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서도 희귀한 통일신라 국보급 부처님

2022-10-21     정주연 기자

열암곡 마애불이 갖는 의미는

정수리 닿은 바닥 암반과 오똑한 콧날까지 거리는 불과 5㎝
왕권 안정화 위해 불교계 지지 필연적…“호법 차원서 불사”

풍성하게 솟아오른 양뺨과 도톰하고 부드러운 입술선, 어깨에 닿을 정도로 큰 귀, 날카로운 콧날과 찢어진 눈매…. 자애로운 미소와 날카로운 엄숙함이 공존하는 통일신라 부처님이 중생 앞에서 다시 현현한 건 2007년 5월22일이었다. 공교롭게 이날은 그해 부처님 오신날 이틀 전이었다. 

부처님은 경주 남산 열암곡(列岩谷) 일대를 발굴하던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신참 연구원에 의해 발견됐다. 언덕배기 비스듬히 걸쳐 있는 부처님이 발견되자 세상이 떠들석했다. 앞으로 넘어졌음에도 상호가 완벽하게 보존돼 있었기 때문. 정수리가 닿은 바닥 암반과 오뚝하게 솟은 코까지의 거리는 불과 5㎝이다. 한치만 앞으로 밀렸으면 여지없이 바스라졌을 것이 손가락 마디만한 거리로 부딪히지 않아 1000년의 세월을 견뎌냈다. 마애불을 새긴 바윗덩이는 길이 6m80㎝에 폭이 4m, 무게는 80톤이다. 불상의 키만 6m에 이른다.

그해 9월 상호가 공개됐다. 사람들은 ‘세기의 발견’이라고 감탄했다. 열암곡 들머리에는 “부처님 일어나십시오”하는 현수막도 내걸렸다. 빠른 시간 안에 원상태로 세우자는 여론이 우세했다. 문화재 원상 복원 원칙상도 세우는 게 옳았다. 관계 부처는 마애불을 곧 일으켜 세울 듯 난리를 피웠다. 그렇게 15년이 흘렀다.    

열암곡 마애불은 8세기 후반, 늦어도 9세기 전반 제작됐을 것으로 본다. 일각에서는 ‘미남부처님으로 유명한 경주 남산 보리사의 마애불과 카리스마 넘치는 석굴암 부처님의 특징을 모두 지녔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발견 당시 국보로 지정돼도 손색없다고 평가 받은 고품격 마애불상이다. 

손등이 보이는 양손을 가슴과 배에 댄 손갖춤(수인)도 독특하다. 신라 중대 전성기 조각과 하대를 잇는 현실주의 조각의 드문 사료라는 점도 복원론의 배경이 됐다. 예불하는 불자들의 시선까지 배려해 머리 부분이 큰 4등신으로 조성됐다. 

8세기 후반 신라 서라벌 석공은 어떤 계기로 너럭바위에 부처님을 새겼을까. 열암곡 마애불 조성 배경에 대한 흥미로운 분석이 있다. 이희진 울산박물관 학예연구관의 ‘경주 남산 열암곡사지 석조불상 연구’(2018)이다. 그는 열암곡 마애불을 왕정골 석불입상 유형의 불상으로 분류했다. 

이 연구관에 따르면 신라 하대 남산에 조성된 불상 중 5m가 넘는 건 왕권 강화와 직결된 불사다. 통일신라는 왕위 찬탈과 왕권 불안정으로 왕위 계승의 정당성이 필요했다. 왕권 강화나 체제 유지를 위해선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던 불교에 지지가 필요했고 불사가 필연적이었다. 

다만 신라 하대 왕실 불사가 이뤄진 장소는 왕경이 아닌 남산이었다. 신라 왕경 대규모 가람 건립이 8세기 말 불국사를 끝으로 없는 이유기도 하다. 신라 왕들은 남산 불사를 통해 호법 국왕으로서의 위상을 높이고자 했다. 이 학예관은 “신라 하대 남산 석불이 5m이상이라면 제작된 불상 중 가장 큰 크기에 해당한다”며 “이는 새로운 정권이 정치적 안정을 도모하고자 호법 차원에서 조성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앞선 연구 성과를 종합하면 열암곡 마애불은 왕실이 조성한 국보급 통일신라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 역사·미술사적 가치로도 손색 없는 부처님이 기적처럼 돌아왔다. 아슬하게 방치하는 건 국가적으로 보아도 큰 손실이다.

“약한 지반에 균열 가속되는 상황”

열암곡 마애불 훼손 상태는

토사층 지지력은 점차 떨어져
풍화와 침식은 더 빠르게 진행

2007년 발견 당시 지병목 전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고꾸라진 채로 보존하자는 여론도 있으나 마애불 바위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다”며 “불상을 올려다 볼 수 있도록 땅을 파는 대안까지 생각했으나 아래가 암반이라 불가능하다”고 못박았다. 

발견 이후 15년 간 꾸준히 정비·조사가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0년과 2015년 두 차례 ‘경주남산 열암곡마애불상 정비보고서’를 발간했다. 결론은 “조속한 시일 내에 안정적인 자세로 거동해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다. 

