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무다 문화재단 이사장 주석 스님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는 그 마음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입니다” 상대와 내 생각 다른 것은 상대가 틀린 것 아니라 나와 다를 뿐 사람과 사물 정성으로 대할때 그 에너지로 인해 행복은 찾아와 천일기도 회향까지 인욕의 갑옷 입고 자비의 방 들어가길 축원

2024-10-11     주영미 기자
부산 송정 대운사 주지이자 쿠무다·명경문화재단 이사장 주석 스님은 8얼 11일 부산 행복선원에서 1000일 기도 300일 회향 초청법회에서 ‘일체유심조'를 주제로  설법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고 사라진다. 이 가르침에 불교의 핵심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체유심조’를 현대적인 말로 표현하면 어떤 것일까요?

믿음? 좋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그래요. 평등? 네, 누구든 말씀하셔도 됩니다. 희망? 감사합니다. 이렇게 정말 다양하게 표현해 주셨습니다. 스님과 불자님의 언어가 다르고 또 집에서는 아버지의 언어가 다르고 어머니의 언어가 다릅니다. 현상과 대상과 사람을 바라볼 때 각자 자신의 안목으로 그것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어나는 현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마주하는 슬픈 일, 기쁜 일, 행복한 일, 고통스러운 일 등 여러 가지 에피소드에 의해 느끼는 것도 각자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런데 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그 모든 것이 ‘옳다’라고만 생각하고 살아가고, 반면 상대가 판단하고 결정하는 일이 나와 맞지 않으면 ‘저 사람이 틀렸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체유심조’라는 말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상대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똑같을까요? 여기 계신 불자님이 동그란 업을 가지고 있다면 옆에 계신 불자님은 네모난 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세모난 업의 모양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세모난 나의 마음으로 볼 때 앞에 계신 보살님께서는 ‘일체유심조’를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다른 분은 ‘하나’가 아니라 ‘평등’이라고 생각했다면, 똑같지 않게 됩니다. 이것은 아주 가볍고 사소하게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작용이지만, 부모, 형제, 가족, 절에서 만나는 도반, 직장의 동료 등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런 일들이 반복적으로 생겨나면 어떻게 될까요? 나와 생각이 다르면 처음에는 조금씩 인정하다가도 나중에는 자꾸만 ‘틀리다’는 마음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틀리다’는 마음이 쌓이면 결국 갈등이 생깁니다. 처음에는 좋아 보이다가 나중에는 점점 싫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싫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 우리가 하는 말이 있습니다. “안 보면 그만이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살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란 상대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는 나와 업이 다를 뿐입니다. 나의 세모가 어떻게 동그라미와 네모와 맞아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 비슷한 생각을 해주길 바랍니다. 내 생각에 동조해 주기를 바라다가 원활하지 않으면 갈등과 시비, 여러 분별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불자들은 어떻게 대처하고 다시 작용해야 할까요? 제가 아까 정답을 알려드렸습니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또 일체유심조의 마음으로 나태주 시인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는 시구처럼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모든 것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 없게 됨을 바르게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일체유심조’를 저의 언어로 표현한다면, ‘정성’이라고 쓰고 싶습니다. 다른 말로는 ‘성심(誠心)’입니다. 정성스러운 성(誠), 마음 심(心). “성심껏 모시겠습니다”라는 표현과 같습니다. ‘정성’은 요즘 저의 화두이기도 합니다.

스님들께서는 법당에서 불자님들의 이름을 부르며 ‘축원’을 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출가한 후 몇 년 동안 그 마음가짐이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어른 스님들께서 축원하라고 하셔서 무조건 한다는 의무감만 있었지, 아무런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점점 기도하고 수행하며 정진하다 보니 스님들이 여러 불자님을 위해 기도하고 축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의 영향을 생각하니 소홀하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불자님 한 분 한 분의 법명을 부르며, 그분의 모든 서원이 이루어지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축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입니다. ‘나의 역할이 부처님과 불자님을 연결해 주는, 기도와 에너지를 전달하는 중요한 자리’라는 것을 느끼고 나서부터입니다.

