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대광명사 주지 목종 스님
집착하는 마음 버리고 있는 그대로 보면 ‘행복’ 일상에서 행복 구하는 것은 현실이 괴롭다는 것을 의미 괴로움 원인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편견서 비롯돼 ‘내가 먼저’라는 생각 놓고 공덕 쌓으면 괴로움서 벗어나
부처님 법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해서 이번 삶에서 힘들고 어렵고, 불편하고 괴로운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을 하근기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이번 생에 열심히 노력해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성취한 이후 다음 생에 극락 왕생해 부처님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이를 중근기라고 합니다. 세 번째는 극락에 가지 않고도 이생에서 부처님 말씀을 깨달아 해탈 열반을 하는 것입니다. 극락에 가는 목적인 해탈 열반을 이번 삶에서 얻는 것입니다. 이를 상근기라고 합니다. 상근기는 해탈 열반을 성취해 다시 사바세계의 몸을 받지 않는 것이니 가장 좋은 것입니다.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해탈 열반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완전한 행복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완전한 깨달음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세 단계를 성취하는 방법을 알려 드리려고 합니다.
우리는 일상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고 싶어 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을 얻을 수 있을까요? 행복을 원하고 즐거움을 구한다는 것은 지금이 괴롭고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불편하니까 새집을 원하고, 새 옷을 사고 싶어 합니다. 새집과 새 옷을 구하면 즐겁고 만족스러워합니다. 결국 내가 만족하면 즐거움이고, 불만족스러우면 불편하고 괴롭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새 아파트와 옷을 사면 일시적으로 즐겁겠지만, 그것이 영원한 즐거움을 가져다줄까요? 없는 돈에 대출까지 받아 10년 동안 모으고 또 모아서 새 아파트를 샀기에 지금 당장은 자랑스럽고 기쁠 것입니다. 그런데 1년이 되지 않아 옆에 새로운 아파트가 생기면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조건도 더 좋고 평수가 더 넓은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때부터는 행복한 마음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좋던 아파트가 이제는 싫어지고, 불만이 생깁니다. 그 불만족스러운 마음이 고통을 만드는 것입니다.
행복해진다는 것은 어떤 대상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그냥 좋아하면 그만입니다.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실 지금 싫어하는 것들을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한때는 내가 너무 좋아했던 것들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나는 부인, 남편도 한때는 너무 좋아서,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레고 바라만 봐도 행복하고 돌아서면 전화하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그때 행복하지 않았으면 아마 결혼도 하지 않았겠지요.
그런데 지금은 왜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다수 사람은 “그때는 몰랐다” “저 인간이 저럴 줄 몰랐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그 사람입니다. 바뀐 것은 바로 자신입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런 오해를 만든 것입니다.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그냥 있는 그대로 좋아하면 됩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조금씩 바뀌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 걸 먼저 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를 하심이라고 합니다. 하심을 실천하면 상대방은 예전 그대로 다시 좋아지게 됩니다.
매 순간 불행의 원인이 되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행복하고 싶은데 안 된다고만 말합니다. 지금부터 있는 그대로 좋아하겠다는 마음을 내세요. 행복해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또한 행복해지려면 공덕을 지어야 합니다. 원하는 물건을 얻으려면 그에 맞는 값을 내야 하듯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행복해 질 수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은 공덕을 쌓는 것입니다. 공덕은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말, 행위 등을 통해 주변에 행복의 기운을 전해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그동안 우리는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고, 먼저 가져야 한다는 등의 ‘내가 먼저’라는 생각에 급급했습니다. 참회기도를 통해 그 마음부터 버려야 합니다.
“부처님, 저는 항상 제가 원하는 것만 이루기를 바라면서 오히려 이루는 것을 방해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방해하는 말을 하고, 방해하는 행위를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라고 말이지요.
