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시장, 시민과의 “녹지공간” 약속 지켜야

교계 ‘송현광장 이승만기념관’  ‘강경 반대’ 일관된 입장 유지 서울시와 토론할 이유 없어 여론 직시해 백지화 선언해야

2024-06-17     법보

서울 송현광장 이승만기념관 건립에 대해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여론을 지켜보겠다”고 했다. 교계 반대에도 이 사업을 기어코 추진하겠다는 오만적 행보를 보인 걸 고려하면 일단 관망하는 게 아니냐고 볼 수 있겠으나 속내는 그렇지 않다. ‘이승만 기념관 건립’추진위가 직접 교계 설득에 나서주기를 당부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서울 송현광장 이승만기념관 건립 문제를 도마 위에 올린 건 오 시장이다. 서울시는 2022년 7월 “(송현녹지광장 부지를) 시민을 위한 열린 녹지 광장으로 어떤 시설도 들어올 수 없다는 원칙을 정하고 끝까지 비워 놓겠다”고 했다. 오세훈 시장도 2023년 5월 “이건희 기증관 외의 다른 시설물은 짓지 않고 시민을 위한 녹지공간으로 남겨 두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해 11월 오 시장이 돌변했다. 서울시청 시장실을 찾은 이승만기념재단 관계자와 비공개 회담에서 직접 PT(프레젠테이션)까지 발표하며 송현동 부지를 제안했다. 오 시장이 준비한 자료에는 이승만기념관 건물 배치도·면적·소요 경비 등 구체적 계획까지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오 시장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불교계를 설득하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하게 밝혀왔다. 지난 2월 23일 열린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이제는 입지가 어디가 바람직한지를 본격적으로 논의할 시점에 왔다고 본다”면서 “송현동 입지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불교계와 협의도 하고 설득하겠다”고 했다. 

6월 11일 서울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도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적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보겠다”면서도 “불교계에서 반대를 표명하고 계셔서 얼마 전 건립추진위 쪽에 ‘의견을 달리하는 분들이 계시니 직접 만나 협의해주실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물론 저희(서울시)도 만나서 여쭙고 토론하겠지만 위원회가 직접 (불교계와) 접촉하면 해법이 마련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내다보았다. 

다음 날인 6월 12일 시정질문에서 김종길 국민의힘 시의원이 “전날 발언이 이승만 기념관 건립 추진에 한발 물러선 것이냐?”라고 묻자 “한발 물러선 것이라기보단 건립추진위가 직접 불교계와 접촉해줬으면 도움이 되겠다는 의견을 말한 것”이라고 했다. 한마디로 어처구니가 없다. 교계의 진의를 아직도 모르겠다는 말인가? 아니면 애써 모르쇠로 일관하다 기회를 엿보겠다는 것인가? 

이 문제가 수면 위로 급부상했던 2023년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당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서울시의 송현광장 내)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굉장히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다”며 “일방적인 추진은 국민통합과 화합을 저해하고 오히려 더 큰 불화를 야기할 것”이라며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태고종 중앙종회도 “서울 한복판, 태고종 총무원사와 조계종 총무원사 사이에 이승만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결정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경고하며 “불교계의 의견을 묵살하고 기념관 건립을 강행해 일어나는 각종 불상사와 부작용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서울시에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올해 들어서도 조계종 중앙종회 종교편향불교왜곡대응특별위원회는 “이승만기념관 건립 부지로 송현광장은 검토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조속히 밝혀달라”며 “만약 시간을 끈다면 서울시청을 항의 방문하고 광장에서 농성하는 등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건립계획을 저지하겠다”는 강경 대응 의사를 밝혔다. 조계종 전국교구본사주지협의회 또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교계는 일관되게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이 사업을 용인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교계는 서울시와 이 문제를 놓고 토론할 이유가 없다.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위와의 토론은 더더욱 할 이유가 없다. 오 시장이 결자해지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녹지공간으로 남겨 두겠다”는 시민과의 약속을 지키면 된다. 이승만기념관 사업에 서울시장의 사활을 걸기라도 했다면 원로배우 신영균 한주홀딩스코리아 명예회장이 기부 의사를 밝힌 13,223㎡(4천평) 규모의 사유지에 기념관을 지으면 될 일 아닌가.

[1733호 / 2024년 6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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