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불교의 세속화 세속의 불교화

본질에서 벗어난 방법은 모두 ‘토끼뿔 거북털’ 우여곡절 끝에 현재 한국 절에선 우란분절이 제사 형식 정착 우란분절 본질은 스님들에 공양 올리기와 살아생전 선행하기 ‘절 두 번 할까 세 번 할까’ ‘올해도 또 할까’ 등은 모두가 허망

2021-08-17     신규탁 교수
남양주 봉선사는 지난해 9월 우란분절 행사를 통해 하안거기간 수행 정진한 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는 동시에 모든 스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법보신문 자료사진.

종교의 세속화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불교의 세속화도 그렇다. 처음 시작할 때의 본래 정신이 세월 속에서 변질될 경우, 이런 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대처해야 할까? 석가모니 생전 당시에 불교도들은 제사를 멀리한 것으로 경전은 증거한다. 그런데 긴 역사의 우여곡절 끝에, 현재 한국의 절에서는 ‘우란분절’을 제사 형식으로 지내고 있다.

연기적 관계로 인간과 세상을 설명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무명 쪽으로 물들어가는 연기도 있고, 밝음 쪽으로 맑아지는 연기도 있다. 지금 우리는 세속의 물결에 떠내려가는 것인가? 아니면 세속을 불교식으로 교화하는 것인가? 세속화와 본래성 사이에 종학(宗學)의 성찰이 필요하다.

8월에 성행하는 불교행사를 사례로 들어 위의 문제를 살펴보자. 음력 7월15일, 2021년의 경우라면 8월22일이 ‘우란분절’이다. 이때를 맞이하여 우리나라 모든 절에서는 ‘백중’ 또는 ‘우란분절’이라 하여, 죽은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한다. 합동으로 모신 위패단에 죽은 조상의 이름을 써서 붙이고, 그 앞에 각종 음식을 진설하고, 잔을 올리고 절을 한다. 이렇게 올리는 기도를 당일 하루에 마치는 경우도 있고, 3일, 또는 7일에 걸쳐 지내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7일마다 일곱 번을 치루는 ‘칠칠재’ 형식으로 하는 사례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불교 행사의 유래를 살펴보면, 여러 사상이 습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도교에서는 정월 보름을 상원, 칠월 보름을 중원, 시월 보름을 하원이라 하여 제사를 지낸다. 이때 올리는 제사 이름을 ‘초(醮)’라 하는데, 현재 대만이나 홍콩이나 싱가포르 등지에서 성행한다. 특히 음력 7월15일 중원절(中元節)에는 지관대제(地官大帝)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죄를 용서해주는 날이라고 하여, 조상을 좋은 곳으로 보내드리기 위해 제사지내고 도교대장경의 경문 한 편을 읽어드린다.

한편, 조선시대 민간의 풍습을 기록한 ‘동국세시기’에는 이날을 망혼일(亡魂日)이라 하여 보름달이 뜨면 채소, 과일, 술, 밥 등을 차려놓고 돌아가신 조상님들의 혼령을 불러 모셔 제사를 지낸다고 기록한다. ‘용재총화’에서도 죽은 조상을 기리는 날로 당시의 상황을 기록하고, 겸하여 농사일과 관련된 풍속도 소개한다. 여름 농사를 마무리 하는 ‘호미씻기’를 한다. 고생한 일꾼들에게 휴가를 주고 옷 한 벌 해 입히고 술과 음식으로 대접한다. 환갑을 좀 지낸 필자지만 어린 시절 고향집 경기도 이천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그럼, 불교에서는 어떤 유래가 있는가? 초기경전에는 안거가 끝나는 다음 날에 스님들께 공양 올리는 사례들은 나온다. 한편, 한자불교권에는 ‘불설우란분경’이 일찍이 유행했다. 번역한 축법호(266~313) 스님은 월씨(月氏)국 즉 박트리아 출신 승려였다. 이 경은 당나라 때의 화엄5조 규봉종밀(780~841) 스님의 ‘우란분경소’로 세상에 더욱 퍼졌다. 문헌학적으로 필자는 자세하게 번역했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여 ‘불교의 세속화’를 ‘종학’의 맥락에서 고민해보고자 한다.

목건련의 어머니는 살아생전 지은 죄의 뿌리가 깊어 사후에 아귀로 태어났다. 신통력을 얻었고 효성스런 목건련이지만 구제에 실패한다. 부처님께 방법을 여쭌다.

