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 제91칙 앙산삽초(仰山插鍬)

가래는 앙산의 수행방편이자 타인 이끈 수단 밭은 마음을 가꾸는 심전을 의미 그 밭에 수행자 몇이냐는 물음에 가래 꽂은 건 한 사람임 보인 것 수행‧깨침 일상생활 실천이 중요

2021-12-13     김호귀 교수

앙산이 땅에 가래를 꽂은 이야기가 있다.

본 문답은 위앙종(潙仰宗)의 개조인 위산과 앙산 사이에 있었던 문답이 그 주제이다. 앙산혜적(仰山慧寂: 803~887)이 대위산(大潙山) 영우(靈祐: 771~853) 문하에서 직세(直歲)로 있었다. 직세는 선원에서 요사를 수리하고, 도량을 관리하며, 인부나 공사를 감독하는 직무에 해당하는데, 본래는 일 년 동안 직무를 담당한다는 의미였다.

어느 날 앙산이 작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위산이 물었다. “어디에 다녀오는가.” “밭에 다녀오는 길입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있던가.” 앙산이 가래를 땅에 꽂아놓고 차수(叉手)의 자세를 취하였다. 그러자 위산이 말했다. “오늘은 남산에서 대대적으로 풀을 베는 날이다.” 그러자 앙산이 가래를 뽑아들고 곧장 떠났다.

이것이 곧 앙산이 가래를 땅에 꽂은 공안이다. 문답은 무척 단출하다. 밭에서 작무를 하고 선원으로 돌아온 앙산과, 선원에 머물고 있던 위산과 주고받은 문답이 전부이다. 그러나 이 공안은 후대에 많은 코멘트가 붙어 널리 유행하였다.

선원은 불교의 출가집단임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초기시대부터 자급자족의 전통이 형성되었다. 이 점은 선종이 오늘날까지 존속될 수 있었던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자급자족의 전통은 부처님이 제정한 계율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지만, 선종의 역사에 보이는 특수한 상황이었다. 때문에 선원의 대중은 의무적으로 농사를 짓는 작무에 참여하기도 했다. 더구나 선원에서 작무를 하는 행위는 그대로 수행의 행위로 간주되었을 뿐만 아니라 여타의 종파와 구별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것이 중국 조사선의 전통에서는 수행과 깨침의 동일성이 일상의 생활에서 실천되는 중요한 이유기도 하였다.

앙산이 평소처럼 밭에 다녀오자, 위산은 앙산이 어디에 다녀오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앙산도 있는 그대로 답변하였다. 이처럼 당연한 질문과 답변은 단순한 인사치레의 문답만은 아니다. 밭은 농사를 짓는 땅이기도 하지만, 더불어 마음을 가꾸는 심전(心田)을 의미한다. 그 밭에 어떤 작물을 가꾸는가 하는 것은 마음을 어떻게 닦아가는가 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위산은 밭에 다녀왔다면 어떤 작물을 재배하는 밭인지, 동서남북의 어느 방향에 있는 밭인지, 그리고 심어 놓은 작물의 상황은 어떤지 등 기타에 대하여 질문해볼 법도 하다. 그러나 위산은 단지 몇 명이냐고만 물었다. 앙산 그대처럼 수행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것이다.

앙산은 사람의 수효를 묻는 스승에게 몇 명이라고 말하는 대신에 밭에 다녀오면서 어깨에 메고 있던 가래를 그 자리에 꽂아놓고 차수하여 공손한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답변을 보였다. 차수는 두 손을 모아서 가볍게 가슴에 대는 행위로서 공손한 예의를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고 위산은 무척 기뻐하였다. 왜냐하면 사람의 수효는 앙산 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굳이 몇 명이라고 답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앙산은 홀로 밭에 일하러 나갔기 때문에 홀로 돌아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것은 앙산의 행위에 미치는 사람이 없을 만큼 앙산의 선기가 빼어났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위산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다시 앙산에게 지속적인 격려를 보내주고 있다. 오늘은 남산에서 대대적으로 풀을 베는 날이라는 말은 다른 법회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서 법거량을 하는 곳으로 가서 앙산 그대의 선기를 발휘해보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격려일 뿐만 아니라 다시 앙산의 선기를 재점검하려는 위산의 자상한 지도방식이기도 하다. 위산의 지시를 받고 거기에 가서 앙산이 어떻게 대응하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테마이다. 앙산은 대뜸 그 말을 이해하고 땅에 꽂아둔 가래를 뽑아서 남산으로 향했다. 이 문답에서 가래는 앙산 자신의 수행방편이기도 하면서 다른 사람을 이끌어주는 수단이기도 하다.

김호귀 동국대 불교학술원 HK교수 kimhogui@hanmail.net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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