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 제84칙 장경불의(長慶不疑)

분명한 언설과 행위로 깨침을 드러내다 장경이 두 손을 펼쳐 보인 것은 아무것도 감춘 것이 없다는 뜻 질문 전 깨침 모습으로 현성해 묻고 따지는 것은 부스럼일 뿐 

2021-10-25     ​​​​​​​김호귀 교수

승이 장경에게 물었다. “어떻게 수행하면 의심이 없는 경지를 얻습니까.” 장경이 두 손을 펼쳐보였다.

장경혜릉(長慶慧稜, 854~932)은 설봉의존(雪峯義存, 822~908) 문하이다. 승이 질문한 의심이 없고 의혹이 없는 경지는 번뇌가 없는 것을 가리킨다. 의심은 번뇌의 일종이다. 그래서 의심을 초월한 경지는 그대로 깨침이다. 발심을 하고 수행을 하여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연과 인생과 불법에 대하여 아무런 의심이 없는 경지를 터득하는 것은 모든 납자의 소망이다. 그것은 시주의 은혜를 갚는 것이고 선지식에 보은하는 것이며 불보살의 의도에 부합하는 것이다. 그래서 승은 그와 같은 경지가 어떤 것인지 묻고 있는데, 거기에는 그것을 터득하기 위한 방법에 대한 의미까지도 포함되어 있다.

의심이 없는 경지에 대하여 장경은 지극히 단순명쾌하다고 일러준다. 양 팔을 펼쳐 보인 것은 장경 자신에게는 아무것도 감추어둔 것이 없다는 것을 일러준다. 그리고 장경 자신이 답변을 해주기 이전에 벌써 질문하는 승의 안전에 의심의 번뇌가 없는 깨침의 모습으로 현성되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내보이고 있다. 그러므로 의심의 번뇌가 없는 경지를 터득하기 위하여 더 이상 무엇을 추구하고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지 따지고 묻는다면 그것은 애써 긁어부스럼 만드는 꼴이다.

그 제스처에 대하여 승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였다. 승의 그 태도는 장경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일러달라는 것을 암시한 것이다. 장경은 금방 그것을 알아채고 말했다. “그대는 다시 물어라. 그러면 그대한테 말해 주겠다.” 승이 다시 의심과 의혹이 없는 경지에 대하여 묻자, 장경은 허벅지를 드러내고 앉았다. 이것은 장경 자신이 걸어온 좌선수행의 전부를 내보여준 것이다. 이에 승은 장경의 행위에 대하여 그 의미를 이해하고 예배를 드렸다. 그저 예배를 드리는 행위는 가르쳐준 은혜에 감사드린다는 행위이다. 그래서 아무런 의심도 없고 의혹도 없는 경지란 지금처럼 여법하게 좌선수행을 하는 거기에 남김없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줄을 알아차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자 장경은 이제 노파심절한 자비를 발휘하여 승이 이해한 경지를 점검해준다. 그래서 물었다. “그대는 무엇을 이해하였는가.” 수행을 통하여 자신이 깨치는 것이 정작 중요하지만, 나아가서 자신의 깨침이 어떤 내용인가를 분명하게 언설 내지 행위를 통해서 드러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장경은 그것을 점검해주고 있다. 승이 말했다. “오늘은 바람이 붑니다.” 이것은 오늘부터 자신의 선풍을 드러내며 진작시켜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깨침일 뿐이지 타인에게 인정받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장경은 다시 다그쳤다. “그렇게 말해서는 남에게 깨침을 인정받지 못한다. 가령 그대는 고금에 있는 어떤 절요(節要)가 나 장경과 잘 어울린다고 보는가. 만약 그것을 말할 수 있으면 그대가 문답의 주인공임을 인정하겠다.” 자신이 터득한 깨침의 핵심이 무엇이고, 그것을 타인에게 어떻게 일러줄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승은 그저 잠자코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었다. 곧 자신이 깨친 경지는 언설로 드러낼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태도에 대하여 장경은 그대와 같은 선풍은 어느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느냐고 다음과 같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에서 온 사람인가.” 승이 말했다. “남방 출신입니다.” 당시는 어지러운 전란의 분위기였다. 세속에서는 권모술수가 판치고 숱한 전쟁으로 군소국이 명멸하는 오대시대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에 승의 답변에 대하여 한편으로는 긍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납자의 본분으로 살아가야 하는 승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남북으로 삼천리 길을 찾아왔는데 그렇게 거짓말만 배워서 무엇에 쓰겠는가.” 세속은 그렇다고 해도 불법에서는 속임수가 없이 전법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응수한 말이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6호 / 2021년 10월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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