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삼계교사의 특이점 및 신라로 들어온 삼계교 사상

빈곤한 자 노동으로 돕고자 구족계 버려 삼계교 역사가 가진 특이점 많아 탄압으로 불교 이외 사료가 다수 삼계교도 위한 분묘 백탑사 있고 삼계승, 일반승과 교류하지 않아

2021-12-13     법공 스님

이번에는 삼계교 역사에 어떤 특이점이 있고 이 사상은 어떻게 신라로 들어오게 됐는지를 다뤄보고자 한다. 

①삼계교는 역대 조정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신행 스님(540~594)의 입적 이후로도 무려 400여년간 유지됐다. 10세기초 (宋代初)가 되어서야 그 흔적이 끊어졌다.

②불적(佛籍) 이외의 사료가 제법 많다. 탄압으로 인해 불교 사적류가 많이 사라졌다. 이에 사적류보다는 금석문과 불교사적(佛敎史籍) 이외의 사료가 다수다. ‘역대삼보기’의 신행 약력과 ‘속고승전’ 습선편에 있는 전기(傳記)를 통해 신행(信行) 스님에서 본제(本濟), 승옹(僧邕) 스님으로 이어지는 삼계교 전통을 살펴볼 수 있다. 또 당림(唐臨) 스님이 저술한 ‘명보기(冥報記)’에서 신행 스님과 그 문하의 승옹, 혜여(慧如) 스님의 전기를 싣고 있다. 이외에도 ‘석문자경록’(개원록, 시소범자유가법경경, 염불경, 정원록, 금석속편,도제장석기) 등이 있다. 

③박해가 많았던 교사(敎史)는 앞서 다룬 내용으로 대신한다. 

④신행(信行) 탑원인 백탑사(百塔寺)는 선사가 묻힌 분묘로서 종남산 경재곡(梗梓谷) 치명부(鵄鳴阜)에 매장됐다. 이후 삼계교도들은 신행을 따라 다투어 신행 탑원에 매장하며 삼계교도 특정의 분묘가 됐다. 대력(大曆) 때에는 배장자(陪葬者)가 많아 백탑사로 개칭했다. 이 명칭은 8세기부터 10세기말까지 무려 400년간 지속된다. 

⑤무진장원: 율(律)의 무진재(無盡財)는 자모(子母=元利)가 전전(展轉)해서 다 함이 없다는 의미로, 중국사원 재제상(財制上)의 일종의 질제(質制=전당포)로, 수당(隋唐) 때에 유명해진 삼계교의 무진장원이다. 이 제도로서 궁핍한 서민을 도왔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것이 오히려 왕실이나 귀족들 이익에 불이익을 줘 탄압의 원인이 됐다.

⑥신행(信行) 특행: 그는 몸소 노역(勞役)하며, 모든 비경(悲敬: 위로는 삼보에 공양, 밑으로는 빈곤 인에게 베품)에 공양했다. 이는 말세 파계인은 다른 이의 공양을 받을 가치가 없다는 구족계의 규정으로, 구족계를 버리게 됐다. 구족계를 버리지 않고서는 노역을 통해 빈곤인에게 베풀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분은 다른 어떠한 고승에게서도 유례를 찾을 수 없다. 현재의 노동이나 탁발문제 등에서 보아도 흥미로운 점이다.

⑦삼계원(三階院): 삼계승은 삼계원에 별거하여, 일반승들과 교류하지 않았다. 삼계교적에는 ‘사선도속(邪善道俗)’과의 왕래를 금지한다. 이는 삼계교의(敎義) 규칙이다. 또 ‘속고승전’ 신행전에서는 “경사(京師)의 절, 5개소 즉 화도·광명·자문·혜일·홍선 등이 이것이며…모든 절에서 그 제도를 잇는다. 6시 예시걸식(六時禮施乞食)을 업으로 한다”고 한다. 이는 5개의 사찰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의미다. 당시의 절은 사내에 원(院)이 있고, 원 가운데 방(房)이 있었다. 보통 사찰 안에 삼계원이 있고, 삼계승은 이곳에 거주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개원13년(725)에 칙령으로 인해  모든 절 안 삼계원의 격장(隔障)을 거두고, ‘대원(大院)과 상통하며, 중승(衆僧)과 동거 하며 별주(別住)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하루 일종식을 하며 6시 예참을 하는 삼계승에게 하나의 탄압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일반승들과 함께 거주한 것 자체가 삼계승들의 행동을 저지당하기 때문이다.

⑨무진장시(無盡藏施): 삼계교의 사회교화 실천은 무진장시이다. 말법의 사람들은 탐진치 삼독이 치성해, 태어나면서 부터 본질적으로 구제될 수 없다. 어떠한 부처나 법도 별법(別法)으로는 이를 구제할 수 없다고 하여, 오종불구(五種不救, 일불불구·이법불구·삼승불구·사중생불구·오단악불구) 등을 비롯해 여러 용어들을 탄생시킨다. 

법공 스님

따라서 탐욕에 대한 무소유사상을 고취하고, 12두타의 상걸식(常乞食)을 고조했다. 특히 보시행은 극히 중요시해 시여(施輿)에 관한 상세한 설명을 하고 있어 삼계교는 불교사회 사업사상(事業史上)의 중요한 부분을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대근기행법 중 상걸식 사종(四種)을 설하는 가운데 유작단(有作壇)이란 걸식승으로 받은 음식을 늘 ‘일체중생과 함께 공양’ 하며 자신 혼자서 이것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무작단(無作檀)이란, 당연히 자신이 받아야만 할 것을 스스로 받지 않음으로 해서 소극적으로 보시하는 것 등을 말하고 있다.

법공 스님 동국대 경주캠퍼스 전 선학과 겸임교수
hongbub@hanmail.net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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