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행복’ 정책 창출 발원하며 정각선원서 매일 기도

천우정 국회직원불자회장 대구 연화사 ‘진여학생회’서 불연 맺어 ‘고통의 실체’ 등 주제로 도반과 토론 ‘나라고 할 만한 실체 없다’ 가르침 새겨 행정고시·사회생활 감정적 어려움 극복 ‘팔만대장경’, K-불교 세계화 확산기회 ‘사찰음식’ 등 지식재산권 등록해야

2024-07-26     이지윤 기자
천우정 국회직원불자회장은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부처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며 정진해가고 있다.

오전 6시. 정적이 흐르던 정각선원 문이 열린다. 불이 켜지고 밤새 머물던 어둠도 물러난다. 법당에 들어선 천우정(51·혜관) 국회직원불자회장은  정성껏 합장 반배한 후 부처님 전으로 발길을 옮긴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은 그는 지극한 마음으로 삼배를 올린다.

‘국민과 국가를 위한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떠오르길 발원합니다. 부처님 감사합니다.’

국회 공무원 30년 차인 천 회장에게 매일 아침 정각선원에서의 기도는 오래된 일상이다.  그가 불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중학생 시절 한 생각에서 비롯됐다. 평범한 학생이었던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면서 전교 3등 안에 들겠다고 결심했다. 그렇게 학업에 매진했고 그해 전교 3등이라는 결과를 이뤄냈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였다. 일상은 바뀌지 않았고 불안과 불만족은 여전했다. 짧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남들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좇는 것이 능사가 아니구나. 삶은 무엇일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등학교에 진학하자 삶에 대한 물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성적에 대한 강박에서도 조금은 자유로워졌다. 나는 무엇이며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에 대한 의문은 더욱 깊어갔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학교에서 일주일에 1시간씩 진행하는 철학 수업에서 불교를 만났다.

“고교시절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때 삶에 대한 의미를 찾기 바빴어요. 그러다 철학 수업에서 불교 사상을 접하게 됐는데, 부처님께서 괴로움의 원인이 나라는 실체가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라고 하시는 말씀에서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나’가 있어서 이렇게 괴롭다는 걸 알게 됐죠. 바로 ‘이거다’ 싶었습니다.”
 

홍대선원 주지 준한 스님과 걷기명상.(2023.10)

불교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불서들을 쉼 없이 읽어나갔다. 2학년이 되자 새로 사귄 친구를 따라 집에서 가까운 대구 대덕산 연화사(현 광덕사)에도 가게 됐다. 곧 청소년 불교 모임인 ‘진여학생회’에 참여했다. 학생회에서는 ‘고통의 실체는 무엇일까’ ‘왜 고통스러울까’ ‘열반의 경지는 무엇인가’ 등을 주제로 토론하고 있었다. 진지한 친구들 모습을 보며 불교에 더욱 매료됐고, 학생회에 참여하기 위해 매주 대덕산을 올랐다. 방학이면 의성 고운사로 수련회를 떠나 하루 10시간씩 참선을 하며 학생회 활동을 이어갔다. 경북대 행정학과에 진학해서도 불교 공부는 놓지 않았다. 불교동아리 ‘경불회’에서 활동하고, 진여학생회 지도위원을 맡아 후배들을 이끌었다.

“노는 방식에는 차이가 있는데 돌이켜보면 저는 도반들과 토론하는 것이 놀이였습니다. ‘사바세계란 무엇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세상이란 어떤 것일까’에 대한 궁금증으로 이어지는 토론이 흥미로웠어요. 명확한 답을 찾기보다 한 주제에 몰두해서 함께 토론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았죠.”

행정고시를 준비하면서도 불법은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당시 고시생들은 골방에서 공부하면서 외로움, 불안감을 느꼈다. 그의 친구들도  견디지 못하고 고향으로 내려가거나 사람들이 많은 독서실로 나가기 일쑤였다. 골방에서 혼자 공부하는 그에게도 시험에 대한 부담감은 컸다. 그때마다 감정에 휘둘리기보다 경전 내용을 되새겼다.

“부처님께서 ‘나라고 할만 한 실체가 없다’고 하셨으니 불안, 외로움, 번민들도 당연히 실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정들이 올라올 때마다 ‘모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이다. 부처님 말씀에 오직 의지했죠.”

