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잘못 알아들은 소리

“짚세기불” 참구하더라도 깨닫는다 “즉심시불”이라는 스승 말을 “짚세기불”로 잘못 들은 제자 오랜 참구 끝에 깨달음 이뤄 언어는 달 아닌 손가락일 뿐

2021-08-30     이제열

불가에서 전해오는 흥미로운 얘기가 있다. 신라 말에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강릉에서 평창으로 생필품을 팔아 살아가는 젊은이가 있었다. 어느 날 대관령을 넘어 평창으로 향하는데 고개 중턱 길가의 숲속에서 눈을 감고 앉아 있는 노스님을 만나게 되었다. 청년은 호기심이 일어 물었다.

“스님, 이런 곳에 앉아 무엇을 하십니까?” 
“중생들에게 공양하고 있다네.”

청년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내 옷 속의 이와 벼룩이 피를 먹고 산다네. 내가 움직이면 그놈들이 음식을 못 먹을 게 아닌가?”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은 청년이 노스님에게 말했다.

“저도 스님처럼 출가하여 도를 닦는 스님이 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날 따라와 내가 시키는 대로 부처님과 나를 시봉하게나.”

청년이 노스님을 따라 도착한 곳은 동관음암이라는 작은 절이었다. 그날부터 청년은 시자가 되어 매일같이 물 긷고 빨래하고 밥을 지으면서 3년을 보냈다. 그러나 노스님은 시자에게 한 번도 법문을 들려주거나 수행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느날 시자가 용기를 내어 물었다. “부처는 어떤 것입니까?” 노스님이 대답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니라.”

그러나 글공부가 부족했던 청년은 이 소리를 “짚세기불”로 잘못 알아들었다. 짚세기는 짚을 꼬아 만든 짚신을 일컫는다. 시자는 의문에 휩싸였다. ‘부처가 무엇이냐고 여쭈었는데 짚세기가 부처라니 이 무슨 뜻인가?’ 그날부터 시자의 마음에는 오로지 이 의문 밖에 없었다. “어째서 짚세기가 부처인가?” 시자에게는 이 문제가 곧 화두가 되었던 것이다. 스승에 대한 신심과 법을 구하고자 하는 구도심이 가득했던 시자는 더 이상 노스님에게 그 의미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다만 그 뜻을 스스로 깨닫기 위해 짚세기불을 참구했을 뿐이다. 어느 때인가부터 시자는 아예 머리에 짚신을 머리에 이고 다니며 수행을 할 지경이었다.

그렇게 삼 년이 지난 어느날 나무를 해서 지고 산벼랑을 내려오는 중이었다. 그때에도 시자의 마음에는 온통 짚세기불로 가득하였다. 순간 시자의 발에 신고 있던 짚신의 끈이 뚝 끊어졌다. 그리고 이를 보는 순간 시자의 마음에 모든 의심이 풀리면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노스님이 말씀하신 ‘즉심시불’ 곧 ‘마음이 그대로 부처라’는 도리를 알게 되었던 것이다. 시자는 곧장 노스님께 달려가 “스승님 이 마음이 곧 부처입니다”하고 고하였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노스님은 아무 대답도 않고 “부엌에 솥이 잘못 걸렸으니 다시 걸어라”며 돌아섰다. 시자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솥을 다시 걸었다. 하지만 노스님은 되레 역정을 내면서 “이것도 솥이라고 걸었느냐? 네가 여기 들어온 지 몇 년이나 되었는데 솥도 제대로 못 거느냐?”며 계속 다시 걸라고 했다. 그럼에도 시자는 노스님의 말씀에 조금도 이의를 달지 않고 시키는 대로 솥을 고쳐 걸었다. 이렇게 무려 아홉 번이나 되풀이하였다. 그러자 이 모습을 본 노스님은 시자에게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무염(無染)’이라고 밝힌 뒤 깨달음을 인가하며 법명을 지어주었다. 바로 그것이 솥을 아홉 번 고쳐 걸었다 하여 받게 된 구정(九鼎)이라는 법명이다. 후에 불가에서는 이 구정 스님을 일명 짚신부처라고 불렀다고 한다.

불교에는 경전과 논리를 통해 들어가는 공부의 문이 있는가 하면 오로지 깊은 신심과 일관된 참구정신으로 들어가는 공부의 문이 있다. 이 가운데 후자는 때로 불교상식에 어긋난 언어나 행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구정 스님이 만약 스승 무염 선사가 가르쳐 준 “즉심시불”이라는 소리를 “짚세기불”이 아니라 제대로 알아들었다면 과연 도를 통할 수 있었을까? 그 신심과 구도심이라면 다른 소리를 들었더라도 마땅히 도를 통했겠지만 이런 극적인 깨달음은 얻기 어려웠을 것이다. 언어는 달이 아니라 손가락이다. 잘못 알아들은 소리가 때로 약이 될 수도 있는 경우는 불가에서나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599호 / 2021년 9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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