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진관사 태극기’ ‘색난 스님 대표작’ 보물로 일괄 지정
문화재청, 10월25일 발표
사찰이 일제강점기 중요한 독립운동 근거지였음을 보여주는 ‘서울 진관사 태극기’와 조선의 미켈란젤로 ‘색난 스님의 대표작’이 나란히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됐다.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이 10월25일 성보를 보물로 대거 지정했다. 지정 대상은 ‘서울 진관사 태극기’(1점), ‘광주 덕림사 목조지정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불상 26구, 발원문 3점, 후령통 2점), ‘고흥 능가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불상 23구, 불상대좌 3점, 발원문 18점, 후령통 20점), ‘김해 은하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불상 21구, 발원문 2점),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불상 3구, 보살상 4구, 불상대좌 3점)이다.
일장기 위에 태극을 덧칠해 만든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일본에 대한 극대화된 저항을 보여준다. 태극기 곳곳에 총알에 찢긴 듯한 구멍이 뚫려있고 끝자락은 불에 타, 1919년 3·1운동 현장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해 6월~12월 사이 발간된 신문 5종 19점도 태극기에 쌓여 함께 발견됐다. 조성자는 진관사와 진관사 마포 포교당을 근거지로 삼아 항일운동을 전개했던 백초월 스님(白初月, 1878~1944)으로 추정된다. 2009년 5월27일 진관사 칠성각 해체·보수 공사 도중 발견됐다.
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색난 스님은 솜씨가 뛰어나 ‘교장’(巧匠) 또는 ‘조묘공’(彫妙工)으로 불렸다고 한다.
‘광주 덕림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숙종 6년(1680)년 조성돼 현존하는 가장 이른시기 작품이다. 불상의 표현은 17세기 후반 추구했던 미의식이 투영돼 있으나 세부 표현에선 스님만의 개성이 도드라진다. 문화재청은 “스님이 17세기 후반 불교 조각의 새로운 양식을 주도해 갔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색난 스님의 본사이자 활동의 근거로 삼았던 고흥 능가사의 ‘목조석가여래삼존상 및 십육나한상 일괄’은 스님이 수조각승으로 도반, 제자들과 함께 조성했다. 문화재청은 “스님의 조각 형성과 발전, 사승(師承)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작품”이라 평가했다.
색난 스님은 주로 호남 지역에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김해 은하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 일괄’은 스님이 경상도 최동부 지역인 김해에서 조상한 불상이다. 문화재청은 “스님의 전성기 활동 영역을 파악하는 기준이 되는 작품”이라 강조했다. 특히 다양한 동물을 수용해 창의적이고 새로운 도상을 창출했을 뿐 아니라 조각기법이 정교하고 섬세해 스님의 전성기 조각 양식이라 분석되고 있다.
색난 스님의 만년작 ‘구례 화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1703년 숙종, 인현왕후(숙종의 계비), 경종(당시 세자), 숙빈최씨(숙종의 후궁), 영조(당시 연잉군) 등을 비롯해 여흥민씨, 해주오씨 등 권세 있던 가문의 인물들이 불상 조성에 대거 참여해 조성했다. 18세기 초 최대 왕실불사로 꼽히면서, 색난 스님의 숙련된 기량과 원숙함이 돋보여 기념비적 대작이라 평가된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07호 / 2021년 11월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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