1995년 6월 행정고시를 통과하고 5급 사무관으로 부임해 신생부서였던 법제예산실의 예산분석관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이후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재정제도 개혁 방안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국회예산정책처의 원년 멤버로 지방소비세 도입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2019년부터 3년간은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문위원을 맡았고, 올해 7월 12일부터는 국회 교육위원회 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 자비에 살몽 루브르박물관 부관장의 방문. (2023.7)

공직생활을 하면서도 불교는 삶의 길라잡이였다. 정책을 검토·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국회의원들이 정부를 상대로 질의하면서 정책에 반영되는 것을 목격하며 보람을 느꼈다. 그러나 괴로운 감정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을 때, 동료들이 승진하는 모습을 볼 때면 괴로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때도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마음을 다스렸다.

“내 마음인데 내 마음같지 않을 때 가장 힘들었습니다. 남에게 들은 싫은 소리가 종일 마음에 맴돌고, 승진대상에서 제외되면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계속 괴롭게 느껴집니다. 그럴 때면 불법을 떠올립니다. 부처님께서는 감정이 내가 아니라고 하셨듯이 감정을 나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는 느낌으로만 대하려고 합니다. 그러면 괴로운 마음이 점차 수그러들고 오히려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7월 국회직원불자회장에 선임됐다. 그는 우공이 산을 옮기듯 묵묵히 일을 해나갔다. 2022년 50여 명이었던 국회 직원불자는 그가 소임을 맡은지 1년 만에 106명으로 늘었다. 그는 국회직원불자회도 시대와 융합하며 힙해진 불교의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한다고 보았다. 홍대선원 준한 스님을 법사로 아침 선명상을, 저스트비 홍대선원 법사 법증 스님의 지도로 선태극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등 대중의 관심에 부응하고자 했다.

그에게 불교가 버팀목이자 의지처가 됐던 만큼 이를 알리고 지켜내는 데에도 힘을 쏟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조계종 정책자문위원을 맡아 ‘팔만대장경’ 콘텐츠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 거듭 제안했다. 데이터가 핵심이 되는 4차 산업혁명 시기이기에 부처님이 설한 비유, 법문 등이 담겨있는 ‘팔만대장경’을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K-콘텐츠의 수요가 늘고 있어 K-불교의 세계화에도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봤다.

“세계 곳곳에서 K-콘텐츠가 대중성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 불교에도 어마어마한 콘텐츠 보물이 있습니다. 바로 팔만대장경입니다. 1차 번역이 완료된 경전을 이제 2차 번역까지 진행해 경전 속 이야기를 바탕으로 동화책이나 웹툰 등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대장경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것은 물론 탈종교화 시대의 새로운 전법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불교 데이터의 지식재산권 등록도 강조했다. 특히 새롭게 등장한 ‘선명상’의 개념과 ‘사찰음식’에 대해 세계적으로 지식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도록 국제상표로 등록하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찰음식은 명장 스님들마다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상표권이라도 등록해 이를 지켜야 합니다. 불교의 지식재산권을 확보해야 사라지지 않고 미래세대에 전승할 수 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 초청 법회.(2023.10)

그가 불교 전법과 수호에 각별히 신경쓰는 이유는 자세히 살피면 일상생활 가운데 불법 아님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먹은 음식이 몸의 에너지로 변화하는 것에서 ‘자타불이’의 가르침을 떠올린다. 또 4~5년 전 한양대에서 과학기술정책학 박사과정에서 배운 원자의 특징 통해 불법에서 말하는 ‘색즉시공, 공즉시색’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음식은 먹지 않으면 대상으로 여겨지지만 먹는 순간 몸의 에너지로 전환됩니다. 여기서 자타불이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습니다. 또 상처가 나서 떨어진 살점에서도 ‘나라고 할만 한 실체가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불법 아님이 없다는 걸 더 절실하게 느끼게 돼죠. 부처님 가르침은 정말 과학적이고 합리적이며 위대합니다.”

경전 강의를 듣고, 명상을 하며 일상생활에서 불법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는 천 회장. “일상생활이 모두 불법인데, 불교가 잘 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불교는 잘 되는 집안이에요”라며  환하게 웃는 그는 기도와 보살행으로 국회와 한국불교를 맑아지게 하고 있다.

이지윤 기자 yur1@beopbo.com
[1739호 / 2024년 7월 3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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