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구 부산 동의대 교수

우리 모두가 진리 찾는 여행길에 오른 삼장법사입니다 우리는 분별의 구름으로 불성 누른 채 중생으로 살고 있어 저팔계‧손오공‧사오정은 우리 속에 있는 탐진치 같은 존재 삼독을 진리 구하는 동반자 삼아 계정혜로 탈바꿈시켜야

2022-05-30     정리=주영미 기자
강경구 교수는 ‘서유기’ 속에 숨어 있는 진실한 이야기들은 팔만대장경에 들어가야 할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릴 이야기는 인문학의 문학, 역사, 철학 중에서도 문학 이야기입니다. 인문학이든 불교든 쉬우면서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 숙제임은 분명합니다. 특히 대승불교의 경전들은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불교를 쉽게 전달하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방편설’이라고 부릅니다만, 간단히 말하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을 통해 진실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는 일,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오래 고민해 온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에서 소설의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도 대승경전입니다. 소설은 단순히 옛날이야기와는 다릅니다. 옛날이야기는 ‘신기하다’로 끝이지만, 소설은 무엇인가 전달하려는 주제의식이 있습니다. 주제의식을 담은 이야기의 전형에 ‘서유기(西遊記)’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서유기’를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저는 갈수록 ‘서유기는 팔만대장경에 들어가야 한다’는 확신이 듭니다.

거짓말 이야기, 그렇지만 그 속에는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거짓말 속에 더 큰 진실을 담을 수 있다는 건 여러분께서도 인생을 살면서 충분히 확인하셨을 것입니다. ‘서유기’의 거짓말 속에 숨어 있는 진실한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려고 합니다.

통도사에는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라는 다리가 있습니다. 삼성이라는 것은 다리 밑 아치형 구멍 3개가 별 3개와 같다는 뜻입니다. 반월은 다리의 통로가 반달과 같다는 뜻입니다. 물에 비치는 다리 그림자가 어떻게 보이십니까? 설명하지 않아도 발견하셨을 겁니다. 바로 마음 심(心) 자입니다. 통도사의 정신적 지주이셨던 경봉 큰스님께서 이 다리를 축조하시고 이 이름을 단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 이름은 어디에서 유래되었을까요? 바로 ‘서유기’에서 왔습니다. ‘서유기’에서는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이라는 동굴이 나옵니다. 이 동굴에서 손오공(孫悟空)이 도술을 닦습니다. 마음의 땅에서 닦는 게 진정한 도술인 겁니다. 

‘서유기’의 중반쯤 가면 ‘수레가 늦게 가는 나라’가 나옵니다. 삼장법사(三藏法師)와 손오공과 저팔계(豬八戒)와 사오정(沙悟淨)이 이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 나라는 도사들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찌 된 일인지 스님들은 도사들에 눌려서 종노릇을 합니다. 손오공이 그 사연을 알아보니, 이곳은 과거에 스님들의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호랑이 도사, 양 도사, 사슴 도사의 삼 형제 도사가 스님들과 비 내리기 시합을 합니다. 세 도사가 주관한 기우제는 성공했고 스님들은 공염불만 해서 시합에서 집니다. 약속에 따라 도사들이 지배하고 스님들은 심부름하는 나라로 바뀐 것입니다. 세 명의 도사는 ‘법화경’에 나오는 소 수레, 양 수레, 사슴 수레의 변형입니다. 소 수레만 호랑이로 바꾼 것입니다. 한마디로 ‘법화경’ 이야기입니다.

손오공이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다시 비 내리기 시합을 하자고 제안합니다. 도사들이 주문을 외고 북을 울리고 향을 피우니 구름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고 천둥 번개가 치고 비가 내릴 기운이 역력합니다. 손오공은 72가지의 신통력을 갖고 있습니다. 72를 구구단으로 하면 9×8=72입니다. 참고로 ‘서유기’에서 말하는 고난은 9×9=81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마음의 요술을 부려도 72라서 인생에서 만나는 81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늘 부족합니다. 우리는 72만 해결하고 나머지는 부처님이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알아차리고 거기에 맡기면 진리와 함께하는 사람이 되고, 100% 내가 해결하는 것이라고 하면 오만에 빠지게 됩니다. 

