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순의제향 현장, 외면당한 의승 추모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현장”

9월 23일, 칠백의총 순의제향 본 행사 끝난 후 종사영반 국가유산청장·유림 관계자 등 불교 의례 중 행사장 벗어나 아헌례에 스님들 배제…축문에도 영규대사·의승 언급 없어

2024-09-24     박건태 기자
불교의례로 800의승을 기리게 된 첫 자리였지만 추모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9월 23일 충남 금산 칠백의총.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 주최로 열린 ‘제432주년 순의제향’ 현장은 어수선했다. 행사 본질인 제향행제가 끝난 후 진행된 종사영반은, 불교의례로 800의승을 기리게 된 첫 자리였지만 추모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순의제향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제향행제가 끝난 후, 스님들의 집전으로 진행된 종사영반은 유림과 국가유산청 관계자들의 외면 속에 쓸쓸하게 이어졌다.

스님들이 집전을 준비하는 동안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을 비롯한 유림 대표자들은 종용사 뒤편에 자리한 칠백의총에 참배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종사영반은 제향행제가 모두 끝난 후 사실상 부대행사였던 살풀이 공연까지 끝난 뒤에야 진행됐다. 스님들이 집전을 준비하는 동안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을 비롯한 유림 대표자들은 종용사 뒤편에 자리한 칠백의총에 참배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스님들의 목탁 소리가 울리는 동안에도 참배객들은 이를 무시한 채 속속 행사장을 빠져나갔다. 처음부터 불교의례에 집중할 수 없도록 설계된 순서 배치였다.

의총 참배를 마친 유림과 일부 참배객들은 스님들이 집전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용사 안으로 들어갔다. 위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집전의 엄숙함을 방해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결국 불교계 관계자가 이들에게 자제를 요청한 후에야 사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현장의 혼란스러움은 종사영반 중에도 계속됐다. 의총 참배를 마친 유림과 일부 참배객들은 스님들이 집전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종용사 안으로 들어갔다. 위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거나 대화를 나누는 등 집전의 엄숙함을 방해하는 모습도 곳곳에서 목격됐다. 결국 불교계 관계자가 이들에게 자제를 요청한 후에야 사당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칠백의총 관계자 한 명만 배치됐어도 방지할 수 있었던 일이라는 점에서 종사영반 봉행에 대한 주최 측의 부실한 준비를 여실히 드러냈다. 종사영반 후반부에 이르러 ‘반야심경’ 봉독 때에는 추모제 참석자들 대부분이 행사장을 떠난 상태였다. 결국 불교계 관계자 20여 명만이 800의승 추모 자리를 지켰다.

이날 순의제향이 의승병에 대한 추모를 사실상 배제했다는 지적은 순의제향 과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조헌과 의병의 위패가 모셔진 종용사 중앙에 ‘영규대사(靈圭大師)’와 ‘승장사졸(僧將士卒)’의 위패가 함께 놓여 있었지만, 후손 대표들이 조상의 넋을 기리는 아헌례에서는 승병의 후손이라 할 수 있는 스님들을 참여시키지 않았다. 특히 제례를 받는 대상에게 고하는 축문에서도 영규대사와 승장사졸에 대한 호명은 빠져 있었다.

불교계의 800의승 복권 노력에 대한 유림계의 반발도 행사 전부터 뚜렷했다. 성균관(관장 최종수)과 성균관유도회총본부(회장 최영갑)는 9월 19일 ‘유교신문’에 ‘칠백의총 순의제향과 관련한 성균관의 입장’을 통해 종용사에서의 불교의례 시행과 칠백의총 명칭 변경 시도를 역사왜곡으로 규정하며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김문준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장도 9월 14일자 ‘유교신문’ 특별기고문에서 “종용사에서 불교 제례를 올리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며 종사영반에 대한 반감을 표출했다.

유림의 의도적인 무시와 홀대는 행사장 주변에서도 드러났다.

이러한 유림의 의도적인 무시와 홀대는 행사장 주변에서도 드러났다. 배천조씨문열공종회를 비롯한 일부 문중은 칠백의총 입구에 ‘사당 전통도 국가 유산이다. 종용사 전통 훼손말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후손들은 ‘국가유산청은 근거 없는 칠백의총 명칭 변경 철회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사실상의 시위를 펼쳤다. 이러한 유림의 반발은 단순한 의견 표명이 아니라 행사 운영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최응천 국가유산청장. 

국가유산청의 미흡한 행정도 문제로 지적됐다. 불교계의 요구와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의례 진행이 아닌, 유림의 반발에 휘둘려 의례의 본질을 훼손시켰다는 점에서 국가유산청의 책임이 크다는 지적이다. 유림의 입장을 지나치게 고려한 국가유산청의 소극적 행정이 의승에 대한 추모인 종사영반조차 순의제향의 부대행사로 전락시켰다는 것이 불교계의 지적이다. 결국 순의제향이 국가 주도로 열린 공식적인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정의를 바로 세우지 못한 행정 실패라는 평가를 피하지 못할 전망이다.

조계종 총무부장 성화 스님.

조계종 총무부장 성화 스님은 “불교계가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행사 진행에서 많은 부분이 아쉬웠다”며 “다음 행사 때는 승병과 의병의 넋이 함께 제향을 받길 바란다”고 유감을 표했다. 종사영반 집전을 맡은 교육부장 덕림 스님도 “호국이 있어야 호법이 있고, 호법이 있어야 호국이 있다”며 “그럼에도 모든 내빈들이 빠져나간 채 불교계 인사들만 남아 외롭게 종사영반을 봉행한 것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금산=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1746호 / 2024년 10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