여러 조치로 안정된 듯 보이긴 하지만 30개월 동안 면밀히 변측한 결과를 보면 이미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했다. 에둘러 써놨지만 한마디로 ‘이대로 위험하다’는 의미다. 

마애불을 훼손하는 요소는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불상의 자세, 두 번째는 지반이다. 

마애불을 지탱하는 건 불두 끝부분(오른쪽 이마)과 허벅지 부분 암반뿐이다. 문화재청 분석 결과 무게 중심이 한쪽으로 치우치다 보니 저항하는 응력도 한쪽으로 가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청은 추가적인 슬라이딩 사태을 우려했다. 2007년 11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임시 모래주머니에 흙을 채워 옹벽을 구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붕괴돼 2009년 5~12월 축대를 조성했다. 문화재청은 “토사층 지지력은 점차 떨어지고 불상의 풍화와 침식은 빠르게 진행돼 지지점의 마찰력이 감소하고 있다”며 “큰 규모의 강수에 대비해 이전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 분석대로 비가 오면 더 문제다. 불상의 자세와 지형 특성상 주변 세굴(물에 의해 바닥이 파이는 것)과 토사 유실 위험성이 상혼한다. 강수가 기록된 날 마애불 훼손도가 높다고 문화재청은 강조했다. 

빗물이 고이면서 불상 표면의 화학 풍화도 진행되고 있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마애불 뒷 사면의 표토층(토층의 맨 윗부분)으로 스며드는 빗물이 마애불을 받치고 있는 지지암석(무릎 부분) 사이로 새어나오면서 마애불 얼굴 주변으로 물이 고인다. 빗물이 암반과 접하면서 화학적 작용을 일으키는 구상풍화 현상도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조사 당시 이미 최대 두께가 5㎝가 넘었다. 이에 2012년 6월 불두에 물이 차는 것을 방지하고자 배수로를 설치했지만 이 역시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다.  

마애불이 넘어질 때 발생한 충격으로 절리면 균열도 이미 상당 부분 진전됐다. 불상 하부와 우측면의 균열은 심각한 상황이다. 2012년 9~11월 암석 균열부에 분무와 도포 방법으로 보강처리를 했다. 그럼에도 머리와 무릎 부분 지지석에 균열이 팽창되고 수축현상이 보이고 있다.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다. 

심각한 건 열암곡 마애불이 위치한 지반이 연약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지반의 안정성을 검토한 안동대 지진방재공학과의 6명의 연구자는 ‘고지진에 전도된 경주 열암곡 불상노두 인근 지반의 지질공학적 특성’을 통해 “강수로 인해 지하수위가 토사표면까지 상승하게 되면 토사의 지지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풍화 및 침식이 빠르게 진행되고 지지점의 마찰력이 감소해 불상을 세운 뒤 철저한 차수 및 사면안정 대책이 요구된다”고 당부했다.

마애불 발견 뒤 바윗돌에 철망을 치고 검은 차양 비닐 하우스를 씌워 10년을 관리해왔다. 그러다 지난해 임시 보호각을 세웠다. 하지만 말그대로 임시 방편이다. 이대로 방치했다간 현 상태조차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연구용역 진행…호이스트 크레인 활용 유력”

‘바로 세우기’ 위한 선결 과제는

불상 위치, 붕괴 시점에 의견 다양
입불도구·자재, 연결부위 논의 중

화강암으로 이뤄진 열암곡 마애불이 붕괴된 이유는 상당한 강도의 지진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의견이다. 

다만 지진 발생 ‘시기’에 대해선 혜공왕 15년(779)과 세종 12년(1430) 등으로 의견이 나뉜다. 마애불이 세워진 원래 ‘위치’도 관심사다. 상호가 온전한 것으로 보아 단번에 앞으로 넘어진 것으로 보는 의견이 있고 멀지 않은 곳에서 미끄러져 내려 왔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마애불이 세워진 ‘방향’에 대해선 한 차례 논의가 있었다. 경상대·부산대·전남대·한국건설기술연구원으로 구성된 연구팀이 2018년 대한지질학회 제73차 학술대회에서 ‘대자율이방성(AMS) 연구를 통한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의 고위치 복원’을 발표한 것. 논문에서 이들은 마애불이 세워진 방향이 서북서 방향(282도)를 바라보고 있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방향을 알더라도 부처님이 일어서야 의미가 있다. 바로 서고 나면 부처님이 넘어진 시기나 본 위치에 대해서도 더 분명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이 험준한 산비탈 중턱에 기적처럼 걸쳐 있는 불상을 어떻게 안전하게 세울 수 있을까. 

조미순 문화재청 고도보존육성과 연구관은 “우선은 가장 유력하게 논의되는 건 ‘호이스트 크레인’을 활용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이는 협소한 공간에 설치해 무거운 물건을 들거나 나르는 것이 용이하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도구가 결정되더라도 연결 자재와 연결 부위, 이동 방식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게 그의 입장이다. 조 연구관은 “현재 입불(立佛) 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이 진행중”이라고 말했다. 

정부 기관 역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절실한 건 불자들의 관심이다. 통일신라 부처님이 빙긋이 던져 놓은 천근만근의 화두에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1654호 / 2022년 10월 2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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