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소리와 수행법

경전 내용 알고 독송해야 지혜 된다 소리 유무에 따라 수행법도 달라 염불, 독송이 소리 안내는 수행법 경전 제목 등 일부만 반복하기도 경전 가르침에 대한 이해는 필수

2021-09-23     ​​​​​​​이제열

수행은 불교의 이상을 성취하는 필수 요건이다. 그러다 보니 방법도 간화선, 묵조선, 위빠싸나, 까시나, 절, 염불, 경전독송, 다라니 암송, 기도 등으로 다양하다. 그런데 이 같은 수행방법들의 형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두 가지 부류로 분류된다. 하나는 소리를 내지 않는 수행법들이고, 또 하나는 소리를 내는 수행법들이다.

위에 열거한 방법들 가운데 소리를 내지 않는 수행법은 간화선, 묵조선, 위빠싸나, 까시나, 절이고, 소리를 내는 수행법은 염불, 경전독송, 다라니암송이다. 이들 가운데 소리를 내는 수행법에서는 되도록 고성으로 수행할 것을 요구한다(물론 그렇다고 악을 쓰거나 혐오스러운 소리를 내서는 안 된다). 이렇게 두 가지 수행법들이 모두 삼매를 얻기 위한 방편들이지만 형식은 전혀 다르다.

이번 호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소리를 내는 수행법 가운데 경전의 독송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겠다. 경전 수지 독송이 수행의 중요한 방법으로 강조된 것은 초기불교경전보다는 대승불교경전에서이다. 대승경전에서는 부처님이 경을 설하시면서 혹은 경을 다 설하시고 나서 그 경전의 위대성과 함께 수지독송의 공덕에 대해 말씀하신다. 경전의 수지독송은 모든 서원이 만족해지며 마침내 부처의 지위에 오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경전수지 독송은 수행자나 불자들에게 일반화된 수행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경전 수지 독송은 눈으로만 읽어 내려가는 묵독(默讀)보다는 독송하는 당사자의 귀에 충분히 들을 수 있는 성독(聲讀)을 권장한다. 눈여겨볼 것은 경전을 독송하는데 있어 반드시 경전 전체를 모두 독송할 필요는 없다는 점이다. 물론 경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독송한다면 더욱 좋은 일이지만 좀 더 용이한 방법으로 경전의 일부, 또는 한 구절을 선택해 집중적으로 암송하라는 것이다. 경전에서 부처님은 경전을 수지독송하는 법으로 이와 같은 방법을 권하고 계신다.

‘금강경’의 경우만 보더라도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 전체 혹은 한 구절이라도 읽거나 외우거나 받아 지니거나 남을 위해 전해 준다면 그 공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고 나와 있다. 이러한 경전의 수지 독송법 가운데에 특별히 ‘경제신앙(經題信仰)’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는 경의 제목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거나 수행법으로 택하는 것을 가리킨다. 가령 ‘금강경’ 전체를 외우거나 내용의 일부를 암송하는 대신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제목을 염불하듯 집중적으로 암송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방법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일본에서 파생된 에스지아이(SGI)이다. 이 단체에서는 ‘법화경’을 신봉하는데 경전의 제목을 암송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는다. 흔히 사이비 불교로 오해하고 있는 ‘남묘호렌게쿄’이다 여기서 ‘남묘호렌게쿄’란 ‘나무묘법연화경에 귀의합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경제신앙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단체는 서울 잠실에 위치한 불광법회이다. 이 단체는 반야부 경전의 제목을 수지독송하는 법으로 제법의 실상을 깨닫도록 유도한다.

이와 같은 경전 수지 독송 수행법과 관련한 방법들은 그 경전 전체를 독송하건, 일부를 독송하건, 경전의 제목만 암송하건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이 있다. 경전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이다. 물론 경전의 의미를 전혀 모른 채 그냥 독송만 한다 해서 공덕과 이익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어떤 수행이건 정성과 일념이 중요하다. 큰 소리로 경전을 읽거나 외우면 삼매가 현전하여 나름대로 득력(得力)을 하게 된다. 여기에 경전의 의미를 알고 독송한다면 삼매와 득력은 지혜로 전환되어 깨달음을 얻는데 큰 역할을 한다.

초기경전인 ‘법구경’에서 부처님은 많은 가르침을 기억하는 것보다 하나의 게송이라도 바르게 이해하고 기쁜 마음으로 암송하면 모든 신들이 그 소리를 듣고 환희하며 성스러운 지위에 올라간다고 설하셨다. 실제로 부처님 당시의 비구 에끄다나도 단 하나의 게송으로 아라한과를 얻었다. 홀로 숲속에 앉아 큰소리로 하나의 게송을 거듭 암송하자 숲의 신들이 환호하고 찬탄했다고 전해진다. 어쩌면 소리를 안 내는 수행보다 소리를 내는 수행이 더 용이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열 법림선원 지도법사 yoomalee@hanmail.net

[1602호 / 2021년 9월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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