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순례 4일차] 강풍 몰아치는 지리산 시암재에 오르다

천은사서 원만회향 기도…가파른 오르막길 올라 지리산 속으로 이른 새벽부터 진행된 행선에 물집·돌풍 몰아쳐도 순례는 계속

2021-10-04     김현태 기자
천리순례 4일차는 모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새벽에 시작됐다.

순례길에 장애가 오는 것은 필연이다. 그러나 장애는 신심을 더욱 증장시키는 양약일 뿐만 아니라 원력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도반이다.

상월선원 만행결사 삼보사찰 자비순례 3일차 일정이 원만히 진행됐다. 순례단은 이날 화엄대종찰 화엄사를 출발해 지리산을 품은 정토세계 천은사를 참배하고 해발 958m의 시암재에서 바랑을 풀었다. 순례는 평소보다 30분 이른 3시30분에 시작됐다. 3일간의 연휴로 차량을 이용해 지리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많은 까닭에 순례단의 안전을 위한 결정이었다.

30분의 단잠을 포기해야 했지만 모처럼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는 맑고 깨끗한 새벽이었다. 지난 이틀간 섬진강이 피워낸 ‘안개’라는 장애를 만나 마치 빗속을 걷는 것처럼 습한 발걸음을 옮겨야 했기에 모처럼 만의 상쾌함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지리산 천은사에 도착한 순례단은 아침공양 후 천은사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천은사에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원만회향을 기원하는 기도를 접수했다.

새벽 5시30분 천은사에 도착한 순례단은 아침공양 후 천은사 참배의 시간을 가졌다. 천은사는 신라 때 창건된 고찰로 고려 충렬왕 때는 ‘남방제일선원’으로 불릴 만큼 수행처로 명성이 높았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란을 겪으며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1610년(광해군 2년) 혜정선사가 소실된 가람을 중창하고 이어 1774년(영조 50년) 혜암 스님에 의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극락보전과 아미타후불탱화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날 상월선원 회주 자승 스님은 천은사에 삼보사찰 천리순례의 원만회향을 기원하는 기도를 접수했다. 천은사 주지 대진 스님은 “삼보사찰 천리순례 대중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주어 기쁘다”며 “대원력의 발걸음이 원만히 성취되고 그 상서러운 기운이 천은사로 이어져 도량이 더욱 발전하길 기원한다. 순례기간 내내 평안하길 기도하겠다”고 인사했다.

굽이굽이 휘어진 가파른 고갯길을 오르는 삼보사찰 천리순례 순례대중.

순례단이 천은사를 떠날 즈음 진행팀의 무전기에는 숙영지의 상황이 쉼 없이 전달됐다. ‘강풍’이라는 장애를 만나 폴대 20여개가 부러지는 등 텐트를 세우는 게 쉽지 않다는 내용이었다. 반면 순례단에게는 그동안 발걸음을 무겁게 했던 ‘늦더위’를 날려 준 고마운 존재였다. 굽이굽이 휘어진 가파른 고갯길을 3시간여만에 올라 숙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진행팀은 바람에 맞서 텐트를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암재에 도착한 순례대중이 손을 더해 숙영지는 비로소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

10월4일 삼보사찰 천리순례 4일차 일정은 축원과 예불을 모신 후 부처님께 시암재 도착을 고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4일차 회향식을 마친 순례대중 일부가 서둘러 구급차로 향했다. 습한 강가를 걷다가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고된 여정 속에서 발가락들이 하나둘 부풀어 오르고 급기야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도고마성(道高魔盛)이라고 했다. 도가 높아질수록 마구니가 극성을 부리듯이 순례에 대한 신심이 단단해질수록 시련도 커지는 법이다. 상처가 치유되면 더욱 단단해지듯 순례기간 이들 마음의 신심과 원력도 더욱 굳건해질 것이다.

숙영지에 도착할 때까지 진행팀은 바람에 맞서 텐트를 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한편 삼보사찰 천리순례 5일차는 시암재를 출발해 해발 1079m의 성삼재를 넘어 숙영지인 일성콘도까지 26km 구간에서 진행된다. 3·4일차 순례에 함께했던 주호영 국회의원은 “많은 스님 그리고 불자들과 함께 걸으며 사찰을 참배할 수 있어 좋았다”며 “국정감사 일정으로 계속해 함께할 순 없지만 휴일마다 참석해 함께 걷고 수행하며 삼보의 의미를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구례=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1604호 / 2021년 10월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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