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 부산 해인정사서 봉행
9월16일, 상좌 수진 스님에 전수돼 독립유공자 ‘대통령 표창’ 및 기장 전달 해인정사에 영단 조성해 봉헌…헌향·헌다 친일승려 ‘명고축출’ 주도…청정 보현행 기려
일제강점기 친일승려 척결과 조선총독부 사찰령 폐지에 앞장선 동고당 문성 대종사의 독립유공자 추서를 기념하는 포상 전수식이 부산 해인정사에서 마련됐다.
해인정사(주지 수진 스님)는 9월16일 경내 대적광전에서 ‘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포상 전수식’을 봉행했다. 이 자리에는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과 스님의 상좌 스님들이 참석했으며 강석두 국가보훈처 공훈관리과장, 이갑준 사하구청장, 최인호 국회의원 등과 해인정사 신도들이 자리했다. 법회는 삼귀의 및 반야심경, 국기에 대한 경례, 포상(대통령 표창) 전수 및 기장 봉정, 헌향, 헌다, 삼배, 경과 보고 및 행장 소개, 인사말씀, 포상 배경 설명, 축사 등으로 이어졌다.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은 인사말에서 “은사 스님께서는 일제강점기 암울한 현실 속에서도 독립을 위해 힘쓰셨고 특히 친일승려를 척결하기 위해 명고축출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주도하며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를 받아 옥고를 치르신 지 100년 만에 비로소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셨다”고 소개했다. 이어 스님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이제야 스님의 가르침에 조금이라도 상좌의 도리를 한 것 같다”며 “앞으로도 불교계의 독립운동 역사에 관심을 지속하는 것은 물론 지역의 독립유공자 후손분들과 더불어 이 땅의 평화를 위해 더욱 앞장서는 불제자가 될 것”이라고 발원했다.
이번 포상 전수식에 앞서 국가보훈처는 지난 8월9일 문성 스님의 상좌 수진 스님 앞으로 보낸 공문에서 “정부는 일제의 국권침탈에 항거하여 민족자존의 기치를 높이 세우신 박문성 선생의 독립운동 위업을 기리어 대통령 표창에 포상하기로 결정했다”며 “일신의 안위를 버리고 조국광복을 위해 헌신하신 선생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은 대한민국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귀감으로 후세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문성 대종사의 상좌인 수진 스님도 8월24일 해인정사 경내 문화회관에서 ‘동고당 문성 대종사 독립유공자 추서 기념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가보훈처로부터 ‘2022년도 제77주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포상 안내’를 받게 된 사실을 알렸다.
문성 스님은 1897년 경북 영천에서 태어났다. 10세 때 통도사를 참배하던 중 저녁예불 소리를 듣고 홀연히 무상감을 느껴 이듬해인 1907년 출가했다. 14세가 되던 1911년 당시 통도사 말사였던 경남 고성 옥천사에서 통도사 강주를 지낸 서응 스님을 은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했으며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 옥천사 선원에서 첫 하안거를 성만한 뒤 1919년 진주 호국사에서 호은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 및 보살계를 수지했다.
1920년 조선불교청년회에 몸을 담은 스님은 1921년 은사 서응 스님이 해인사 강주를 맡게 됨에 따라 해인사에 머물던 중 20여 명의 학인 스님들과 3.1만세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 두 명을 격퇴하고 김천 수도암으로 피신하는 등 독립운동가의 길에 앞장섰다. 같은 해 만해 스님이 지도하는 불교유신회에 가입했으며 1922년 중앙포교당에서 초월 스님의 강의를 들으며 독립, 항일의 가치를 새겼다. 조선총독부의 사찰령 폐지 운동도 주도했다.
특히 스님은 당시 일본 언론에까지 소개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전대미문의 사건을 일으켰다. 대표적인 친일승려였던 용주사 주지 강대련을 남대문에서 종로 네거리까지 친일 행각을 성토하고 북을 치며 걷게 하는 ‘명고축출사건(鳴鼓逐出事件)’을 주도한 것이다. 나라 잃은 민족의 슬픔은 뒤로 한 채 친일활동에 적극 나서는 친일승려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스님은 이 사건으로 징역 4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한국전쟁 군종포교사, 일제 잔재의 대처 친일승 정리를 위한 정화불사에도 참여한 스님은 정화 직후인 1962년부터 1974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감찰원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1978년 조계종 초대원로의원으로 추대됐다. 1984년에는 부산 관음정사로 거쳐를 옮기고 수행에만 진력하며 보현행자의 삶을 실천한 문성 스님은 1997년 7월 10일 관음정사에서 세수 100세, 법랍 84세로 원적에 들었다. 문성 스님의 영결식과 다비식은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엄수됐다.
부산=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1650호 / 2022년 9월2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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