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의승 복권 문제, 국가가 해결 당사자다”

5월30일, 국회 정각회 토론회 개최 ‘금산전투와 칠백의총 재조명’ 주제 '칠백의총' 명칭 '금산의총'으로 바꿔야 “임진왜란 참전 의승 역사 발굴 문제 불교계 아닌 국가차원에서 다뤄져야”

2023-05-31     정주연 기자

국회 불자모임 정각회(회장 주호영)가 5월30일 국회 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개최한 ‘금산전투와 칠백의총의 재조명’ 토론회에서 “의승 복권 문제는 국가가 해결 당사자”라는 의견이 쏟아졌다. 

의승은 관군·의병과 달리 피지배계층이었고 국방에 대한 의무가 없는데도 중생을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월계(越戒)까지 해가며 참전했다. 자발적으로 의승을 규합했고 큰 활약도 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고 보호하는 데 애쓴 이들의 공훈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것은 대한민국 보훈 정신을 선양하는 데 악영향을 끼칠뿐더러, 보훈 문화의 선진화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주호영 정각회장과 이원욱 명예회장은 이날 제시된 전문가의 의견을 적극 수렴, 개정안을 마련해 정부에 권고하겠다고 했다. 

토론회에는 황인규 동국대 역사교육학과 교수와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가 발제를 했다. 토론자로는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국장, 이미지 국사편찬위원회 역사진흥실장, 조계종 중앙종회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간사 호암 스님이 나섰다. 

발표자로 나선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는 “이 문제가 처음 불교계 언론인 ‘법보신문’에서 제기되고, 이 토론회가 국회 불자모임인 정각회에서 개최된다고 해, 일반인 시각에선 자칫 의승군 누락 문제가 ‘종교 선양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의승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역사는 종교사를 떠나 한국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일이다. 불교계 문제만으로 생각하는 것은 매우 편협된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의승은 한국사에서 주목해야 할 특별한 존재다. 당시 전란 극복에 앞장섰던 세 부류가 있었다. 관군, 의병, 의승이다. 여기서 관군과 의병은 의무적이면서 당위성이 짙은 군대였다. 반면 의승은 자발적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심지어 스님들은 연산군~중종대라는 최악의 불교탄압기를 거친 뒤였다. 사회적 신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 없었다는 얘기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참전 여부를 두고 의견이 갈렸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살생, 즉 ‘월계(越戒)’라는 괴리감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발적인 참전 결행을 했다. 혁혁한 공도 세웠다. 선조의 환궁, 평양성탈환, 청주성 수복, 행주대첩, 노원평 전투 등은 의승들의 공적이다.

김 교수는 “의승을 의병 안에 포함해 이해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 두 그룹은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며 “의병이 지배 계급에 속하던 유생이었다면 의승은 비참한 신분의 피지배 계층이었다. 숱한 희생에도 승려라는 처참한 신분으로 예우와 사후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7종이라고 했다. 금성교과서·동아출판·리베르스쿨·미래엔·비상·씨마스·지학에서 출판한 한국사 7종 가운데 5종은 ‘의승’이란 단어조차 언급을 않고 있다. 승려라는 처참한 신분 때문에 예우와 사후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김 교수는 “조선의 기록이 편향 서술돼 있다고 현재까지도 이를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며 “지금이라도 임진왜란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일갈했다.

의승이 참전한 기록이 충분한 데도 문화재청이 금산 칠백의총 유적종합정비사업에서 의승 관련 역사를 누락하는 것은 숭유억불 기조를 잇는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황인규 동국대 교수는 문헌을 통해 금산전투 참전 의승 규모의 실체를 밝히며 이같이 지적했다. 그가 발췌한 문헌은 ‘선조실록’을 비롯해 유팽로의 ‘월파집’, 송시열의 ‘송자대전’,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오희문의 ‘쇄미록’, 이안눌의 ‘동악집’, 윤국형의 ‘문소만록’ ‘대동야승’, 박동량의 ‘기재사초’, 조익의 ‘가휴집’ 고경명의 ‘제봉집’ 등이다. 

