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심검당 살구꽃

마음 비우는 그 자리가 곧 부처 경내서 만난 포교사와 반가운 대화  다래헌 앞서 떨어지는 살구꽃 보니  노스님 법문 떠올라 마음 다잡게 돼 부처님 말씀과 법문이 인생의 길잡이

2021-08-30     최명숙
봉은사 다래헌 앞에 핀 살구나무.

가을장마가 진다하더니 비가 온다. 잠시 비가 그친 틈을 타서 밖으로 나선다. 봉은사 경내의 풀숲에서 풀벌레가 울고 아직 지지 않은 연꽃잎에도 젖은 가을빛이 돈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지 간에 계절은 제 할 일을 해야겠다고 뚜벅뚜벅 순환의 걸음을 걷고 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만 얽히고설킨 세상살이에서 그리 안 되는 것이 사실이다.

예상보다 절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백중기도 회향을 준비하는 모습들이 분주하다. 전각마다 걸음을 멈춰 문밖에 서서 반 배로 삼배를 드리며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굳게 닫힌 판전 문 앞에는 비둘기 한 마리와 참새 여러 마리가 모여있었다. 비둘기는 작은 포대에 담긴 쌀을 열심히 먹고 있었다. 그 밑에서 참새들이 함께 먹자는 듯 비둘기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기도 하고 포대 가까이 날아보기도 하지만 비둘기는 미동도 없이 열심히 포대를 쪼기만 했다. 비둘기와 참새는 누군가 닫힌 문 앞에 불심으로 올리고 간 쌀을 먹고 사니 복 받은 인연이다. 판전 안에 모셔진 화엄경, 금강경, 유마경 등 3480여 점의 경판의 내용도 익히고 날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았다. 절 안에 살면서 보고 듣는 것이 부처님 법과 말씀이니 사람처럼 말로 표현은 못 해도 그 수행의 깊이는 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참새와 비둘기의 모습을 사진으로 몇 컷을 담았다. 비둘기와 참새를 지켜보던 나처럼 나를 지켜본 듯 노 거사님 한 분이 말을 건네셨다. 절 입구에서부터 전각을 도는 동선이 같았던 거사님이다. 

“한 컷 찍어줄까요? 아까 연꽃도 열심히 찍던데” “아∼아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엉겁결에 인사를 하고 보니 포교사셨다. 마스크 때문에 몰라뵈었다고 말하자 봄에도 만났었다고 답을 하셨다. 신체적으로 남과 다른 개성이 있으니 나는 기억을 못 해도 상대는 기억하는 일이 많다. 

포교사님과 다래헌 앞을 지나는데 배롱나무가 예쁘게 피었다. 포교사님은 배롱나무에게 꽃의 자리를 내주고 푸르게 서있는 살구나무도 봄에는 참 환하게 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하셨다. 나 역시 그랬었다. 봄이 되면 봉은사 영각 옆 홍매화를 보기 위해 찾곤 했지만, 살구나무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재작년 봄 영각에서 멀리 바라보이는 다래헌 앞 연분홍 꽃에 이끌려 가보니 살구꽃이었다. 바람결에 하염없이 지는 꽃잎을 바라보니, 아주 오래전 봉은사 선지식 초청 일요법회에서 “마음을 쉬게 하고 비우면 그 마음과 그 자리가 곧 부처다”라는 선에 대해 법문 하시던 노스님이 떠오르기도 했었다. 

언제나 찾아가면 우리 정서를 맑게 해주는 전통 사찰, 그 속에서 만나는 큰 스님의 법문은 바로 마음을 닦고 수행을 해야 함을 새기게 된다. 살구꽃을 보면서 노스님의 법문이 떠올라 마음을 다잡은 것처럼 일상사에서 부처님 말씀과 큰 스님 법문은 수시로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다 

포교사님은 언제나 바른 수행을 해야 함을 강조하며 봉은사 일주문을 나가셨다.

내년 봄에도 살구꽃 활짝 핀 경내에서 노 포교사님의 수행이야기를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시 한편을 카톡으로 보내드렸다.
 

심검당 살구꽃 

노스님이 심검당 댓돌에 앉아 넋 놓고 앉았더니
몇 해 피지 않았던 살구꽃이 환히 피었다.
대적광전의 잔잔하던 목탁 소리 그치고
사람들은 산 아래로 내려갔다

간혹 바람이 불어 살구나무를 흔들어대고
해는 서산을 넘어간다 하고
대웅전 범자문 지붕 위로 낮달이 올라왔다.

땅거미를 부르고 어둠을 놓고 날아가는 저녁새는
심검당 노스님의 오도송을 물고 숲으로 들어갔다.
달빛은 밤 깊도록 부는 바람과 놀고 나서
누구를 향해서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배를 하였다.

스님은 어디 가셨는지 살구꽃만 져서
심검당 뜰이 온통 하얀데
바람은 꽃잎을 떨구고 어디로 갔나
꽃은 지는데 아무도 없다.

 

최명숙 보리수아래 대표 cmsook1009@naver.com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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