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구니회, 불교유적 가톨릭 성지화 대응 대책위 출범

10월14일, ‘주어사·천진암 종교공존위원회’ 구성 “광주시 재검토 환영…가톨릭 입장 없어” 지속 대응

2021-10-14     남수연 기자

전국비구니회가 광주시의 가톨릭성지순례길 추진을 계기로 불교유적에 대한 가톨릭 성지화를 근절시키고 다종교사회의 공존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전국비구니회(회장 본각 스님)는 10월14일 서울 전국비구니회관 회의실에서 전국비구니회 집행부와 관련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좌담회를 갖고 ‘주어사·천진암 종교공존위원회’를 구성했다. 이 자리에서는 광주시의 가톨릭 성지순례길 추진이 가능했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이와 유사한 사례들에 대한 향후 대책이 논의됐다.

좌담회에는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부회장 광용,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장 수경, 사회복지부장 도선, 총무국장 설해, 교육국장 유정, 문화포교국장 설경 스님이 참석했다. 특히 주어사 가톨릭 성지화에 지속적인 대응을 펼쳐온 아리담문화원장 송탁 스님과 민학기 변호사, 천진암과 주어사의 역사를 꾸준히 알려온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이 참석해 진행 상황과 사례를 소개, 불교유적에 대한 가톨릭성지화 움직임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전국비구니회장 본각 스님.

본각 스님은 좌담회에 앞서 인사말을 통해 “가톨릭이라는 타종교와 맞닿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지만 책임있게 이끌어 가야 하는 만큼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논의하고자 자리를 마련했다”며 “불교유적에 대한 가톨릭성지화 움직임에 대한 대응은 하루 이틀에 끝날 문제가 아니며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해법을 찾아야 할 사안”라고 평가했다. 본각 스님은 이와 함께 “지금까지 불교계, 특히 비구니스님들이 이 문제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자성의 마음이 크다”며 “연구하고 고민해오신 분들을 통해 역사를 바르게 알고 지킨다는 마음으로 이 문제에 접근할 것”이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가톨릭과 대립하기 보다는 서로를 존중하며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본각 스님은 “불교성지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의무인 만큼 한번 시작한 활동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힘을 키워가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주어사·천진암 종교공존위원회(이하 공존위)로 명명된 대책위원회는 이날 회의 참석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됐다. 공존위는 10월26일 ‘가톨릭 불교역사 지우기’를 주제로 이병두 원장의 특강을 갖고 불교유적지의 가톨릭성지화 추진 현황과 문제에 대한 공유를 시작으로 11월 29일에는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포럼도 개최한다. 가까운 시일 내에 천진암과 주어사에 대한 현장 답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한국비구니승가연구소장 수경 스님은 “가톨릭 성지순례길 조성을 추진했던 광주시가 전면 재검토를 약속했지만 아직 가톨릭 측의 입장은 나온 바가 없다”며 “천진암을 계기로 이와 유사한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밝혀 대책위의 활동을 강조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대책위 구성에 앞서 이병두 원장은 “2014년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가톨릭교황이 해미읍성을 방문하면서 해미읍성이 사실상 가톨릭 성지로 고착된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가톨릭은 불교유적을 포함 다수의 역사유적지를 대상으로 ‘가톨릭 성지화’를 지속하고 있다”며 “이러한 가톨릭계 움직임의 특징을 정확히 이해하고 지자체 등 행정기관과 공조하며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천진암과 주어사 뿐 아니라 전국에서 가톨릭 성지화 움직임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지적한 이 원장은 “가톨릭 전래 이후 순교자가 한 명이라도 나온 지역이라면 성지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아리담문화원장 송탁 스님.

천진암과 인접해 있는 주어사에 대한 가톨릭계의 성지화 움직임에 대한 아리담문화원장 송탁 스님의 대응 사례도 주목됐다. “가톨릭계는 이미 천진암 인근 토지 6만여평을 사들여 사실상 사유화돼 있는 상태에서 인접해 있는 주어사만이라도 같은 사태가 벌어지는 것을 막자는 취지로 주어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송탁 스님은 “주어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이웃종교인들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봤다”며 “대화는 반갑게 이뤄지지만 논의를 하다 보면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송탁 스님은 “가톨릭계의 움직임은 결코 개인이 아닌 조직적이고 지속적인 활동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주어사 만이라도 가톨릭 성지로 왜곡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학기 변호사.

송탁 스님과 함께 주어사 대응 활동을 펼쳐온 민학기 변호사는 “천진암은 법률적 기준으로 볼 때 이미 가톨릭계의 소유인 만큼 이를 불교유적으로 되찾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며 “가톨릭계와 대립하기보다는 종교 평화, 종교 공존을 화두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라고 제안했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1605호 / 2021년 10월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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