이들 문헌에는 영규대사가 이끈 의승 수가 수백~수천에 달한다고 기록돼 있다. 황 교수는 “의승들의 활약은 임진왜란 초기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됐다”면서 “하지만 박정량, 전승업 등 조헌 제자들을 중심으로 추념 사업이 이뤄졌고 그사이 영규대사와 의승들 공적은 흐릿해졌다. 영규대사와 의승들 참전 기록이 다수 있음에도 문화재청이 조선시대 유림들 추념사업 기조만 이어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선시대 유림들의 관점을 넘어 대한민국 보훈 역사에 맞는 균형있는 시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헌의 700의병만 기리는 ‘칠백의총’ 명칭이 또다른 역사 오류를 불러내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은 “전문가들이 정리한 백과사전은 일반인이 가장 신뢰하는 지식”이라며 “네이버 지식백과에 ‘칠백의총’을 검색하면 마치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가 금산전투에 참여해 모두 순절했는데 그 인원이 700명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이 오류의 원인은 ‘칠백의총’이라는 명칭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들을 기리던 충렬사가 해방 이후에 ‘만인의총’으로 명칭이 변경됐고, 한말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창의사는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 ‘구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바꾸었다”며 “모순된 명칭과 언어는 적극 바꿔나가는 게 역사의 발전이다. 실제 칠백의총 명칭 변경은 사적지의 명칭 변경이 이뤄진 기존 사례들은 검토하면 충분히 가능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조계종 중앙종회 영규대사 및 800의승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위원회 간사 호암 스님은 최근 특위에서 첫 공식 일정으로 금산 칠백의총과 보석사를 찾은 소식을 전했다. 호암 스님은 “이번 계기로 임진왜란 의승사 새롭게 인식되길 바란다”고 밝히면서 정부에 △‘칠백의총’ 명칭을 금산전투 전사자 모두를 선양할 '금산의총'으로 바꿀 것 △사적지·기념관 안내문에 의승의 공적을 올바로 기술할 것 △종용사 옆 승장사를 복원할 것 △문화재청이 매년 개최하는 순의제향 행사에 새롭게 밝혀진 의승 법명을 기재할 것 △임진왜란 의승사를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할 것을 요구했다. 

주호영 정각회장은 토론 말미에 임진왜란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 단초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 나온 연구성과를 토대로 관계 당국에 개정 의견을 전하겠다”면서 “부족하면 정각회 이름으로 국회 결의안도 내겠다”고 했다. 또  의승이 누락된 교과서에 ‘의병·의승‘을 병기하는 것과 ‘호국의승의날’ 국가기념일 제정하는 것 등 의승 복권 문제에 주력하겠다고 했다. 

이원욱 정각회 명예회장도 “조선시대 임진왜란을 비롯한 여러 국가 위기마다 의승의 역할이 지대했음은 문헌을 통해서도 확인되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백성을 보호하고 나라를 구하고자 맞선 의승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호영 회장을 비롯한 정각회 회원과 적극 나서겠다. 대한민국 호국불교를 국민에 널리 알리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 현장을 찾은 서병수·김형동·이용·김종민 의원을 비롯해 옥천 가산사 주지 지원, 조계종중앙종회 의원 종봉(논산 쌍계사 주지) 스님 등이 박수로 공감을 표했다. 

 

