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21세기 구현해야할 한국불교의 모습 (끝)
불교 생명사상 실천할 문명 비판가 절실하다 조계종에 1700년 역사는 자산이자 부채…선종 정체성 확장해야 한국불교가 계승해야 할 전통은 ‘대승불교’ 외에 다른 선택 없어 다불교적 현상은 세계불교 축소판…새로운 교판 기회로 삼아야
지난 글에서 한국불교가 처한 특수한 상황으로 다불교(多佛敎) 현상의 여러 문제점을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그러나 다불교적 상황은 한국불교의 새로운 기회도 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 세계는 고립적으로 발전했던 다양한 지역불교 전통들이 함께 소통하고 공존하면서 새로운 불교의 역사를 써 나가야 할 상황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한국불교는 이러한 세계불교사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불교가 맞고 있는 상황을 잘 이해하면서 21세기 새로운 교판과 교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한국불교는 21세기 세계불교를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과 희망으로 21세기 한국불교가 구현해야할 모습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사회가 요청하는 시대정신과 한국불교의 현실을 성찰할 때 조계종의 ‘선종’이라는 정체성은 이제 ‘대승’으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종이 대승불교 전통에 속한다고 하는 것은 일견 상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선종이 곧 대승이라고 하는 등식이 자명하게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禪)과 교(敎)의 대립 양상에서 알 수 있듯이 선종은 ‘불설(佛說)’에 대한 자신만의 독특한 해석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수증론(修證論)에 있어서도 전복적(顚覆的)이라 할 만큼 여타의 대승전통과 불연속적 관계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는 선종(禪宗)의 자기정체성은 배타적인 사자상승(師資相承)과 독점적인 전등(傳燈)의 계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이유로 선종 스스로가 ‘진정한 대승’(혹은 최상승)임을 자부하고 그 형성과정에서도 대승이란 큰 강에 자신들의 물줄기를 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선종이 곧 대승이라는 등식을 받아들이는데 주저하게 되는 것입니다.
조계종이 한국불교 1700년의 역사를 계승하고 있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 점은 조계종단의 입장에서 보자면 자산이자 부채입니다. 1700년 역사의 계승자로서 조계종의 위상을 생각할 때 조계종의 선종이라는 자기정체성은 ‘선명’하다는 느낌 보다는 ‘협소’하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조계종이 한국불교의 계승자이자 대표라고 하는 점은 조계종단이 누리는 일종의 ‘자산’일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자산을 지키기 위해 짊어져야할 부채가 있습니다. 그것은 ‘선종’이라는 협소한 자기정체성을 확장하여 한국불교사의 제종(諸宗)과 오늘날 한국불교인들의 다양한 관심을 다 포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불교에 대한 사람들의 다양한 기대와 요구 그리고 불교 스스로가 자임하고 있는 사회적 역할을 생각할 때 선(禪) 전통의 장점과 대승불교가 가진 전통의 ‘풍부함’을 모두 함께 오늘날 한국불교의 자산으로 적극 활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잘 아시는 바대로 대승이란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가 여러 다른 지역 문명들과 만나는 가운데 형성되고 단련된 불교인만큼 사상 및 문화적으로 풍부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현대 사회의 복잡다기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풍부한 영감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불교가 계승해야할 전통은 ‘대승불교’이외에 다른 선택이 없습니다. 그것은 ‘소승이 아닌 대승’이라는 교조적 이유에서가 아니라 한국불교가 형성해온 1700년의 역사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승은 상좌부와 같은 다른 전통을 포함하고 포괄하지만 부파불교 전통은 대승을 포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드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시대에 필요한 불교의 역할에 관한 것입니다. 지면 관계상 상세히 다 말씀드릴 수는 없겠으나 다음 두 가지 역할을 특히 강조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는 ‘문명비판의 역할’입니다. 불교적 관점에서 문명비판의 핵심은 ‘욕망’과 ‘발전’이라는 근대적 신화입니다. 그 비판의 준거는 ‘모든 생명의 행복’이라는 가치의 실현입니다. ‘모든 생명의 행복’은 불교의 핵심적 이념이자 인류의 보편적 가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개인적, 사회적 불행은 바로 욕망의 과잉과 발전에 대한 맹신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욕망의 실현을 통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감소를 통해 더 행복해진다는 것을 그 근본 가르침으로 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그간 근대문명의 핵심적 추동력이라 할 수 있는 ‘욕망’과 ‘발전’이라는 신화를 내면화하고 또 부추기면서 그 교세를 확장해 온 혐의가 있습니다. 근대문명의 피로감과 폐해가 거의 임계점에 다다른 지금, 문명비판의 실천가로서 불교의 역할이 절실합니다. 서구에서 불교가 대중적 관심을 얻고 있는 것도 바로 불교의 내면화 된 문명 비판적 성격과 그 실천력 때문입니다.
두 번째 강조하고 싶은 불교의 역할은 ‘환경과 전생명(全生命)적 연대의 실천’입니다. 환경문제는 두말할 나위도 없이 오늘날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근대 문명의 가장 직접적인 폐해중의 하나입니다. 불교는 연기적 세계관과 생명존중 사상과 같은, 근대적 삶의 양식을 바꾸고 그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대안적이며 친환경적 내용을 매우 풍부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그간 국내외 학계에서 환경과 생태적 위기에 대한 불교적 대안을 심도 있게 논의해왔으며 또 실천의 면에 있어서도 불교계가 환경과 생태의 아젠다를 선점하고 주도해 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평가할 때 그 실천의 강도나 사회적 확산이란 측면에서 불교계의 환경운동은 개선해나가야 할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이제 불교 사찰은 친환경적 삶의 실천 장소이자 생태적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스님들은 친환경적 삶의 실천가이자 재가자들을 위한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불교적인 것은 곧 생태적이며 친환경적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출가 스님들이 스스로 실천하고 증명할 때 한국불교는 “떠나갔던 그들이 다시 돌아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생명이 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불교의 생명사상은 세상의 어떤 종교도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불교만의 정신입니다. 전(全)생명적 연대의 정신은 가장 불교적이라 할 수 있으며 그 실천은 불교인들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stcho@korea.ac.kr
[1613호 / 2021년 12월1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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