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악마의 소리
욕망 못 끊으면 악마 속삭임도 계속 빠삐야스는 욕망 부추기는 존재 중생 욕망 일으키면 수명 늘어 부처님 열반 직전까지도 유혹 대승에서 중생제도 돕는 보살
대부분의 종교 교리에는 악마나 마귀가 등장한다. 이들은 세상을 창조한 신의 뜻을 배반하고 세상에 악을 뿌리며 인간들을 자신들의 세력 하에 두려는 존재들이다. 기독교와 이슬람교에서는 악마와 마귀의 우두머리로 사탄 혹은 샤이탄을 드는데 이들 둘은 동일한 존재이다. 사탄, 샤이탄은 ‘대적자’라는 의미를 지닌다. 창조주 하나님을 적으로 삼는 자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기원은 신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 먼저 창조한 천사들 중 루시퍼라는 이름을 지닌 천사이다. 신은 이 루시퍼를 얼마나 총애하였던지 자신을 대신해서 하늘의 운행과 땅의 일부를 다스릴 권한을 부여한다. 그러나 루시퍼는 신의 지위에 오르겠다고 생각해 다른 천사들을 유혹해 역모를 꾀한다.
이를 알아챈 신은 노여워하며 루시퍼와 그 일당들을 하늘로부터 추방한다. 그리고 먼 미래 인간들을 심판할 때에 함께 심판하여 유황불 속에 가둘 것을 천명한다. 역모에 실패한 루시퍼와 일당들은 용서를 빌었으나 신은 이들을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자 루시퍼는 이에 대한 반감으로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단절시켜 신의 계획을 방해하겠다고 결심한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마귀가 마치 굶주린 사자가 먹잇감을 찾듯 세상을 돌아다니며 인간들을 사냥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격은 다르지만 불교에도 이와 같은 마귀가 존재한다. 불교에서는 마귀라는 말 대신에 마라(魔羅)라고 부른다. 마라의 이름은 빠삐야스(Papiyas)로 수많은 마라들을 거느린 마왕이다. 한역경전에서는 마왕파순(魔王波旬)이라 부른다. 마왕 빠삐야스는 기독교의 마귀와는 달리 선행을 하던 인간이다. 대신 자신의 감각적 쾌락과 욕망을 채우기 위해 선행을 한 것이다. 빠삐야스는 선행의 과보로 천상의 욕계 가운데에 가장 높은 하늘인 타화자재천 왕이 된다. 재미있는 것은 빠삐야스 역시 그 생김새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매우 잘 생겼다는 점이다. 전생부터 닦아온 선행의 결과로 훌륭한 관상을 지니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빠삐야스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중생들이 감각적 쾌락에 빠지거나 욕망을 일으키는 일이다. 중생들이 감각적 쾌락에 빠지고 욕망을 일으킬수록 그의 수명이 늘어나기 때문이란다. 반면 빠삐야스가 가장 싫어하고 두렵게 여기는 것은 중생들이 감각적 쾌락을 누리려 하지 않거나 욕망을 절제하는 일이다. 그런 중생들이 많을수록 빠삐야스의 수명은 줄어든다. 그러다 보니 빠삐야스는 부처님과 출가한 스님을 최대의 적으로 여긴다. 부처님이 세상에 출현하면 자신의 궁전이 무너지고 언젠가는 천왕의 지위에서 쫓겨나 지옥에 떨어지게 된다. 그래서 빠삐야스는 부처님을 그렇게도 유혹하고 괴롭혔던 것이다.
빠삐야스는 비단 부처님의 성도 전에만 부처님께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부처님 일생에 걸쳐 틈만 나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부처님을 찾아와 그럴듯한 소리로 유혹한다. 심지어 부처님의 대열반 직전까지 나타나 빨리 대열반에 들라고 종용한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때마다 “빠삐야스여, 나는 너의 정체를 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물러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며 빠삐야스를 꾸짖고 타이른다. 부처님은 한 번도 빠삐야스의 속삭이는 소리에 속거나 유혹당한 적이 없다. 한가지, 같은 불교임에도 대승에서는 이런 빠삐야스의 행위를 부정한다. 어떻게 완전무결하신 부처님에게 마왕 따위가 나타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빠삐야스가 마침내 부처님으로부터 교화 받아 중생제도를 돕는 보살로 나타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마왕 빠삐야스가 지닌 진정한 의미이다. 어느 때 부처님의 제자 라다가 부처님께 “무엇이 마라입니까?”하고 묻자 부처님은 “오온이 곧 마라이다”라고 답하셨다. 부처님의 이 같은 말씀에 따르면 마라 빠삐야스는 다른 존재가 아닌 중생들의 몸과 마음인 오온 즉 색·수·상·행·식이라는 것이다. 왜인가? 이 오온은 끊임없이 감각적 쾌락을 위한 욕망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빠삐야스는 외적인 악마가 아니라 중생 자체를 이루고 있는 내적인 악마이다. 그렇다면 마왕 빠삐야스의 유혹어린 소리들도 우리 중생들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생들이 감각적 괘락을 향한 욕망을 끊지 못하면 악마의 속삭임도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00호 / 2021년 9월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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