이제는 불자님이 “스님, 저는 집안이 너무 힘듭니다”라고 말씀하시면 잠이 안 옵니다. 불자님이 어떻게 하면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 편안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 속에서 여러분을 위한 기도와 축원을 더욱더 정성스럽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자님들이 고민을 털어놓으실 때가 있습니다. “스님, 우리 아들이 장가를 가야 하는데, 우리 딸이 시집을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처음에는 가볍게 “저도 못 갔는데요?”라고 농담하며, “때가 되면 가겠죠”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불자님 한 분 한 분의 고통을 듣고, 가볍게 넘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도심 법당에서 전법을 하시는 많은 스님도 불자님들을 대할 때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에서 개척 교회가 있듯이, 개척 사찰의 각오로 불자님들을 대하는 수행자들과 스님들의 마음에는 정성이 담겨 있습니다.

저는 요즘 특히 더 나의 모든 걸음마다, 사람들을 만날 때도, 차 한 잔을 마실 때도, 정성을 담으려 합니다. 나이 많은 어르신이나 적은 어린이, 모든 존재를 대할 때도 정성스러운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 정성은 의도적인 습관이 되어도 좋습니다. 정성스럽게 대할 때 그 에너지가 모이면 분명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 마음가짐이 어떤가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도 달라집니다. 관세음보살님과 같은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면, 그 사람도 관세음보살님의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정적인 마음으로 상대를 보면, 나와 상대 모두 마구니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체유심조’입니다. 상대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라고 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또한 나의 생각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며,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한 마음을 갖고 나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매일 사시 예불 때 ‘금강경’을 독송하며 1000일 정진을 목표로 하고 계십니다. 어느덧 300일을 맞이하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분들 중에는 아직 동참하지 못한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동참하시면 좋겠습니다.

‘금강경’ 독송은 짧게는 30분, 길게는 40~50분 정도 소요됩니다. 1시간 이내에 끝나는 수행입니다. 가능하다면 절에 나오셔서 사시 예불에 동참하며 독송하시길 권합니다.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절에 나올 수 있는 날을 정해 놓고 꾸준히 동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독송하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다해보십시오.

도심 한복판에서 법회를 열고 정진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시는 스님이 계시다는 것은 불자님께 큰 복입니다. 하지만 그 복을 잘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법화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욕의 갑옷을 입고 자비의 방에 들어가서 중생들을 대하라.” 도심 속 사찰의 스님들이 혼자 외롭게 기도하시지 않도록, 한분 한분이 마음을 내어주시길 바랍니다. 정진하는 공덕을 보이지 않는 줄이라고 생각하고 꼭 붙잡고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줄이 불보살님의 세계까지 닿아, 말 그대로 행복한 시간과 공간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글 한 편을 읽어드리며 이 시간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불본행집경’에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입니다.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내 그대들에게 법을 설하리라. 그대들이 나의 가르침을 받아 지녀 따르고 청정히 수행한다면 곧 해탈의 힘을 얻을 것이니라. 그대들이 만약 나의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면 이제 조용히 법을 들을 귀를 준비하라.”

‘금강경’ 1000일 기도 회향 때까지 더 많은 불자님이 이 법당에서 함께 정진하시면 좋겠습니다. 수행하며 스스로 행복해지면 저절로 가족도 행복해집니다. 가족이 행복해지면 이웃이 건강해지고, 이웃이 건강해지면 나라가 건강해지며, 나아가 전 세계가 건강해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 중요한 역할을 여러분이 해주시길 기원합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8월 11일 부산 북구 행복선원(주지 윤광 스님)에서 봉행된 ‘금강경 1000일 기도 300일 회향 기념 특별 초청 법회’에서 부산 송정 대운사 주지이자 쿠무다·명경문화재단 이사장 주석 스님이 ‘일체유심조’를 주제로 설법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1748호 / 2024년 10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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