□ 학술 토론회 발제 및 발표 요지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

“의승 명예 회복, 국가가 맡아서 할 일”
김상영 전 중앙승가대 교수

임진왜란 당시 전란 극복에 앞장섰던 세 부류가 있었다. 관군, 의병, 의승이다. 여기서 관군과 의병은 의무적이면서 당위성이 짙은 군대였다. 반면 의승은 자발적으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심지어 연산군~중종대라는 최악의 불교탄압기를 거친 뒤였다. 승려들의 사회적 신분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형편 없었다는 의미다. 내부에서 참전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살생, 즉 ‘월계(越戒)’라는 괴리감 속에서도 나라와 백성을 위해 자발적인 참전 결행을 했다. 청허휴정(1520~1604) 스님은 전국 승도에게 참전을 격려하는 격문을 돌리기도 했다. 혁혁한 공도 세웠다. 선조의 환궁, 평양성탈환, 청주성 수복, 행주대첩, 노원평 전투 등은 의승들의 공적이다. 하지만 현행 고등학교 한국사 7종(금성교과서·동아출판·리베르스쿨·미래엔·비상·씨마스·지학) 어디에도 의승에 관한 기술은 없다. 이중 5종은 ‘의승’이란 단어조차 언급을 않고 있다. 특히 행주대첩의 경우 7종 모두에서 1592~1597년 참전 기록이 있는 뇌묵처영 스님이 누락됐다. 승려라는 처참한 신분 때문에 예우와 사후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는 것이다. 칠백의총도 마찬가지다. 조헌은 권율과 충청감사 허욱은 물론 영규대사의 만류까지 뿌리치고 2차 금산전투에 나섰다. 그런 조헌을 ‘혼자 죽게 둘 수 없다’고 무리한 전투에 가담해 함께 전사한 분들이 바로 영규대사와 의승들이다. 당대 기록이 편향돼 있다고 지금까지 외면하는 것은 명백한 역사왜곡이다. 균형잡힌 시각이 필요하다. 이 문제가 처음 불교계 언론에서 제기됐다. 또 이 토론회를 국회 불자모임 정각회가 열었다. 그러니 자칫 ‘불교계가 또 징징거린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임진왜란 의승 참전은 특정 종교를 떠나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영규대사와 의승 명예회복 문제는 결코 불교계 내부의 일이 아니다. 국가가 맡아서 해야할 일이다. 10년 째 간간이 논의만 되고 있는 ‘호국의승의날’ 지정도 이번 토론회를 계기로 본격화되길 바란다. 

 

황인규 동국대 교수.

“숭유억불 기조 , 이젠 멈춰야” 
황인규 동국대 교수

의승들의 활약은 임진왜란 초기 불리했던 전세를 뒤집은 발판이 됐다. 하지만 박정량, 전승업 등 조헌 제자들을 중심으로 추념 사업이 이뤄졌고 그사이 영규대사와 의승들 공적은 흐릿해졌다. 영규대사와 의승들 참전 기록이 다수 있음에도 문화재청이 조선시대 유림들 추념사업 기조만 이어가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선조실록’을 비롯해 유팽로의 ‘월파집’, 송시열의 ‘송자대전’, 이긍익의 ‘연려실기술’, 오희문의 ‘쇄미록’, 이안눌의 ‘동악집’ 윤국형의 ‘문소만록’ ‘대동야승’, 박동량의 ‘기재사초’, 조익의 ‘가휴집’ 고경명의 ‘제봉집’ 등에 따르면 영규대사가 이끈 의승 수는 수백~수천에 달한다. 또 영규대사가 참전한 전투로 청주성과 금산성 전투만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 않다. 청주성 전투, 2차 금산성(연곤평) 전투는 물론, 최초의 의병장으로 알려진 월파 유팽로(1554~ 1592)와 의병장 고경명(1533~1592)이 이끈 1차 금산성(눈벌) 전투에도 참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란에 참전 의승 32명을 최근 밝혀낸 바 있다. 특히 영규대사는 공신(功臣)으로 책봉됐다. 승려가 공신으로 책봉된 예는 조선 건국 공신으로 책봉된 천태종의 신조(神照) 스님 이후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들이다. 조선시대 유림들의 관점을 넘어 대한민국 보훈 역사에 맞는 균형있는 시각이 필요하다.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국장.

”밀도있는 연구사업 준비하겠다“
이종훈 문화재청 보존국장

두 분 발제자의 발표를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오늘 이 자리가 제겐 앞으로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준비하는 시간이 됐다. 임진왜란 의승병 관련 문제를 문화재청도 밀도있게 챙기지 못했다. 법보신문이 올해 초 기사를 통해 칠백의총 의승군 누락 문제를 지적했다. 조계종 중앙종회가 성명을 냈고 특위가 꾸려졌다. 최근 특위 스님들이 칠백의총 현장 답사까지 한 상황이다. 우리 청 입장에서도 영규대사와 의승군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 상태다.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할 계획이다. 조계종 불교사회연구소가 2012년부터 2021년까지 ‘호국불교’에 관해 의미 있는 연구 사업을 진행해 온 것으로 안다. 밀도 있는 연구사업을 위해 불교사회연구소와 문화재청 간의 교두보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임진왜란 당시 국가적 위기에서 분연히 일어선 영규대사와 의승들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역사 속에서 불교가 보여준 나라사랑 정신을 국민에게 전달하도록 하겠다. 다만 2011년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 회의에서 ‘칠백의총’ 명칭 변경 관련 내용이 한 번 다뤄졌지만 무산된 이유는 문화재위원들을 설득할 만한 연구 자료가 없었다. 역사적 고증과 학술적 검토가 더 필요했다. 이 자리를 계기로 금산·청주성 참전 의승의 연구 사업을 밀도 있게 추진하겠다.

