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장애 극복 명연주가·교육자로 남을 업적 쌓아 세계대전에서 오른팔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 연주에 대한 열망으로 작품 의뢰한 뒤 왼손으로 완벽히 소화 잠 안 자고 시력 잃도록 정진한 천안재일 아나율 존자 떠올라
아나율(아루눗다)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고 재주가 많아 큰 인물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던 청년이었다. 부처님의 명성이 고향 카필라성까지 전해지자 석가족의 많은 명문가 청년들이 부처님의 뒤를 잇겠다는 열망으로 서로 출가를 논의하기도 했다. 아나율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밧디야, 아난다, 바구, 캄필라, 데와닷다, 우팔리와 함께 출가를 결심했다.
‘금수저’로 태어나 항상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해 왔던 아나율에게 수행 생활은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탁발을 비롯해서 모든 일을 스스로 해야 했던 그는 출가하기 전 고생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새로 시작한 엄격한 생활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서 설법을 하실 때였다. 많은 제자들과 재가자들이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아나율은 슬며시 눈을 감았다. 힘든 수행 생활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아나율이 평소에도 잠을 이기지 못하는 습관 때문인지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나율아, 너는 깨달음을 얻고자 출가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법회에서 잠을 이기지 못하다니, 처음 출가할 때의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구나.”
부처님은 법회가 끝나고 아나율을 따로 불러 근엄하게 말씀하셨다. 아나율의 뛰어난 지혜를 이미 알고 계신 부처님은 그가 진정한 수행자가 되기를 기대하셨기 때문이다. 아나율은 그동안 항상 너그러운 시선으로 기다려 주셨던 부처님의 꾸짖음에 너무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오늘 이후로 저는 맹세코 부처님 앞에서 졸지 않겠습니다.”
아나율은 합장하며 부처님께 다짐했다. 그날 이후로 쉽게 눕지 않았다. 눕게 되면 쉽게 잠에 빠지게 되고 게을러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처님과의 약속, 또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나율은 항상 수면을 거부하고 눈을 감지 않고 고행을 거듭했다. 몇 달이 지나자 아나율의 눈은 부어오르고, 핏발이 서고 짓무르기 시작했고, 급기야 시력을 잃게 되었다.
부처님은 아나율에게 고행을 멈추고 중도를 지키며 수행하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는 부처님 앞에서 세운 원을 어기고 싶지 않아, 멈추지 않고 정진했다. 부처님은 명의를 시켜 아나율의 눈을 치료하게 했지만 결국 짓무른 눈으로 수행을 계속한 아나율의 시력을 회복하기란 불가능 했다.
아나율은 실명 하게 됐지만, 눈앞이 밝아지고 정신은 더욱더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더이상 눈도 아프지 않았다. 그는 육체의 눈은 잃었지만 법의 눈을 얻게 되었다. 천안(天眼)제일 아나율. 그는 이제까지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모든 것을 환하게 볼 수 있는 눈, 혜안(慧眼)을 가지게 된 것이다(증일아함 31권, 38 역품).
출가 후 익숙하지 않은 생활 때문에 잠을 이기지 못했지만, 처음 출가 했을 때의 열망, 그리고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을 눕지 않고 정진하였다는 것을 보면 아나율이 얼마나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는지를 알 수 있다. 베토벤과 스메타나가 청력 상실이라는 음악가로서의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작품들은 남겼던 것이 떠오른다. 스페인의 작곡가 로드리고도 유아기에 실명했지만 ‘아랑훼즈 협주곡’과 같은 불멸의 명곡을 남긴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아나율의 일화는 견디기 힘든 장애를 극복하고 명연주가로서, 교육자로서 후대에 길이 남을 업적을 쌓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1887~1961)을 떠올리게 한다. 철학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의 형이기도 한 그는 제1차 세계대전 중 부상으로 오른팔을 잃게 된다. 하지만 연주에 대한 열망으로 그는 왼손으로만 연주할 수 있는 작품들을 많은 작곡가들에게 의뢰했다.
그를 위해 작곡된 왼손만을 위한 여러 작품 중 손꼽히는 작품 하나가 모리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이다. 피아노 작품이 주는 가장 큰 매력은 풍부한 사운드에 있다. 라벨은 이 곡을 쓰면서 ‘양손을 위해 작곡된 곡보다 피아노 성부의 텍스처가 결코 엷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했다. 특히 악장의 구분 없이 연주되는 단악장 구조의 작품 속에서 어딘지 모르게 우울하고 어두운 기운부터 발랄한 재즈풍의 화려한 영감까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조화를 보여준다.
라벨 특유의 화성적인 긴장감과 리듬의 화려함은 중간의 알레그로 부분에서 돋보인다. 특히 왼손으로 피아노의 저음은 물론 최고 음역대까지 아우르며 오케스트라와 함께 주제를 주고받으며 연주하는 부분은 이 곡의 백미이다. 아마 연주 장면을 보지 않고 음악만 들으면 이 곡의 피아노 솔로 부분을 한 손으로만 연주하는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라벨은 이 곡을 쓰면서 까미유 생상의 ‘왼손을 위한 6개의 에튜드’를 열심히 연구하며 한 손으로만 연주된다는 핸디캡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비트겐슈타인은 1931년 이 곡을 지휘자 로베르트 헤거의 지휘로 비엔나 교향악단과 초연했고, 작곡가인 라벨의 지휘로 1933년 파리에서 파리 교향악단과 함께 연주했다. 같은 음악가로서 참전의 경험이 있다는 공감대 덕분일까, 라벨이 친구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작곡한 ‘왼손을 위한 협주곡’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비록 한 손으로밖에 연주할 수 없었지만 평생동안 연주와 교육을 계속할 수 있는 기틀이 되었다.
아나율에게 실명은 지혜의 눈을 얻기 위한 하나의 특별한 길이었을까.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강한 의지로 석가족의 명문가 자제들과 함께 출가하여 수행의 길을 택한 아나율의 깨달음의 과정, 수행 정진 중 실명한 제자를 위해 직접 바느질을 하며 더 많은 이들을 위해 공덕을 쌓는 즐거움을 이야기하신 부처님의 따뜻한 일화를 라벨의 선율과 함께 느껴본다.
김준희 피아니스트 pianistjk@naver.com
[1587호 / 2021년 6월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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