어찌 되었든, 손오공이 72의 신통력을 갖고 있으니까 도사쯤은 별거 아닙니다. 손오공은 하늘로 뛰어 올라갑니다. 바람 신, 구름 신, 천둥 번개의 신, 비의 신이 나타납니다. 신들이 어찌 함부로 천지를 움직이냐고 물으니까 신들은 저 도사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혼이 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손오공은 귓속에서 여의봉을 쑥 꺼내서는 저 도사들에게 혼나는 게 나은지, 아니면 이 여의봉에 한 방 맞는 게 나은지 선택하라고 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신은 인간보다 뛰어난 복덕과 뛰어난 환경을 갖고 있을 뿐 진리의 흐름을 초월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여기서도 그렇습니다. 손오공은 신들을 단속합니다. “이제부터 내가 내려가서 여의봉을 한 번 들면 바람이 불고 두 번 들면 구름이 몰려오고 세 번 들면 천둥 번개가 치고 네 번 들면 비가 오도록 하라.”

손오공이 첫 번째 여의봉을 들어 올립니다. 그러자 바람이 붑니다. ‘서유기’의 구절을 읽어보겠습니다. “버드나무 가지를 꺾고 꽃을 떨어뜨리고 궁궐의 담장을 무너뜨리고 하늘의 붉은 해는 빛을 잃는다. 황후비빈의 아름다운 머리도 온통 헝클어지고 고관들의 갓끈이 모두 끊어지고 재상의 오사모는 양 날개가 마구 휘날린다.”

바람이 불면 저런 일이 일어납니다. 찰랑찰랑하는 가지가 꺾이면 버드나무가 아닙니다. 꽃은 땅에 떨어지면 쓰레기입니다. 아무도 들어가 볼 수 없는 궁궐이 담장이 무너져서 아무나 들어올 수 있게 되면 궁궐다움을 상실합니다. 황후비빈의 머리 모양이 헝클어져 장신구를 꽂을 자리가 없으니 미모가 빛나지 않습니다. 고관들의 신분을 나타내는 갓끈이 끊어지면 고관다움을 상실합니다. 재상의 모자인 오사모에 달린 양 날개가 마구 흔들리면 품위를 잃은 재상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바람이 붑니다. 건강했던 몸이 무너지는 바람이 불고, 튼튼했던 지위가 무너지는 바람이 불고, 남들에게 찬양받던 내 인격의 속을 들키는 바람이 붑니다.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그런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나의 나다움을 상실한 적 있으실 겁니다. 필연적으로 오는 나를 무너뜨리는 사건, 그 사건을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무시하면 안 됩니다. 인생의 단비가 내리려면 나를 무너뜨리는 현장을 마주해야 합니다. 승승장구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나의 존재를 무너뜨리는 위협에 솔직하게 눈을 떠야 진짜 비가 내립니다. 

바람이 불고 나니 이번에는 구름이 옵니다. 구름이 오는 장면은 “순식간에 천지에 깔리고 삽시간에 온 세상을 뒤덮는다”라고 했습니다. 비는 바람과 구름을 동반합니다. 비만 내리면 좋은데 바람이 불고 먹구름이 낀 뒤에야 비가 내립니다. 

먹구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한 가지는 인생 자체가 캄캄한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정말 캄캄함은, 그 캄캄한 현장이 우리에게 비가 내릴 조짐입니다. 그 진리를 안다면 우리를 찾아온 그 절망에서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불교적 캄캄함입니다. 시비, 선악, 미추를 구분하는 것은 세속적 총명입니다. 불교에서는 그것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세속의 시비, 선악, 미추를 나누는 헛 총명을 내려놓고 거울과 같이 오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총명함, 불교는 이것을 지향합니다. 이것을 분별을 내려놓은 지혜, 무분별지(無分別智)라고 합니다. 지금까지 명확하게 나누던 구분을 내려놓으니 언뜻 캄캄한 것처럼 보였을 뿐입니다. 이성적 사유를 내려놓고 총체적으로 알아차리는 지혜로 들어가는 입구의 캄캄함입니다. 그러고 나면 이제 드디어 빛이 비칩니다. 

