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부석사에서 만난 좋은 벗
무엇이든 참모습 보려는 노력 필요 홍보담당자 시절 사귄 소중한 벗 서로 이해하며 좋은 인연 이어와 시선 같아도 관점따라 다를 수도
누구나 살면서 길잡이가 되어준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 인연으로 다른 좋은 인연을 만나 평생의 벗이 되기도 한다. 5월이 되면 이들이 자연스럽게 더 생각나면서 사는 일이 고맙고 복됨을 느낀다.
영주 부석사 근처에는 복지단체 홍보담당자와 기자로 만난 벗이 산다. 흔치 않은 만남이기도 하다. 현재 기자 생활을 접고 귀향해 살고 있다. 올해 사과 꽃을 보러 간다는 이유로 약속을 잡았다. 사실 번잡한 4월을 보내면서 벗이 보고 싶기도 했다.
부석사를 오르는 길은 일주문 보행로 공사가 한창이었고 양옆 사과밭의 사과꽃은 지고 있었으나 시 한 편에 담을 만큼은 남아 있었다. 벗은 길을 오르며 옛이야기를 꺼냈다.
기념일이 많은 5월이면 언론사에서 휴먼스토리를 찾는 경우가 많아, 미리 보도자료를 준비하고 보내곤 했다. 신입 기자였던 벗은 선배에게 내가 보낸 보도자료를 받고는 바로 전화를 했다. 홍보담당자를 찾길래 나라고 하니 못 믿는 듯 다른 직원을 바꾸라고 했다. 다른 기자들도 그랬듯 말이 어눌한 장애인이 홍보담당자라고 하니 고개를 갸우뚱하고 대화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경직되어가는 내 목소리에 당황했던 벗이다.
때마침 내가 통화하는 것을 본 직장의 최고 어른이 벗에게 “홍보담당자의 기준이 따로 있느냐, 장애인복지단체에서 장애인이 홍보담당자를 하는 일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며 근처로 취재하러 올 일이 있으면 차 한잔하러 오라했다. 전화 통화 후, 며칠 지나지 않아 벗은 사무실을 찾아와 어른과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었다. 벗은 장애에 대해 특별한 말은 안했지만 어른이 나를 대하는 행동이 장애인에 대한 수백마디의 설명보다 더 크게 다가왔었다고 했다.
참 고맙고 좋은 벗이다. 현재의 만남이 몇 생에 걸쳐 만들어진 인연이라고 하지만 구름 흘러가듯 흘려보내는 인연도 있다. 좋은 인연도 좋은 인연임을 알고 이어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보도자료를 보고 기자로서 전화를 한 벗이 답답함에 전화를 끊었거나 내가 왜 무시하냐면서 화를 냈거나 직장의 최고 어른의 사려 깊음이 없었다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났을 인연이다.
천왕문을 들어서니 연등도 없이 고요하다. 양옆 삼층석탑을 지나 범종루로 향하는데 한구석에 황토 인형이 반으로 깨진 항아리를 앞에 놓고 생각에 잠겼다. 마치 언론사에 보낸 보도자료에 ‘마음이 컸다’에서 ‘마’에 점 하나를 빼고 음에 점을 하나 보태 ‘미움이 컸다’로 된 오타를 발견하고 고심하던 사회초년생 시절의 내 모습 같았다.
무량수전에서 조사당으로 오르는 동쪽에 삼층석탑이 서 있다. 바로 앞 석등 위에는 불자들의 소원이 담긴 많은 돌탑과 동전들이 있다. 벗은 돌탑을 쌓고 간 사람들의 간절함이 보인다며 돌을 얹는다.
탑을 쌓는 벗의 곁에 섰던 부부가 범종루에 부처님오신날 현수막 하나만 걸렸을 뿐 아직 연등이 걸리지 않은 절 풍경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한 사람은 부처님오신날 준비를 아직도 안했다며 의문을 가졌고 한 사람은 어려운 세월에 맞춰가는 듯 보인다며 내려갔다.
삼층석탑의 1층 기단에 인형 동자승이 부석사 경내를 내려다 보며 앉아있다. 동자승의 시선을 멀리 따라가다 보니 내려가는 부부가 시야에 들어온다. 그 시선을 따라가던 친구가 말했다.
“아직 연등이 걸리지 않은 이유를 스님께 직접 듣기 전까지는 짐작일 뿐, 진짜 이유를 알 수 없지. 부부의 생각에 차이가 있듯이 우리 시선도 닿는 곳은 같을지라도 관점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수 있고, 사실과 다를 수도 있어. 그러니 무엇이든 바로 듣고 바로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겠나.”
오월의 첫날에 만난 좋은 벗은 어떤 상황에 부딪게 되었을 때 긍정과 부정의 단편적인 추측이 아니라 본래의 정황과 이유를 바로 알아야 참모습을 볼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