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지혜 ➂
깨달음이나 깨달음 당체마저도 공성 무소득이기에 구경열반 들고 아눗다라삼먁삼보리를 얻어 지혜도 얻음도 없다는 것은 주관과 객관의 초월을 뜻해
‘반야심경’의 지득(智得)에 관한 고찰을 더해 보기로 한다. 공성의 구경적 단계로 지혜와 얻음의 공성까지 설파한 것이다. 얻음은 지혜(반야)에 의해 얻어지는 해탈이나 열반을 지칭하는데, 그 순차에 대한 이해를 경전에 입각하여 해두어야겠다.
‘열반경’ 사상품(四相品)과 가섭보살품에 의하면 “해탈즉시여래(解脫卽是如來), 여래즉시열반(如來卽是涅槃)”이라 하여 해탈과 여래(깨달음의 당체)와 열반은 동일 개념이 된다. 완전한 자유(해탈)와 완전한 행복(열반)은 여래의 성품으로 동일 맥락이기에 그러하다. 굳이 순차를 분별하자면 해탈이 선인(先因)하고 열반이 후과(後果)로 온다고 할 것이다.
이 순차는 ‘중아함경’ 내 초기불교의 ‘열반경’에 보이는 “열반에는 발생원인[習]이 있나니, 발생 원인이 없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을 열반의 발생 원인이라 하는가? 해탈이 그 발생 원인이 되느니라(涅槃有習, 非無習. 何謂涅槃習, 解脫爲習)”에 연원하고 있다. ‘중아함경’ 내 ‘하의경(何義經)’에도 같은 내용이 개진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반야심경’에서 지득에 이어지는 “얻을 바가 없는 까닭에(以無所得故)”의 의미가 살아난다.
(4) 무소득(無所得)은 해탈이나 열반, 깨달음이나 깨달음의 당체인 여래마저도 공성임을 설한 것이다. 참으로 철두철미한 공성이며 지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불교는 이들 궁극의 개념마저도 공성이라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설하는 유일무이한 가르침인 것이다. 인류에게 이러한 가르침이 있음을 깊이 인식한 동서양의 선지식들은 그 놀라움을 불교에 대한 사랑으로 귀결지어 왔다.
더구나 무소득이기에 보살은 구경열반에 들어가고, 모든 부처님은 아눗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된다는 ‘반야심경’의 논리는, ‘금강경’의 즉비논리(卽非論理)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고 할 것이다. ‘금강경’의 즉비논리의 지혜성에 관해서는 ‘반야심경’의 지혜관 고찰을 마친 후에 살펴보려 하거니와, 여기서는 대표적인 즉비논리를 하나만 들어 본다.
“법이라는 관념은 법이라는 관념이 아니라고 여래는 설하였으므로, 법이라는 관념이라 말한다(所言法相者 如來說卽非法相, 是名法相).”
‘금강경’ 지견불생분에 나오는 말씀이다. 이러한 즉비논리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반야심경)’의 무소득이기에 구경열반에 들고, 아눗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다는 논리와 그 구조가 일치한다. 지혜의 반야사상에서 만나게 되는 논리적 특징이라 할 것이다.
(5)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無智亦無得)”은 주관과 객관의 초월로 이해할 수 있다. 청담스님의 해설이다(해설 반야심경, 보성문화사, 1993, 361쪽 이하). 지혜는 인식의 주관이고 얻음은 인식의 객관이기에, 지혜와 얻음이 없다는 것은 주관과 객관을 초월함이 된다. 깨달음을 성취하고 나면 우주 전체가 나이므로 따로 소득이 있을 것이 없다는 뜻이다. 주관과 객관의 합일이라 해도 된다.
스님은 주관의 초월과 관련하여 불교의 4지(智)를 거론하였다.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제8식 아뢰야식(장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고, 평등성지(平等性智)는 제7식 말라식(자아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며, 묘관찰지(妙觀察智)는 제6식 의식(분별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고, 성소작지(成所作智)는 전5식(인이비설신식)을 전환하여 얻는 지혜이다. ‘전환’은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전의(轉依)를 의미하는 불교 방법론의 주요 용어이다.
4지의 근본이 되는 지혜를 밀교에서는 법계체성지(法界體性智)라 하는데, 비로자나불의 지혜로서 법계의 체성을 이루는 지혜이다. 법계체성지는 특성적 지혜[別智]인 4지를 몸으로 하여 이루어진 일체적 지혜[總智]이다. 따라서 밀교는 대원경지를 동방 아축불의 지혜로, 평등성지를 남방 보생불의 지혜로, 묘관찰지를 서방 아미타불의 지혜로, 성소작지를 북방 불공성취불의 지혜로 보며, 중방 비로자나불의 법계체성지는 이들 4지의 별지를 융섭한 총지이다. 법계체성지는 주관과 객관의 초월 내지 합일 그 자체라 할 것이다.
(6) 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것(깨달음, 반야바라밀다)의 공능(功能)은 제일체고(除一切苦)와 진실불허(眞實不虛)로 표현된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다는 (중략) 능히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故知 般若波羅蜜多 (중략) 能除一切苦, 眞實不虛).”
박희택 열린행복아카데미 원장 yebak26@naver.com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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