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제87칙 유서상당(幽棲上堂)
일상사 매몰되지 않는 파격 도모가 선의 추구 법회 날 종치는 소리에 관계 없이 참석함은 수행 임하는 납자 본분 유서화상이 승 때리고 돌아섬은 설법 대신해 깨우쳐주기에 충분
유서화상이 어느 날 종을 걷어놓고 상당하였다. 대중이 모여들기 시작하자, 유서가 말했다. “도대체 누가 종을 쳤는가.” 승이 말했다. “유나가 쳤습니다.” 유서가 말했다. “가까이 오너라.” 승이 가까이 다가오자, 유서가 갑자기 때려주었다. 그러더니 설법을 그만두고 방장실로 돌아가서 누워버렸다.
유서화상은 유서도유(幽棲道幽)인데 동산양개의 법사이다. 상당(上堂)은 공식적으로 설법을 하기 위해 설법당에 올라가 법좌에 앉는 것을 말한다. 유나(維那)는 선원에서 대중의 기강과 규율을 담당하는 소임이다. 사찰에서 법회를 알리는 신호로 종을 치는 것은 보편적 모습이다. 이 공안에서 보면 얼핏 상식에서 벗어난 것으로 보인다. 종을 친 당사자는 유나인데 그 사실을 알려준 승이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상식적인 입장으로 보자면 핀잔을 듣거나 얻어맞아야 할 당사자는 유나여야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보면 이같은 상황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유서화상이 종을 걷어놓고 설법당에 올라간 것은 자연스러운 행위다. 매월 초하루 및 보름날은 공식적인 법회를 시행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선원에서 이러한 규범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여기서 유나는 이미 유서화상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유서화상과 유나가 보여준 각각의 행동이 사실은 미리 연출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법회를 시행하는 날이 되었으면 종을 울려 대중에게 법회를 알려주는 것도 당연하고, 종을 울려주지 않아도 정기법회 때가 되면 대중이 모여드는 것도 당연하다.
선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상의 모습은 그대로 수행의 가풍으로 드러나 있다. 굳이 종을 치지 않아도 방장으로서 유서화상 또한 설법당에 올라갔을 것이고, 종을 쳤어도 올라갔을 것이다. 종을 울리는 자체가 선원에서 하나의 수행의례로 썩 훌륭하다. 그리고 종을 울리지 않고 법회를 시행하는 것도 매일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납자들로 하여금 그것으로부터 초월하도록 일깨워주는 행위로 썩 훌륭한 방편이다. 일상사를 누리고 살아가면서도 그러한 일상사에 매몰되지 않고 과감하게 파격(破格)을 도모하는 것은 선이 추구하고 있는 목표 가운데 하나이다.
그런 까닭에 유서화상은 짐짓 그와 같은 일상사를 통해서 제자를 일깨워주고 있다. 유서화상은 뻔히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곁에 있는 승에게 누가 종을 쳤길래 그대도 그 소리를 듣고 설법당으로 모였는지 물었다. 승이 제법 똘똘했다면 바로 이 상황이야말로 자못 근엄하고 진지한 선문답이 펼쳐지고 있는 순간임을 알아차렸어야 했다. 유서화상이 질문한 것은 종을 친 당사자에 대한 것이었지만, 사실은 승 그대는 종소리를 듣고 설법당으로 왔는가, 혹은 매월 시행되고 있는 법회인 줄 알아차리고 종소리에 상관이 없이 스스로 설법당으로 왔는가를 확인해보려는 것이었다. 종소리를 듣고 법회에 모여든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종소리를 듣지 않고도 법회가 시행되는 날인 줄 알아차리는 것은 평소에 항상 긴장을 늦추지 않고 돌발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수행에 임하는 납자의 본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승은 유서화상이 질문한 의도와는 전혀 딴판으로 답변하였다. 유나가 종을 쳤다는 말 대신에 승 자신이 종을 쳤다고 말했다면 그래도 제법 선기가 익었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러나 승은 참으로 정직한 것인지 아니면 약간 모자란 것인지, 안타깝게도 유나가 종을 쳤다고 말했다. 이것은 유서화상의 의도에 전혀 얼토당토 않는 결과였다. 때문에 유서화상은 아직 정식으로 설법도 하지 않았는데, 그 승을 한 대 때려주는 것으로 그날의 설법을 대신하였다. 그리고는 방장실로 돌아가 휴식을 취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그 파격의 행위를 몸소 보여준 것이었다. 그러한 유서화상의 행위는 승을 일깨워주는 설법으로 충분하였다. 다만 유서화상의 설법이 의미하고 있는 것을 그 승을 비롯하여 대중 가운데 몇 명이나 이해했는지 궁금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09호 / 2021년 11월1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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