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용인 도솔암의 ‘책읽는 부처님’ : 우리 시대의 도상학

현대적 도상에 담긴 클래식한 메시지 정보화 사회 속 책 들고 계신 부처님은 정보 쥐고 있는 존재 삼도 대신 목젖과 쇄골이 표현돼 인간화된 모습 보여주는 듯 육계 불꽃 형상화…지혜 등불이 등대처럼 안내하는 느낌 줘

2021-11-15     주수완
용인 도솔암 법당 내부. 현대식 불교사원이지만 참선에 어울리는 법당의 이미지를 잘 갖추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작가가 연재의 컨셉에 과연 맞는 분일지 망설여졌는데, ‘불교를 사랑한 예술가들’에서는 불교미술을 전문적으로 제작하는 작가나 화승, 승장은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이분들은 별도로 다루어보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소개할 분은 스님이다. 그러나 이분이 화승이나 승장이신가 하면 그렇지는 않으므로 무방하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물론 굳이 따지자고 한다면 예술가가 아닌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 다루지 않는다면 어차피 그 어떤 주제에서도 이 스님을 다루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지만 또 그 어디에도 해당되는 그런 예술가이자 승려이기 때문이다.

용인 도솔암의 주지 화성(和成) 스님은 법당을 20여년에 걸쳐 직접 지었으니 건축가라 할만하다. 건축을 전공한 분은 아니라고 하니 불교계의 안도 다다오(安藤忠雄)급이다. 법당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전통 양식의 전각이 아니라, 태양열판을 지붕에 얹고 전면에 유리를 설치한 파격적인 건축이다. 그러나 꼭 기와지붕에 화선지가 붙은 창호가 달린 건축만 전통일까. 지붕에 올렸던 기왓장 대신에 태양열집광판 패널이 올라 갔을 뿐이다. 전면 유리창은 마치 멋진 카페 건축처럼 보여 이질적일 수 있으나, 화선지 창호문 역시 유리가 없던 시대에 빛을 법당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유리창 역할이 아니었던가. 더구나 법당 전면에 창살 창호를 단 전통건축은 어쩌면 현재 유행하는 통유리 건축의 선구적인 원형인 셈이다. 이 통유리는 온실처럼 겨울에도 법당의 온도를 올려주니 친환경적이기까지 하다.
 

도솔암의 석조여래입상 ‘책읽는 부처님’. 2014년. 화성 스님 창안. 높이 6.3m(좌대포함 8.7m).

이처럼 건축도 할 말이 많지만, 오늘의 주인공은 바로 이 법당 안의 ‘책 읽는 부처님’으로 불리는, 전통적인 개념으로 말하자면 석조여래입상이다. 2014년 조성된 이 불상은 비록 화성 스님이 직접 깎고 다듬어 만든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인 도안을 작성하고 석공에게 의뢰하여 만드신 것이라 한다. 직접 망치와 정으로 깎지는 않았어도, 분명 스님의 창작 불상인 셈이다. 아마 과거에도 화공이 그림을 그리고 조각승이 깎는 협업이 이렇게 이루어졌을 것이다.

이 불상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지물이다. 보살은 정병이나 연꽃, 보주 등의 지물을 들고 있지만, 불상은 약사불의 약함을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지물을 따로 들지 않는다. 그런데 도솔암 부처님은 책을 들고 계시다. 화성 스님은 왜 부처님이 책을 들고 계시게 했을까. 언뜻 더 이상 높을 수 없는 부처님이, 그래서 모르는 것이 없는 경지의 부처님이 마치 무엇을 몰라서 책을 찾는 것처럼 표현된다는 것은 그만큼 부처님의 격을 낮추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부처님 역시 깨달음을 얻으신 후 계속 참선을 하셨던 것을 생각해보면, 이미 깨달음을 얻으셨더라도 제자들의 수행을 돕기 위해 모범을 보이는 차원에서 늘 참선을 하셨으리라. 책을 들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마치 “제발 싸우지 말고 공부나 좀 합시다”라고 하시는 것만 같다. 

