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걸음에 정성 다하고 깨어있다면 천리순례는 최고 수행”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 순례, 부처님 가르침 따라 공부하면서 내 본성 찾아가는 여정 사부대중 함께 천리수행 나서는 것은 불교 변화·쇄신의 계기 불교중흥·국난극복 원력 성취해 일체중생에 회향되길 축원
법보신문은 한국불교 중흥과 국난극복을 염원한 상월선원 만행결사의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앞두고 조계총림, 해인총림, 영축총림 방장 스님으로부터 천리순례의 의미와 당부의 말씀을 듣는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조계총림 방장 현봉 스님에 이어 8월25일 해인총림 방장 원각 스님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스님은 “사부대중이 함께 걷는 이번 순례는 또 다른 수행문화로 한국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이날 인터뷰는 김형규 법보신문 대표가 진행했다. 편집자
▲ 한국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을 발원한 상월선원 만행결사가 올해 9월30일부터 10월18일까지 19일간 삼보사찰 천리순례를 진행합니다. 방장스님께서는 이번 천리순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불교 수행과 문화의 전통이 서려 있는 삼보사찰을 순례한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입니다. 통도사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이 있으며, 송광사는 고려 16국사를 배출한 유서 깊은 사찰입니다. 그렇기에 이번 순례는 불법승(佛法僧) 삼보의 의미를 되새기고 스스로 재발심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불법승 삼보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갖춰져 있습니다. 본래 마음 바탕이 불보(佛寶)이고, 거기에서 지혜가 나오는 것이 법보(法寶)이며 그 자리에서 행동하는 것이 승보(僧寶)입니다. 삼보는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입니다. 복잡한 일상을 내려놓고 본성을 찾아가려는 이번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우리의 불성을 깨닫고 지혜롭게 살아가려는 지극한 신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사부대중이 함께 걷는 이번 순례는 또 다른 수행문화로 한국불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게 될 것입니다.”
▲불교에서 순례가 갖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순례는 나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내 본성을 깨닫기 위한 여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불교성지를 찾아가 참배하고 부처님과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을 따르고 순례하는 과정에서 화두를 챙기고 공부하는 모든 것이 결국은 내 본성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선원에서 한철 공부하고 난 뒤 해제를 맞아 만행을 떠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치입니다. 옛 선지식들이 가신 그 길을 따라가면서 스스로 정법에 어긋남이 없는지 살펴보는 시간입니다. 그런 점에서 순례는 스스로 공부 정도를 살피고 재발심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한국불교의 삼보사찰 가운데 해인사는 법보종찰이면서 수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사찰입니다. 한국불교에서 해인사가 갖는 위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해인사는 1946년 효봉 스님이 가야총림을 개설했고, 1967년 성철 스님이 해인총림을 개설하면서 종합수행도량으로서의 면모를 갖췄습니다. 고암, 성철, 혜암, 법전 스님 등 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셨던 선지식들이 주석했던 도량이었고, 해인총림의 선원, 율원, 강원을 거쳐 간 스님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비록 출가 본사는 다르더라도 해인총림에 들어와 수행하면 본사 대중과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도록 배려한 수행풍토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해인사는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이면서 스님들의 귀의처이기도 합니다.”
▲해인총림 초대방장을 지내신 성철 스님께서는 근현대 시기 한국불교의 쇄신과 변화를 위해 직접 백일법문을 열어 불교의 근본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역설하며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셨습니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도 현대 한국불교의 쇄신과 변화를 위한 새로운 결사라는 평가가 있습니다.
