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제79칙 역촌전다(歷村煎茶)

선원 내 모든 행위는 수행이자 깨침의 작용 ‘조사서래의’ 물음에 ‘차시’를 든 건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직접적 대응 질문과 답변 일종의 기관장치일 뿐 얽매이지 않고 초월하는 선기 필요

2021-09-13     김호귀 교수

역촌화상이 어느 날 차를 달이고 있노라니, 승이 물었다. “조사서래의란 무엇입니까.” 역촌화상이 차시(茶匙)를 들어보였다. 승이 말했다. “그 차시가 바로 조사서래의라는 것입니까.” 역촌화상이 차시를 화로의 불속에 던져버렸다.

양주역촌(襄州歷村) 화상은 남악회양의 제6대 후손으로 임제의현(臨濟義玄: ?-867)의 법사이다. 조사서래의(祖師西來意)는 중국선종의 초조인 보리달마가 중국에 도래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으로 대표적인 선문답에 속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주제를 들어 선문답으로 활용하고 있는 승의 안목이 기대된다. 역시나 그에 대한 답변으로 제시된 역촌화상이 보여준 행위도 또한 흥미롭다. 보리달마는 남북조시대에 중국에 도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지극히 인격적이고 수수한 이미지로 다가왔던 달마의 위상은 이후 수대와 당대를 거치면서 선법이 크게 변모하였다. 달마는 이제 인격적인 측면을 초월하여 선종의 초조가 지니고 있는 권위와 함께 신비로운 측면까지 겸비하였는가 하면 나아가서 일반불자들에게 영험을 부여해주는 신앙의 중심으로 포대화상과 함께 시대가 지날수록 그 위상이 제고되었다.

이런 점에서 본 문답은 당나라 때 당시 선종이 크게 발전해가고 있던 시대의 배경으로 보아 시의적절한 주제이기도 하다. 본 문답의 시대에 해당하는 당 말기 곧 9세기 후반에는 이와 같은 선문답이 대단히 활성화되어 일종의 공안선(公案禪)의 유행을 촉진하였다. 공안선이란 선문답을 주제로 토론하고 사유하며 납자를 제접하고 법거량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가는 선수행법을 말한다. 그리고 이 무렵에는 가장 이상적인 인물을 조사로 간주하고 있는 조사선(祖師禪)의 보편화로 인하여 선수행과 깨침을 일상의 살림살이에서 성취하고 전개하는 양상으로 부각되어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원에서 공양을 하고 차를 마시며 작무(作務)를 하고 설법을 하는 일련의 행위가 그대로 낱낱 수행의 행위로 간주되었는가 하면 더욱이 깨침의 작용으로까지 인식되고 있었다.

역촌화상이 차를 내고 있는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의 모습일 뿐만 아니라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모습의 투영이기도 하다. 마침 그곳을 방문했던 승이 가장 일반적인 주제를 내세워 조사서래의에 대한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을 하자, 역촌화상 또한 그에 상응하는 대꾸를 보여주었다. 현재 그 자리는 차를 마시는 곳이므로 차를 달이는 화로와 그 화로에 사용하는 찻주전자와 숯과 찻물과 차완과 차시와 숙우와 퇴다기 기타 다구(茶具)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이 자연스러운 상황이었다. 다반사로 법거량에 활용되고 있는 공안에 해당하는 조사서래의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인 까닭에 무엇 하나 특별할 것이 없다. 때문에 역촌화상은 승의 질문에 걸맞는 행위로 응수하고 있다.

차를 내고 있는 까닭인지라 아무런 말을 하지 않고, 마침 오른손에 들고 있던 차시를 가지고 그것이 바로 조사서래의라고 암시해준다. 그것은 무언의 지시(指示)였고, 지극히 명백한 반응이었으며, 참으로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만약 그때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고 있는 중이었다면 찻잔을 가지고 응수했을 것이다. 응수해주는 물건이 무엇이건 간에 상관은 없다. 지금 바로 문답하고 있는 그 상황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행위 자체가 중요시된다. 그래서 차시로 질문에 응수했던 점이 승에게는 참으로 의외로 다가왔다. 조사서래의와 차시는 관련이 없기로 말하면 십만팔천 리나 떨어져 있다. 그러나 관련이 있는 것으로 말하자면 다름이 아니라 차를 마시고 있는 행위 그것이 곧 조사서래의와 일반이라는 의미로서, 역촌화상의 대응은 지극히 실제적이며 현실적이고 직접적이고 즉물적이다. 그 상황에서 승은 어떤 반응을 보였던 것일까. 조사서래의가 무엇이고 소리를 듣고 해탈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일종의 장치로서 기관(機關)일 뿐이다. 기관을 활용하면서 거기에 얽매이지 않고 초월하는 선기가 필요함을 일러주고 있다. 그런데 승은 역촌화상에게 차나 얻어 마셨는지 모르겠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1호 / 2021년 9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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