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이상적인 통치자상
전륜성왕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유효 대통령 선거 출마하는 사람 많아…권력욕 강렬함 알 수 있어 초기경전, 정법 통치 전륜성왕 중생문제 해결할 것으로 기대 식견·경험 등 자격 못 갖춘 자 출마, 기만행위와 다를 바 없어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이 많다. 기존의 정치인은 물론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한다. 권력에 대한 욕망[권력욕]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가를 엿볼 수 있다. 대선에 출마하는 것 자체를 비난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선거권과 피선거권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이 과연 최고 통치자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갖추었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유혹은 참으로 뿌리치기 어렵다. 깨달음을 증득한 붓다도 정치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증거를 초기경전에서 발견할 수 있다. ‘랏자-숫따(Rajja-sutta, 統治經)’(SN4:20)라는 경은 신화적 수법을 동원하고 있는 오래된 형태[古形]에 속한다. 이 경에서 붓다는 ‘법답게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라는 생각을 일으킨다. 그러자 마라 빠삐만(Māra pāpiman, 魔王波旬)이 등장하여 붓다에게 직접 통치하라고 유혹한다. 그러나 붓다는 마라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것이 이 경의 핵심 내용이다.
한때 붓다는 히말라야 산기슭의 초암에 머물고 있었다. 붓다가 홀로 명상하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살해하지 않고 살해하도록 하지 않고, 정복하지 않고 정복하도록 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도록 법답게 통치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SN.Ⅰ.166) 이 경에 대응하는 ‘잡아함경’ 제39권 제1098경 ‘작왕경(作王經)’에서는 ‘왕이 되어서도 살생하지 않고, 살생하라고 시키지도 않고 한결같이 법대로 행하고, 법 아닌 것을 행하지 않을 수 있을까?(頗有作王, 能得不殺, 不敎人殺, 一向行法, 不行非法耶)’라는 생각이 떠올랐다.(T2, p.288c)
당시 왕들은 법답게 통치하지 않고, 끊임없는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것을 보고 붓다는 ‘사람을 죽이지 않고 죽이도록 하지 않고, 정복하지 않고 정복하도록 하지 않고’ 통치하는 것은 불가능한가에 대해 고심한 것 같다. 붓다의 마음속에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는 것은 직접 통치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그때 마라 빠삐만(Māra pāpiman, 魔王波旬)이 세존께서 직접 법답게 통치하라고 유혹한다. 이처럼 마라는 붓다를 유혹해서 세속적인 권력을 지향하도록 유도한다. 그러자 붓다는 “빠삐만이여, 그대는 무엇을 보았기에 나에게 그렇게 하라고 말하는가?”라고 묻는다. 마라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세존께서는 사여의족(四如意足, cattāri iddhipādā)을 닦고, 많이 익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습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원하시면, 산의 왕 히말라야가 황금이 되길 결심만 하시어도 그 산은 바로 황금이 될 것입니다.”
사여의족을 사신족(四神足)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욕여의족(chanda), 정진여의족(viriya), 심여의족(citta), 사유여의족(vīmaṃsa)이다. 즉 올바른 이상에의 욕구와 정진과 마음을 통일한 선정과 사유의 지혜가 뜻대로 자유롭게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라는 붓다가 사여의족을 갖추었기 때문에 원하기만 하면 산을 황금으로 바꿀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마라가 황금의 재물로 붓다를 유혹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붓다는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마라의 유혹을 뿌리친다.
“황금으로 이루어진 산이 있어, 그 모든 황금이 두 배가 되어도, 한 사람에게도 충분하지 않네. 이렇게 알고 올바로 살아야 하리. 괴로움과 그 원인을 본 사람이, 어떻게 감각적 욕망에 빠지겠는가. 애착을 세상의 결박으로 알고, 사람은 그것을 끊기 위해 힘써야 하리.”(SN.Ⅰ.167)
이 게송의 핵심은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을 본 사람은 어떠한 세속적 욕망에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역에서는 약간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세존께서 파순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국왕이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러니 어떻게 왕이 되겠는가? 나는 또한 설산을 순금으로 변하게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변하겠는가? 그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설령 여기에 저 설산만한, 순금 덩어리가 있다고 하자. 어떤 사람이 그 금을 얻는다 해도, 그래도 만족할 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금과 돌을 동일하게 보느니라.”(T2, 289a)
니까야의 ‘통치경’과 아가마의 ‘작왕경’에서는 마라가 세존께서 정법으로 직접 통치하라는 유혹을 뿌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붓다는 정법 통치에 대한 확신을 포기하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기경전의 여러 곳에서 ‘전륜성왕(轉輪聖王, cakkavattin)’이 통치하는 이상사회에 대해 설하고 있기 때문이다. 붓다는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중생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한 붓다의 생각을 체계화시킨 것이 바로 전륜성왕의 이상적인 통치자상이다.
이 때문에 불교에서는 ‘전륜성왕’을 이상적인 통치자로 여긴다. 그가 다스리는 국가를 이상사회라고 한다. 그러나 이상사회를 현실에서 실현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륜성왕의 통치자상을 현실에서 구현하고자 했던 인물이 바로 인도의 아쇼까(Aśoka, B.C. 273-232 재위) 왕이었다. 그는 고대인도 마우리아(Maurya) 왕조의 세 번째 왕이었다. 그의 통치기간이 인도에서 가장 번영한 시기였다고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전륜성왕을 이상적인 모델로 삼기는 어렵겠지만, 전륜성왕의 정치철학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최고 통치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가 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확고부동한 정치철학이 있어야 한다. 아울러 국정 전반에 대한 풍부한 식견과 경험을 겸비해야 한다. 그리고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판단력, 통찰력, 결단력을 두루 갖추어야 한다. 이러한 정치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자기 자신과 국민에 대한 기만행위다. 물론 그런 사람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마성 스님 팔리문헌연구소장 ripl@daum.net
[1596호 / 2021년 8월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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