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431년 의승군 역사…교계가 선양 나섰으나 “한계 뚜렷”

문화재청, 매년 9월23일 순의제향 호국 선열에 800의승 역사는 없어 마곡사 등 개별 사찰이 추모 제례 “행정 편의주의로 義僧공적 외면” 마곡사 중심으로 ‘기념사업회’ 발족 백양사, 국회에 역사성 회복” 요구

2023-02-17     정주연 기자

나라를 구하고자 목숨 바치고도 오늘날 국가로부터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의승군 역사를 지역의 사찰들이 잊지 않고 조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 사찰은 “국가가 800의승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선양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한계를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문화재청은 1592년 음력 8월18일인 9월23일에 맞춰 충남 금산 칠백의총에서 매년 순의제향(殉義祭享) 행사를 열고 있다. 왜적에 맞서 싸우다 순절한 호국선열의 숭고한 넋을 기리겠다는 취지다. 행사에는 문화재청장을 비롯해 조헌(趙憲, 1544~1592)과 칠백의사 후손 등 100여명이 참석한다.

문화재청은 매년 9월23일(1592년 음력 8월18일) 충남 금산 칠백의총에서 순의제향(殉義祭享) 행사를 거행한다. 800의승은 포함되지 않았다. [문화재청]

반면 영규대사 휘하 수백 의승은 오늘날까지 제대로 된 국가제향을 받지 못하고 있다. 조선 후기까지 의승군을 위한 국가제향이 이어져 왔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실상 맥이 끊겼다. 1970~1976년 성역화 사업에서도 승장사 복원이 누락돼, 불교계가 꾸준히 “영규대사와 800의승 역사를 제대로 복원해야 한다”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문화재청은 2015~2023년 유적 정비에서 이를 한 번 더 배제했다.

금산 보석사 주지 장곡 스님은 지난해 11월25일 대웅전 앞에서 열린 위패 봉안식을 열었다.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14명 스님(신문·공연·운우·도신·홍선·각해·홍월·인진·지한·운담·지원·최호·처영·운일) 위패를 조사전에 새롭게 모시기 위해서다. [금산문화원]

국가로부터 외면 당한 의승군은 영규대사와 인연 있는 사찰이 자체 추모하고 있었다. 보석사·가산사·마곡사·백양사·갑사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보석사 주지 장곡 스님은 지난해 11월25일 대웅전 앞에서 위패 봉안식을 열고 금산전투에서 순국한 14명 스님(신문·공연·운우·도신·홍선·각해·홍월·인진·지한·운담·지원·최호·처영·운일) 위패를 조사전에 새롭게 모셨다. 

장곡 스님은 2000년대 초 갑사 주지 소임을 맡으며 육해공 3군 본부 계룡대에도 “의승군을 선양해야 할 이유”를 설명했다. 스님에 따르면 당시 의승들은 피지배계층이었고 국방의 의무가 없는데도 스스로 규합해 전란에 나섰다. 이렇듯 스님은 “국가에 주체적 마음을 냈던 의승군이 선양되질 않는다면 누란의 위기에 처했을 때 누가 공동체를 우선으로 생각하겠냐”고 역술했다. 스님 의견에 계룡대 장군들도 공감했다. 그해 추모제례에 군악대와 의장대를 지원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개별 사찰이 선양 사업을 이어가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토로했다. 장곡 스님은 “금산전투의 상징적인 공간인 칠백의총부터가 800의승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개별 사찰이 선양 사업을 하는 것. 무리가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선양 사업에 한계를 느낀 건 옥천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도 매한가지다. 옥천군은 매년 ‘중봉 조헌 추모제향’ 명목으로 세금 3000만원을 보조하고 있다. 군청 문화관광부는 지원 스님에게 영규대사 제향비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에 스님은 “중봉 조헌 추모제 비용과 똑같이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다. 주무관이 제시한 금액은 조헌 선생의 20분의 1에 해당하는 ‘150만원’. 지원 스님은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했지만 후일을 기약해 150만원이라도 받겠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을 받는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담당 주무관의 무례한 행동이 지속되자 스님은 결국 이 예산을 거절했다. 

지원 스님은 “공무원들은 조헌 추모제의 20분의1에 해당하는 금액만 지원하면서 잘못을 지적해도 합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문화재청 차원에서 팔백의승이 인정되지 않으면 아무리 두 발로 뛰어도 군청에서부터 막힌다. 그럴 때마다 무기력해지고 화도 나고 그렇다. 의승이 의병과 동등하게 인식됐다면 이런 난감한 상황도 겪지 않았을 것”이라고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현재 옥천군에서 진행되는 조헌 선생 추모제는 2박3일 간 이어지지만 영규대사 추모제는 1시간에 불과하다. 

제6교구본사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이 2019년 3월 사단법인 승병장 영규대사 기념 사업회'를 꾸린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원경 스님은 개개인스님의 원력을 모아 선양 사업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었다. 국가를 향한 목소리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기념 사업회는 ‘공주 갑사 진입로(계룡면 유평리)의 영규대사 묘역 성역화’와 금산·청주전투 역사를 바로 알릴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원경 스님은 영규대사가 이끈 수백의승이 국가위기를 타개하고자 자율적으로 봉기한 '최초 의승군'이란 점에 주목했다. 제2차 금산전투에서 전사했으나 이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왜군이 호남 곡창지대로 들어서지 못했고 전국 각지에서 승병들을 일어났다. 

이에 원경 스님은 "영규대사와 의승군이 바로 서지 못하면 불교사, 임진왜란사, 한국사 전체가 어그러진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칠백의총의 종용사 우측에 조선 후기까지 의승을 위한 제향공간(승장사)이 별실(別室)로 존재했음에도 문화재청이 이를 개선하지 않는 건 행정 편의주의가 가져온 폐해라고 지적했다.

원경 스님은 "특정 종교의 선양 사업으로 의승군을 인정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왜곡된 부분이 없는지 다시 살펴보자는 취지다. 금산전투에 800의승을 포함해달란 요청이 제기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요지부동'인 건 우리나라 행정주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지난해 3월 백양사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통문화발전특위. 

장성 백양사 주지 무공 스님이 지난해 3월 더불어민주당 전통문화발전특별위원들을 만난 자리에서 "칠백의총 오류를 바로잡아 역사 왜곡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한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무공 스님은 "신주를 불태워 조선왕조 질서를 위협한 '진산사건' 주인공 윤지충도 서울 광화문광장 한복판에서 '복자·성인'으로 추대받는 세상"이라며 "조선 정부를 지켜낸 의승들이 오늘날까지 외면 당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런 현실이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이어 "목숨을 걸고 전장에 나선 의승들에게 최소한의 애도조차 하지 않는 게 민주국가인지 되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2014년 흥행한 영화 ‘명량’. 이순신 장군과 명량대첩(鳴梁大捷)에서 활약한 승군(僧軍)의 모습. 마곡사 주지 원경 스님은 ‘최초 의승군’ 영규대사와 800의승이 도화선이돼 전국 각지 승병들을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구국제민(救國濟民)’이라는 숭고한 정신과 고귀한 희생에도 의승의 역사적 평가는 431년 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에 불교계는 칠백의총 경내에 별실로 존재하던 '승장사'를 복원하고 국가 차원에서 제향을 올려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청은 "고증 자료가 필요하다"라는 이유만 반복하며 불교계 의견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조계종 총무원은 문화재청의 '칠백의총' 선양 문제와 관련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총무원 문화부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문화재청 관계자와의 실무회담에서 법보신문 보도 내용을 언급하며 칠백의총 선양 사업과 관련해 개선을 요구했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69호 / 2023년 2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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