이 도상을 창안한 화성 스님은 이 책을 ‘정보’를 상징하는 개념으로 만드셨다고 한다. 스님의 설명을 필자 나름대로 풀어보면 이렇다. 수많은 사람들이 불상 앞에 와서 다양한 소원을 빌고 있는데,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곧 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로또에 당첨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면, 그저 당첨되게 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로또 번호라는 정보를 제공해주시는 것이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것이 되는 이치와 같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늘상 부처님께 엄청난 양의 정보를 구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고대의 부처님이 소원을 들어주시는 부처님이었다면, 이것을 현대적인 정보화 사회에서 새롭게 풀어볼 때 부처님은 정보를 쥐고 있는 존재인 셈이다. 이렇게 궁극적으로 정보의 개념으로 풀어보면 우리의 ‘시험 잘 보게 해주세요’ ‘부자되게 해주세요’가 결국 부처님께 정답을 빼내 달라거나 부동산 투기 정보를 알려달라는 것과 마찬가지니 우리가 그저 돌려 말했을 뿐 얼마나 뻔뻔한 일을 부처님께 요구해온 것이란 말인가.  

그 정보들은 디지털화된 1과 0으로 표현될 수도 있고, 컴퓨터로 표현될 수도 있고, 아니면 구글 로고로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화성 스님은 이를 책으로 풀었다. 왠지 디지털화된 정보는 그 정보를 구하는 사람들을 너무 수동적으로 만든다. 예를 들어 리포트를 작성하는 학생이 책을 뒤적이고 있으면 공부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인터넷에서 검색하고 있으면 베끼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같다. 

결국 이 부처님은 그런 정보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수동적으로 구하려고만 하지 말고 최소한 책을 읽는 노력만이라도 들여서 능동적으로 정보를 찾을 것을 우리에게 권하고 계신 것이다. 너무나 현대적인 도상이지만,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듯 클래식하다.

단지 책을 들고 있다는 점만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법당의 본존불을 좌상으로 모시는 것에 비해 여기서는 입상으로 모셨다. 보통 이처럼 입상으로 거대하게 모신 부처님은 김제 금산사 미륵전의 부처님처럼 미륵불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이 절이 도솔암인 것을 보아 미륵불을 상징하는 것도 같지만, 스님은 그런 존명에 얽매이는 것을 원치는 않으셨는지 도솔암의 한자도 도솔천(兜率天)과 다른 도솔암(馟率庵)이다.

남인도 아마라바티 출토의 석불입상. 2~3세기경.

한편 과감히 어깨를 드러낸 날씬한 부처님의 형상은 마치 고대 남인도의 아마라바티 지역에서 발생하여 동남아시아 불교국가에서 크게 유행했던 불상양식을 닮았다. 어쩌면 이 아마라바티 지역에서 나가르주나(용수) 스님에 의해 대승불교가 확립되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스님은 우리의 대승불교도 이 용수 스님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함을 역설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전통적인 불상의 목에 표현되는 삼도(三道) 대신 목젖과 쇄골이 표현된 부처님은 마치 초월적인 세계에서 우리 인간계에 모습을 드러내시면서 조금 인간화된 모습을 보여주시는 듯하다. 혼란한 세상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부처님을 중생들 가까이 모셔오고 싶은 스님의 마음 같았다. 또한 정수리에 솟은 육계를 불꽃처럼 피어오르는 모습으로 형상화한 것은 이 시대의 지혜의 등불이 우리를 등대처럼 안내한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런 파격적이면서도 고전적인 부처님이 조성되어 있다는 것은 필자에게는 너무나 참신한 충격이었다. 고전적인 부처님과 함께 앞으로 이 시대의 바람을 담은 이러한 부처님이 더 많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 특히 ‘책’이라는 인간 최고의 발명품을 흠모하는 필자에게 너무나 마음에 와닿는 부처님이시다.

주수완 우석대 조교수 indijoo@hanmail.net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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