이와 함께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기 위해 절에 와서 기도하면서 이웃을 위해 선행을 해야 합니다. 베푸는 마음을 갖는 것이 선행의 시작입니다. 공덕을 쌓고 선행을 실천하면서 아미타부처님을 뵙겠다는 원력으로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반드시 극락으로 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여러분은 두 번째 단계인 중근기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한 가지인 해탈 열반이 남았습니다. 해탈 열반이 무엇입니까. 해탈은 어떠한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속은 늙고 병들고 죽을 수밖에 없는 윤회의 구속을 의미합니다. 결국 해탈은 세상 모든 존재가 겪을 수밖에 없는 생노병사의 구속에서 벗어남을 의미합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을 해탈이라고 할 때, 여기서 태어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몸이 태어난 것입니다. 나이를 먹으면 몸이 늙고 병들고 죽어갑니다. 태어났을 때, 어릴 때, 청년일 때, 죽을 때도 내 몸입니다. 그럴 때마다 그 몸은 같은 것입니까, 다른 것입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몸은 계속 변합니다. 10년 전의 몸과 지금의 몸은 다릅니다.
몸의 주인인 나는 어떻습니까? 옷이 스무 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옷을 입는 주인은 똑같습니다. 옷의 주인이 같으면 10벌이든 100벌이든 주인의 옷입니다. 집의 주인이 같으면 10번 이사를 해도 100번 이사를 해도 모두 나의 집입니다. 몸의 주인이 같으니까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몸입니다. 10살 때 몸의 주인인 나나, 지금의 주인인 나나 같은 존재입니다. 그 변하지 않는 몸의 주인인 나를 깨닫는 것을 해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주인을 바로 알면 나는 더 이상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을 반복하지 않아도 됩니다.
열반은 모든 욕망이 소진된 상태입니다. 물질이 불에 다 타고 나면 더 이상 탈 것이 없는 것처럼 더 이상 욕망이 생기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러니 구할 게 없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몸이 젊으면 좋다고 하고, 나이가 들면 불편하다고 합니다. 왜 불편하죠? 늘 눈으로 좋아하는 색깔과 모양을 구하고, 귀로 좋아하는 소리를 구하고, 코로 좋아하는 냄새를 구하고, 입으로 좋아하는 맛을 구하고, 좋아하는 감촉을 구하는데, 젊었을 때는 잘할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드니까 잘 못하고 건강할 때는 잘했는데 건강하지 못하니까 불편합니다. 그러니 몸의 건강은 불만족스럽고, 싫어하는 마음을 좋아하고 만족하는 상태로 이끌어가도록 하는 필수요소입니다.
그런데 싫어하는 마음은 누구의 마음입니까? 좋아하는 마음은 누구의 마음입니까? 주인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싫어하는 마음의 주인과 좋아하는 마음의 주인은 같습니다. 그래서 싫어하는 마음의 주인과 좋아하는 마음의 주인을 알면, 마음을 나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또한 몸을 나로 착각하지 않습니다. 그 주인을 알면 더 이상 불만족이나 괴로운 마음에서 즐거움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구하지 않는 상태가 열반입니다.
구할 필요가 없으니 몸이 필요 없고, 구하지 않으니 윤회도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몸과 마음의 주인을 깨닫는 것이 곧 해탈 열반입니다. 그리고 그 나를 깨닫는 것을 견성이라고 합니다. ‘나’를 다른 말로 진여 자성이라고 부릅니다. 진여는 변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다 변해도 나는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깨닫는 성품은 자성을 깨닫는다고 해서 견성이라고 하고 성불은 해탈 열반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여러분이 실천하면 상근기입니다. 극락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괴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말하고 행동할 때, 누구의 생각이고, 누구의 말이고, 누구의 행동입니까? 항상 생각이 일어날 때마다 ‘아, 이 생각을 보고 아는 것이 나야’ ‘행동할 때마다 행동을 보고 아는 것이 나야’ ‘대상을 볼 때마다 몸이 보거나 마음이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아는 것이 나야’라고 나를 일깨워 주면서 생각과 언어와 행동을 하다보면 하근기, 중근기, 상근기가 동시에 다 이루어집니다. 그렇게 된다면 여러분들은 지금 괴로움에서 벗어나 즐거움을 얻게 되고, 선행으로 공덕이 쌓여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고, 스스로 주인인 자성을 항상 알아차려 해탈 열반을 성취해 생로병사의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물론 습관을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더라도 절에 자주 나와서 이번 생에도 행복하고 다음 생에도 행복하고 나아가 해탈 열반을 얻는 데 꼭 필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깊이 새기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4월 28일 부산 북구 행복선원(주지 윤광 스님)에서 봉행된 ‘금강경 1000일 기도 200일차 회향 특별 초청법회’에서 초청법사 목종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728호 / 2024년 5월 8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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