“그대 혼자 힘으로는 안 된다. 천신, 지신, 사마외도, 도사, 사천왕신들도 어찌하지 못한다. 시방의 여러 스님들이 7월15일 자자(自恣)할 때에, 음식과 물 긷는 그릇과 향유와 초와 침구류 등을 여러 대덕 스님들께 공양하라. 그렇게 하면 현생의 부모와 전생 7세 부모가 ‘해탈’한다. 만일 부모가 살아계시면 백 년 동안 복락을 받을 것이다.”

당시 인도 모든 스님들은 4월15일부터 약 90일간 ‘여름 안거’를 한다. 그 안거가 끝나는 날 스님들께 공양을 올린다. 공양을 받은 스님들은 “시주한 집을 위하여 선정에 들어 마음을 안정한 뒤에 공양을 받는다. 공양을 받으면 먼저 불탑 앞에 놓고 여러 스님들이 축원을 마치면 각자 음식을 받는다. 7월15일 자자(自恣)하는 날에는 4향 4과의 수행승을 비롯한 성문, 연각, 내지는 10지에 오른 보살들이 방편으로 비구의 모습을 나타내어 대중 가운데 있으면서 공양을 받는다.”

쌍 따옴표(“”) 속에 있는 내용은 한글대장경(월운 스님 번역)에 실린 ‘우란분경’을 인용한 것이다. 짧은 경전인데, 브라만교의 제사 문제, 사후의 윤회와 해탈의 관계, 성문승과 보살승의 관계, 탑 신앙의 양상 등, 다양한 문제를 함유하고 있다.

현행하는 우란분절의 모습과 다른 점을 한두 개 보자. 

첫째, 우란분절 때 올리는 공양을 받는 대상은 죽은 내 조상이 아니고 살아 수행하는 스님들이다. 둘째, 이때 공양을 받는 스님들은 90일간의 안거를 마치고 ‘자자(自恣)’를 거친 스님들이다. ‘자자’란 90일간 같이 공부하던 스님네가 모여서 서로 견(見), 문(聞), 의(疑) 세 가지 일에 대해 그 동안 지은 죄를 고백하고 참회하는 행사이다. 북방의 ‘사분율’이나 남방의 ‘근본설일체유부율’ 등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북방에 속한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사분율’을 수지한다. 참고로 조계종과 천태종을 제외한 종단에서는 결혼을 허용하는데, 어느 종단이건 결혼 상태라면 ‘사분율’ 수지는 논리적으로 모순된다. ‘사분율’에 따른 90일간의 ‘안거’와 ‘자자건도’를 통과한 스님들께 공양을 올리면, 그 공덕으로 돌아가신 부모를 윤회에서 벗어나게 해드릴 수 있고, 만약 부모가 살아계신다면 만수무강하시게 할 수 있단다.

당나라 때의 규봉종밀 스님은 분명하게 말한다. 우란분절의 본질은 승보(僧寶) 공양이다. 그리고 살아생전의 선행이다. 그 나머지는 모두 권교 방편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을 보자. 선망 조상의 이름을 적은 위패를 합동으로 붙여 놓고, 밥을 지어 큰 그릇에 담아 수저를 여러 개 꽂아놓고, 나물 반찬과 과일 올리고, 술이나 차 대신 맑은 물을 향로에 휘휘 저어 김 쏘여 올리고, 두 번 절한다. ‘갱물’도 말아 올린다. 유교식 제사의 혼합이다. 요즈음은 개나 고양이 위패도 붙인다.

‘효’ 정신과 실천이야 좋은 미풍양속이지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불교의 종학 맥락에서 살펴야 할 것이다. 아래의 질문들은 모두 ‘토끼 뿔’이요 ‘거북 털’이다. 우란분절의 본질은 스님들께 공양 올리기와 살아생전 선행하기이다.

절을 두 번 할까? 세 번 할까? 귀신은 촉식이라는 데 수저를 꽂아야 할까? 말까? 위패의 신위 수와 수저의 개수는 맞추어야 할까? 작년에도 했는데 앞으로 몇 년이나 더 지내야 극락 가실까? 위패단은 사람과 동물을 따로 해야 할까? 개나 고양이 본관은 어떻게 쓸까? 맑은 물 대신 차[茶]로 해야 더 불교적일까?

신규탁 연세대 철학과 교수 ananda@yonsei.ac.kr

[1597호 / 2021년 8월1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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