다음으로 천둥번개가 칩니다. 이것을 “모든 백성과 만물들 정신이 번쩍 들고 많은 곤충이 놀라서 튀어나온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곤충들이 놀라서 튀어나오는 것을 놀랄 경, 숨을 칩 자를 써서 경칩(驚蟄)이라고 표현합니다. 우리 속에 숨어 있는, 억눌려서 작동하지 않고 있던 진짜 생명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성(佛性)입니다. 우리 속에 부처가 있습니다. 그런데 분별의 구름으로 꽉 누르고 있으니 부처가 아니라 중생으로 사는 겁니다. 이것을 완전히 내려놓고, 존재가 무너지는 체험을 하고 나면 숨어 있던 진짜 존재가 ‘꿈틀’하고 일어납니다. 그것이 천둥 번개이고 우리에게 있어서는 새롭게 열리는 세계입니다. 여기서는 비로 표현한 것입니다. 인생의 단비고 불법의 눈뜸입니다. 

이렇게 해서 손오공은 비 내리는 시합에 성공합니다. 약속대로 이 나라는 부처님 나라, 스님들의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 도사 삼 형제는 손오공을 인정할 수 없다며 다른 시합을 하자고 합니다. 의자 50개를 쌓아서 좌선하는 시합, 밀폐된 상자 속 물건을 맞추는 시합, 머리를 떼었다가 붙이는 시합, 배를 갈라 붙이는 시합, 끓는 기름 솥에서 헤엄치는 시합 등 시합마다 손오공 일행이 이기면서 결국 도사 삼 형제는 죽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양 도사의 죽음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양 도사는 펄펄 끓는 기름 솥을 도술로 차갑게 만들지만, 손오공이 그 찬 기운을 몰고 온 용을 쫓아내자 결국 뜨거운 기름 솥에서 죽습니다. 우리에게 찾아오는 다양한 번뇌의 요소들을 기름 솥이라고 합시다. 분노를 도발하고, 탐욕을 도발하고, 어리석음을 도발하는 갖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그 일들에 귀를 막고 눈을 막는 걸 불교는 권장하지 않습니다. 번뇌를 일으키는 사건들을 명백하게 보면서, 그 보는 명백한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삼장법사입니다. 진리를 찾는 여행길에 오른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 속에 구성 요소가 있습니다. 탐진치(貪瞋痴)입니다. 탐진치가 바로 저팔계, 손오공, 사오정입니다. 

가장 뚜렷한 존재가 저팔계입니다. 보면 일단 욕심을 냅니다. 원숭이는 성질을 잘 내고 산란합니다. 우리는 원숭이를 길들이는 존재입니다. 원숭이를 잘 길들이면 그 총명함으로 세상을 밝게 봅니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어떨 때는 묵직하게, 어떨 때는 둔하게 따라다니는 존재가 있습니다. 무명을 상징하는 사오정입니다. 삼장법사의 전공인 유식(唯識)의 층위를 대치해 보면, 심층에는 사오정이 숨어 있고, 저팔계는 표층에 드러나 있고, 그 가운데에서 손오공이 왔다 갔다 합니다. 삼장법사가 무엇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의 마음이 무엇을 하는 것입니다. 

이 셋은 진리를 구하는 길, 서천행의 동반자입니다. 잘 동반해 가면 탐진치는 계정혜(戒定慧)가 됩니다. 이것이 ‘서유기’의 진짜 가르침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강의는 반야불교문화연구원(원장 지안 스님)이 5월14일 통도사 반야암에서 개최한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인문학 특강- 산사에서 인문학을 본다’ 첫 강의에서 강경구 교수가 ‘거짓 이야기 속의 진실 이야기’를 주제로 소설 ‘서유기’의 도술시합을 다룬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634호 / 2022년 6월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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