“성철 스님은 1967년 해인총림을 개설하면서 첫 동안거를 맞아 백일법문을 하셨습니다. 초기불교의 중도사상에서부터 중관, 유식을 거쳐 ‘신심명’ ‘증도가’ ‘돈오입도요문론’ 등 중요한 어록에 대해 강설하셨습니다. 그 가운데 핵심은 중도와 참선수행을 통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성철 스님이 백일법문을 통해 제시하신 것은 결국 한국불교 교단과 출가수행자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침체된 한국불교가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고, 출가수행자 스스로 수행을 통해 본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이 중심이 돼 진행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봅니다. 현대산업화로 종교의 역할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도 신도와 출가자 수 감소가 이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창궐한 코로나19로 문화적 변화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기존의 낡은 사고로는 이 같은 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불교중흥과 국난극복이라는 원력으로 사부대중이 천리순례에 나서는 것은 불교 변혁을 위한 수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들의 가르침을 새기고, 각자의 화두를 챙기면서 순례를 진행하다 보면 불교의 진면목을 찾게 될 것입니다.”
▲최근 출가자, 신도수 감소 등 한국불교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탈종교화가 심화되면서 장기적인 전망도 어둡습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한국불교 중흥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보십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현대산업화로 세상은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람들 사이에서는 갈등과 시비가 많고 혼란스럽습니다. 이러한 때 부처님 가르침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는 조건이 너무 좋습니다. 부처님의 수승한 법이 있고, 해인사와 같은 좋은 도량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가 열심히 수행정진 해야 하겠지만, 시대흐름에 맞는 변화를 통해 일반 대중들이 불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사부대중이 동참하는 삼보사찰 천리순례는 한국불교를 중흥시키고 불교가 세상에 다가가는 훌륭한 방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천리순례가 때론 고행일 수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마음을 비우고 밖으로 내달리는 정신을 쉬게 하는 큰 공부가 될 것입니다. 숲이 있으면 새들이 모여들기 마련입니다.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현대인들에게 불교가 귀의처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곧 불교중흥의 토대가 될 것입니다.”
▲방장스님께서도 과거 만행순례에 나선 것으로 압니다.
“선원장 스님들과 중국 선종사찰을 순례한 적이 있고, 개인적으로 인도, 미얀마, 태국, 스리랑카, 부탄 등 여러 나라의 성지를 순례했습니다. 최근에는 혜암대종사 탄신 100주년 행사 일환으로 스님께서 주석하셨던 여러 수행처를 답사한 적이 있었습니다. 성지를 참배하면서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삶과 가르침을 되새기고, 스스로 걸어온 길을 돌아볼 때 감회가 남달랐습니다. 특히 해인사 중봉암은 혜암 스님을 모시고 행자생활을 했던 곳인데, 지금은 터만 남아 있을 뿐입니다. 50여년 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을 때 스님을 모시고 공부하던 기억들이 생생하게 떠올라 전율을 느꼈습니다.”
▲순례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입니까?
“여러 불교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안목이 넓어지고, 새롭게 발심하는 계기가 됩니다. 부처님과 여러 조사님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되새기게 합니다. 무엇보다 순례는 본성을 회복하고 공부의 결과를 일체중생에게 회향하겠다는 원력을 갖게 합니다.”
▲전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께서는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의 각오를 말씀하신 것 같은데 천리순례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걸으면 될지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혜암 스님께서는 일종식(一種食)과 장좌불와(長坐不臥)를 실천하면서 두타행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스님께서는 그 생활을 고행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 자체가 일상이셨습니다. 스님께서 ‘공부하다 죽어라’고 하셨던 것은 결국 치열한 정진을 이어갈 때 비로소 궁극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경책이었다고 봅니다. 백척간두진일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아득한 난간 끝에서 한 걸음 더 내디딜 때 살아날 길이 열린다는 말입니다. 깨달음은 생사를 돌보지 않는 치열한 자리에서 꽃을 피웁니다. 비단 이것은 화두를 챙기는 동안에만 한정해서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행주좌와어묵동정 일거수일투족이 다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수행자이고 일상이 수행이 되는 것입니다. 행선은 전통적인 불교수행의 하나입니다. 내딛는 한 걸음 한걸음에 정성을 다하고 깨어있다면 천리순례는 최고의 수행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순례에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불성을 깨달아 지혜로운 삶을 살고, 국난극복과 불교중흥을 이룩하고 그 공덕이 일체중생에게 회향되길 축원합니다.”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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