 

이미지 국사편찬위원회 역사진흥실장.

"의승군 활약에 감동...앞으로 주목하겠다"
이미지 국사편찬위원회 역사진흥실장

저는 오늘 주제인 임란 시기의 의승장, 의승병 활동에 관해서는 문외한이다. 하지만 오늘 두 분 교수님 발표를 들으며 감동했다. 특히 김상영 교수님이 왜 의승에 주목해야 하는 지 의미와 가치를 짚어줬다. 인상 깊었다. 영규대사와 승병이 금산전투에서 순절한 지 431주년이 됐다. 늦었지만 시간적 거리를 뛰어 넘어 현재의 우리가 이 분들 공헌에 주목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 깊다고 생각된다. 이 자리를 계기로 저도 잊혀진 의승 공적을 기념할 수 있도록 주목하겠다.

 

의승 명예회복 특별위원회 간사 호암 스님.

“이번 계기로 임진왜란 의승사 새롭게 인식되길”
조계종 중앙종회 의승 명예회복 특별위원회 간사 호암 스님

얼마전 칠백의총에 현장 답사를 다녀 왔다. 영규대사의 의승 설명은 기념관 전시실 마다 판이하게 달랐다. 국가가 운영·관리하고 있는 장소가 맞는지 의문스러웠다. 정부 관계자들에게 요구하고 싶은 사항은 크게 다섯 가지다. 먼저 금산 칠백의총을 금산전투 전사자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금산전투’로 바꾸길 바란다. 두 번째는 안내판이다. 조헌과 의병 공적이 서술돼 있는 만큼 영규대사와 의승 역할도 안내해 주길 바란다. 세 번째는 종용사 오른편에 별실로 존재했다는 승장사를 복원하는 것이다. 발굴조사가 먼저 이뤄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네 번째는 매년 문화재청이 개최하는 9월23일 칠백의총 순의제향 행사에 새롭게 밝혀진 의승 법명을 넣었으면 한다. 또 조계종 총무원과 협력해 스님들도 함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지막은 이번 칠백의총 재조명을 계기로 임진왜란 의승사가 국가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됐으면 한다.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칠백의총 명칭이 또다른 역사오류 불러내”
이재형 법보신문 편집국장

백과사전은 전문가들이 정리한 것으로 일반인이 가장 신뢰하며 받아들이는 지식이다. 네이버 지식백과에 ‘칠백의총’을 검색하면 마치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가 금산전투에 참여해 모두 순절했는데 그 인원이 700명인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참여해 정리한 백과사전에서 순국한 의승의 숫자를 배제했던 오류의 원인은 ‘칠백의총’이라는 명칭이 모순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모순된 명칭과 언어는 적극 바꿔나가는 게 역사의 발전이라 할 수 있다. 실제 칠백의총 명칭 변경은 사적지의 명칭 변경이 이뤄진 기존 사례들은 검토하면 충분히 가능한 사안이다.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충신들을 기리던 충렬사가 해방 이후에 ‘만인의총’으로 명칭 변경이 이뤄졌으며, 특히 한말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창의사는 900의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어 ‘구백의총’이라 했던 것을 1992년 ‘홍주의사총’으로 바꾸었다고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설명돼 있다. 우리 국가를 위해, 백성을 위해 순국한 망명(亡名)의 의승들을 선양하는 일은 정부가 그들에게 가져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이며, 국가가 존재하는 최소한의 근거다. 따라서 영규대사와 의승 선양은 그분들의 거룩한 희생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국가의 자격을 묻는 일이기도 하다.

 

정주연 기자 jeongjy@beopbo.com
사진=박건태 인턴기자 pureway@beopbo.com

[1684호 / 2023년 6월 14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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