.
첫째, 길의 승리자란 길의 완성자 혹은 길의 정복자라고도 한다. 즉 의혹을 건넜고 고뇌를 극복했으며 열반을 즐기고 탐욕을 버렸으며, 신과 인간의 세계를 이끄는 사람이다. 길의 승리자란 곧 아라한을 의미한다.
둘째, 길을 설하는 자란 최상의 것을 최상이라고 알고, 그 자리에서 법을 설하고 분별하고, 의혹을 벗어나 욕망이 없는 성자를 말한다.
셋째, 길에 의지해 사는 자란 스스로 제어하고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허물없는 길을 따르며, 잘 설해진 진리의 말씀인 길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을 일컫는다.
넷째, 길을 더럽히는 자란 계를 지키지 않으면서 지키는 척하는 사람이다. 즉 외형적인 모습만 사문일 뿐, 진정한 수행자가 아닌 자를 말한다. 가문을 더럽힌다는 것은 비구가 속가에서 악행을 저질러 다른 사람의 눈에 띄어 승가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황금그릇을 훔쳐간 비구가 바로 이에 해당된다.
이와 같이 붓다는 수행자 중에는 길을 잘 가고 있는 자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자도 있음을 쭌다에게 설했다. 주석서에 의하면 쭌다는 황금그릇에 대해 붓다에게 말씀드리지 않았지만, 그의 의심이 해결되었다고 덧붙이고 있다. 붓다가 쭌다에게 설한 가르침의 핵심은 모름지기 재가자는 계를 지키지 않는 비구나 비구니를 보더라도 자신의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며, 또 더럽혀진 수행자와 깨끗한 수행자를 구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81호 / 2021년 4월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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