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당 문성 대종사, 제77주년 광복절 맞아 독립유공자 추서

국가보훈처, 8월9일 ‘대통령 표창’ 포상 선정 공문 친일승려 ‘명고축출’ 주도…청정 비구로 평생 보현행 상좌 수진 스님 24일 기자간담회…“추모사업 전개”

2022-08-26     주영미 기자
동고당 문성 대종사.

일제강점기 친일승려 척결과 조선총독부 사찰령 폐지에 앞장선 동고당 문성 대종사가 제77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로 추서됐다.

문성 대종사의 상좌인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은 8월24일 해인정사 경내 문화회관에서 ‘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추서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보훈처로부터 ‘2022년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안내’를 받게 된 사실을 알렸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월9일 문성 스님의 상좌 수진 스님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박문성 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에 포상하기로 결정했다”며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선생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귀감으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문성 스님은 189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통도사를 참배하던 중 저녁예불 소리를 듣고 홀연히 무상감을 느껴 이듬해인 1907년 출가했다. 14세가 되던 1911년 당시 통도사 말사였던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통도사 강주를 지낸 서응 스님을 은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옥천사 선원에서 첫 하안거를 성만한 뒤 1919년 진주 호국사에서 호은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를 수지했다. 

1920년 조선불교청년회에 몸을 담은 스님은 1921년 은사 서응 스님이 해인사 강주를 맡게 됨에 따라 해인사에 머물던 중 20여 명의 학인 스님들과 3.1만세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 두 명을 격퇴하고 김천 수도암으로 피신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길에 앞장섰다. 같은 해 만해 스님이 지도하는 불교유신회에 가입했으며 1922년 중앙포교당에서 초월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독립, 항일의 가치를 새겼다.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폐지 운동도 주도했다. 

특히 스님은 당시 일본 언론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전대 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친일승려였던 용주사 주지 강대련을 남대문에서 종로 네거리까지 친일 행각을 성토하고 북을 치며 걷게 하는 ‘명고축출사건(鳴鼓逐出事件)’을 주도한 것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은 뒤로 한 채 친일활동에 적극 나서는 친일승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님은 이 사건으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군종포교사, 일제 잔재의 대처 친일승 정리를 위한 정화불사에도 참여한 스님은 정화 직후인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감찰원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1978년 조계종 초대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1984년에는 부산 관음정사로 거쳐를 옮기고 수행에만 진력하며 보현행자의 삶을 실천한 문성 스님은 1997년 7월 10일 관음정사에서 세수 100세, 법랍 84세로 원적에 들었다.

동고당 문성 대종사의 독립유공자 추서 현수막이 걸린 부산 해인정사.

수진 스님은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은사 스님께서 독립운동을 펼치신 사실을 국가로부터 인정받게 되었다”며 “항일운동가로, 청정 비구로 평생 보현행의 정진을 펼치신 은사 스님의 추모사업을 더욱 활발하게 전개하며 스님의 사상을 후대에 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646호 / 2022년 8월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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