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의 도 넘은 공공역사 독점] 1-①. 광화문·서소문 성역화
광장 한복판에 시복터 홍보…“광화문 가톨릭 성지화” 광화문 중심에 성지 안내 간판 시복 기념 바닥돌도 중앙 배치 가톨릭교 교황 방한 상세 나열 육조거리·주요관청 설명은 없어 조선 개국 최대 사건인 모양새
새롭게 개장한 광화문광장 한복판에 가톨릭 성지를 안내하는 간판이 버젓이 놓여 있어 역사독점 및 편향 논란이 예상된다.
간판이 세워진 위치는 정부서울청사 정문 인근으로 조선시대 핵심 기구인 삼군부와 사헌부 터이다. 그러나 정작 이에 대한 설명은 없고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의 방한에 대한 서술만 나열해 “광화문을 가톨릭 성지화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새 단장을 마친 서울 광화문광장이 8월6일 재개장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기념식에서 “광화문광장은 이제 명실공히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가장 자랑스러운 랜드마크”라고 말했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에 있는 안내 간판은 ‘광화문 124위 시복 터’로 마치 가톨릭 시복식이 광화문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심어준다. 시복식은 가톨릭에서 모범이 되는 신앙인을 복자(福者)로 인정하는 의식이다.
이 위치는 광화문광장 확장 공사 당시 삼군부의 외행랑 기초가 발굴된 장소다. 조선시대 관리 감찰기구였던 ‘사헌부’의 유구로 추정되는 문지, 행랑, 담장, 우물 등이 발견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조선시대 육조거리나 주요 관청에 대한 설명은 찾아볼 수 없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집전으로 순교자 124명에 대한 시복식이 거행된 곳”이라는 설명이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안내된 이 간판에는 광화문광장 인근의 조선시대 유적지가 가톨릭 성지로 표기돼 있었다. 1396년 태조 이성계 지시로 세워진 조선 한양도성 남소문(南小門) ‘광희문’을 비롯해 조선시대 소문난 명천인 석정(石井) 보름우물, 의금부 터, 좌·우포도 청 터, 형조 터, 전옥서 터, 경기감영 터 등 24곳이 가톨릭 순례길에 포함됐다.
안내 간판에 설치 QR코드가 새겨진 ‘서울순례길’ 역시 언뜻 보면 서울 관광지를 소개하는 것 같지만 가톨릭 역사와 순례길을 설명하는 앱이다. 이 앱은 2018년 서울시가 사업비를 전액 지원해 천주교 서울대교구와 공동 개발·출시했다. 당시 서울시는 가톨릭 순례길 가이드북 500부와 리플릿 2만부를 제작해 관광안내소에 배치하고 서울 문화관광 해설사를 투입해 북촌, 서소문, 한강 지역을 가톨릭 순례길로 안내하기도 했다.
안내 간판과 불과 60m 떨어진 광장 북측 바닥에는 이곳이 시복 터임을 한 번 더 명시하는 가톨릭교 교황 방한 기념 바닥돌이 있다. 스테인리스에서 최근 청동으로 다시 만든 이 바닥돌은 가톨릭 교황 방한 1주년을 기념해 2015년 8월 조성됐다. 이곳에는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2014년 8월16일 이곳에서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복자 반열에 올려 이를 온 세상에 선포하신 것을 기리고자 여기에 새깁니다”라는 문구가 영어·중국어·일본어로 새겨져 있어 마치 조선 개국 이래 지금까지 최대 역사적 사건이 프란치스코 가톨릭교 교황의 시복인 것 같은 모양새다.
일각에선 “채 10년도 안 된 가톨릭 교황의 방한을 이렇게까지 금빛으로 새겨 기념해야 하는가”라는 말들도 나온다. 광화문 앞길은 임진왜란 시기 광화문이 화재로 소실된 이후에도 육조거리로, 궐외각사(闕外各司)들이 모여 있는 중심 관청가로 기능했고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중심공간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소통하는 가장 중요한 장소였으며 비폭력 촛불집회로 민주주의의 상징적 공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안내 간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광화문광장이 이렇게 조성된 데에는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재구조화 공사과정에 깊이 개입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가톨릭신문은 8월7일자 기사를 통해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위원장 손희송 베네딕토 주교)가 지난해 2월부터 서울시 광화문광장추진단 광장계획팀과 지속적으로 접촉하면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공사 과정을 모니터링해 왔다”고 밝혔다.
‘시복 터 기념’ 바닥돌 자리에는 ‘월대’(月臺)에 대한 설명이 있었지만 ‘시복 터 기념’ 바닥돌이 중앙으로 옮겨지면서 광화문과 한 몸이었던 ‘월대’에 대한 설명은 사라진 상태다. ‘광화문 124위 시복 터’ 안내 간판도 기존에 광장 건너편인 시민열린마당(의정부터)의 가장자리에 위치했으나 재구조화 과정에서 옮겨졌다. 이에 대해 가톨릭신문은 “시복 터 새 안내판이 광화문광장 중심에 자리하게 됐고 바닥 안내판에 보다 가까운 위치로 옮겨져 (시복 터에 대한)연결성과 일체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서울시 광화문광장사업과 관계자는 “가톨릭 신자들에겐 시복 터가 성지순례 장소로 중요해 이번에 광장 확장을 계기로 중앙에 옮기게 됐다”고 말했다.
다른 종교나 단체들이 중요한 행사를 열었다면 그것도 일일이 광장에 새길 것인지 서울시는 답해야 할 것이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45호 / 2022년 8월2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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