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시론] 건국전쟁 다시 보기
지난 2월부터 극장가를 뜨겁게 달군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은 우리나라 초대 대통령 이승만을 독립운동의 영웅이자 오늘날 대한민국 번영의 초석을 만든 인물로 극찬하였다. 이 영화는 개봉 27일만에 누적 관람객 100만 명을 넘어서는 놀라운 모습을 보여 주기도 하였다. 그 영화를 긍정적으로 본 사람들은 대체로 이승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과 한국 전쟁 당시 이승만의 리더십과 외교적 노력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비판적으로 본 사람들은 이승만이 국가권력을 제멋대로 휘두른 독재자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이 다큐멘터리의 개봉 시점이 4월 총선을 앞 둔 시기여서 정치권과 시민들 사이에서도 이념 논쟁이 뜨겁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역사를 바로 볼 기회'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서울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승만기념사업회와 더불어 '이승만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한다.
반면에 야권에서는 '업적 부풀리기, 역사 왜곡'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불교계는 서울시의 '이승만기념관' 설립에 대하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불교계가 '이승만기념관' 설립에 반대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1875년 황해도 평산군에서 태어났으나 이후 서울로 올라와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 해방 이후 이승만은 오랜 망명 생활을 끝내고 귀국하여 대한민 국 초대 대통령이라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랐다. 당시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에서 오랜 세월을 지냈기 때문에 미국의 노선을 가장 잘 이해하였다는 점이 하나의 원인이기도 하였다.
제헌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명시되어 있었고, 국교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승만 정권은 건국초부터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만들었고, 공영방송을 기독교의 선교활동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미군정의 공인교 정책을 그대로 수용 하여 기독교에 많은 특혜를 주었다. 반면에 이승만 정권은 불교계를 혼란에 빠뜨리는 분열책을 조장하였다. 해방 이후 불교계 내부에서는 봉암사결사와 고불총림의 설립과 같은 자정 작업을 통하여 나름대로 식민지 유제를 청산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었다. 그 길은 불교의 근본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으로 외세로부터 해방된 공간에서 자주적인 면모를 보이고 있었다. 불교계의 이러한 자주적인 노력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이승만의 정책으로 빛을 잃고 말았다.
이승만은 성서에 손을 얹고 대통령 취임 선서를 하였으며 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고 국기에 대한 주목으로 대신하였다. 한 연구에 따르면 당시 대한민국의 기독교인들의 수는 100만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승만은 통치 기간 동안 모두 135명의 장관과 장관급 부서장을 임명했는데, 그 가운 데 기독교인은 절반에 가까운 47.7%였다고 한다. 그리고 군대와 감옥에 기독교를 보급하기 위해 군목제도와 형목제도를 도입하였다.
백번 양보해서 이승만이 독립운동과 건국에 공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는 만년에 무리수를 많이 두었다. 발췌개헌을 통해 연임하였는가 하면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종신 집권의 길을 열 었다. 이러한 이승만의 실책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고, 찬양 일변도로 만들었다. 이 영화가 제작되는데는 일제강점기 위안부를 '자발적 매춘'이라고 했던 사람과 그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의 인터뷰가 큰 역할을 하였다. 이것은 중도와 객관성을 벗어 났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는 있지만 대중들 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젊은 날 이승만의 공적을 생각하여 이역만리 외국에서 쓸쓸이 죽어간 그의 주검을 받아 주었고, 국립묘지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승만을 아무리 추켜 세워도 그의 과오를 전부 덮을 수는 없다. 왜냐하면 역사에 생생하게 기록되어있고, 그 흔적들이 영상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이 지나치면 그 끝은 반드시 불행해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수없이 보아왔다.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려는 사람들은 그 일을 무리하게 강행한다면 또 다시 큰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수석연구위원 seok333@daum.net
[1723호 / 2024년 4월 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