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정총림 범어사 교육국장 각전 스님
“일체의 상이 허망하여 진실 아님을 알게 되면 부처를 보게 된다” 세계는 상을 통해 인식되기 때문에 이 상을 부숴야 진실 드러나 마음 속의 상도 생각과 마음 작용이지만 모양을 갖춘 상의 일종 화를 내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면 그것이 바로 상을 감지하는 것
“‘불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여래를 보게 되리라. / ‘불고수보리 범소유상 개시망어 약견제상비상 즉비망어 여시제상비상 즉견여래(佛告須菩提 凡所有相 皆是妄語 若見諸相非相 卽非妄語 如是諸相非相 卽見如來)’,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되,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거짓말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게 된다면, 곧 거짓말이 아니게 되리라. 이와 같이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게되면, 곧 여래를 보리라.”
불자님들이 많이 아시는 ‘금강경’의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라는 구절입니다. 특히 이 구절에 대해 여러 번역본을 함께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가장 많이 읽히는 구마라집 스님의 번역에서는 “무릇 존재하는 모든 상은 다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게 되면 여래를 본다”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구마라집 스님께서 ‘허망’이라고 표현한 구절을 보리유지 스님께서는 ‘망어(妄語)’라고 번역하셨습니다. 망어는 거짓말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상은 거짓말이니”라고 번역할 수 있는 것입니다. ‘허망하다’와 ‘거짓말’은 비슷한 뉘앙스를 주지만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이번에는 진제 스님께서 번역하신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진제 스님께서는 개시허망 다음을 ‘즉시진실(卽是眞實)’이라고 번역하여, 모두 허망한 것이 곧 진실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다음 급다 스님께서는 ‘망명(妄名)’이라는 단어를 쓰셨습니다. 망명은 거짓된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산스크리트어본을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세존께서는 존자 수보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보리여, 상의 구족에 관한 한 그러한 한 거짓(mrsa)이며, 상의 구족이 아닌 한, 그러한 한 거짓이 아닙니다. 참으로 이렇게, 상이 상 아닌 것으로부터, 여래는 보여져야 합니다.”
여기에서도 ‘거짓’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거짓말이라는 의미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mrsa’라는 단어는 진실이 아닌 거짓을 뜻합니다. 콘즈(E.Conze)라는 학자의 영역본을 보면 ‘fraud’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는 ‘사기’라는 뜻입니다. “모든 모양이 있는 것을 모양이라고 이야기하면 다 사기 치는 것이다”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거짓말하지 마라”를 “사기 치지 마라”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진실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모든 존재하는 모양, 상으로 파악되는 것은 모두 진실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여러 번역본을 비교해 보면 ‘허망하다’는 곧 ‘진실하지 않다’는 뜻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계를 상을 통해 인식합니다. ‘금강경’에서는 그 상이 허망한 것, 진실이 아니며 모두 환상이고 거짓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을 완전히 깨부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초기 경전에는 뱀의 비유가 있습니다. 뱀이 성장하려면 허물을 벗어야 하듯, 우리 마음속 상도 그와 같아 변하지 않으면 성장을 막게 됩니다.
뱀의 허물은 변하지 않는 성질 때문에 뱀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속의 상도 생각과 마음의 작용이긴 하지만 모양을 지니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시절 가졌던 세계관이 있을 것입니다. 대학을 다니지 않으셨더라도 20대 초반이나 중반, 늦은 분은 20대 후반에 세계관이 형성됩니다. 대부분 이 세계관은 세월이 흘러도 유지됩니다. 물론 변하는 분도 있지만, 변하지 않는다면 그분은 허물을 벗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30년, 40년, 50년을 살면서 한 번도 허물을 벗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정신적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불교 공부를 어느 정도 하신 후에 오랜만에 옛 친구를 만나 대화해 보면 예전과는 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많은 분이 공감하실 겁니다. 이는 뱀을 둘러싼 허물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두 사람 중 누군가는 허물을 벗어나 성장한 상태인 것입니다. 이렇듯 성장을 위해 허물을 벗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금강경’의 가르침은 이 뱀의 허물과는 또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의 상에는 유아적인 상, 성인의 상, 성숙한 상이 있습니다. 기존의 상을 더 높은 상으로 바꿔가며 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정신적으로 성숙하는 과정이 그러하듯, ‘금강경’에서 말하는 ‘범소유상 개시허망’은 이런 상 자체가 가짜라는 의미입니다. 상 자체가 유아적인 상이든 성숙한 어른의 상이든, 혹은 우리가 경전에서 자주 접하는 성인의 상이든 그 어떤 상이든 모두 다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이 그만큼 충격적입니다.
만약 이 가르침이 충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이는 아직 자신의 마음속에 어떤 상이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은 그저 하나의 단어일 뿐입니다. 불교 공부는 이처럼 피상적으로 하면 제자리걸음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단어가 현실에서 무엇을 가르치는지 직접 보고 알아야 합니다. 나는 어떤 상을 가지고 있는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은 그 예에 불과합니다. 이 외에도 상은 무수히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상이 있어야 이를 인식하며 더 새로운 상으로 거듭날 수 있고, 궁극적으로 모든 상이 거짓임을 깨닫게 된다는 점입니다.
상이란 쉽게 감지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에서 상을 가장 쉽게 발견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화’입니다. 화가 날 때는 화를 보면 됩니다. 그 화가 바로 법(法)입니다. 물론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같은 경전의 가르침도 법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즉시 알 수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와서 보라”라고 하신 가르침은 지금 바로 알아차릴 수 있는 것이 법임을 의미합니다. 화가 나면 그 화를 보십시오. 화라는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화를 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법을 보는 것이며 불교 수행의 시작입니다. 이 능력이 없으면 불교 공부는 진전이 없고 지식만 쌓게 됩니다.
화가 난 뒤에야 ‘내가 화를 냈었구나’라고 생각하는 것도 흔합니다. 그러나 이는 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는 순간에 즉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서 평소에 갖고 싶던 명품 가방을 보고 마음속에서 ‘저 가방을 갖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날 때 그 욕구를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법을 보는 것입니다. 이 능력을 익혀야 불교 공부의 실질적인 첫걸음을 뗄 수 있습니다.
상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상을 내가 감지하는 것입니다. ‘20대 초반에는 이랬지’라는 생각도 하나의 상입니다. 그 상이 나이가 들고 여러 경험을 겪으며 바뀌는 것은 뱀이 허물을 벗는 것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뱀도 자신의 허물이 있는지 알기 쉽지 않습니다. 허물이 온몸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도 생각이 온몸을 둘러싼 껍데기처럼 존재합니다. 절에 가면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표현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는 ‘발밑을 비추어 보라’는 뜻으로, 저 먼 산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자신의 발밑으로 향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같은 ‘금강경’의 가르침에 대해 육조 스님께서는 “여래께서는 법신을 보여 주시고자 일체의 모든 상이 모두 허망하다고 설하신다. 만약 일체의 모든 상이 허망하여 실제가 아님을 깨달으면 곧 여래의 모양 없는 진리를 보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법신은 모양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32상은 정수리가 솟아오르고 어깨가 두툼한 등의 형태로 표현되지만, 법신으로서의 진리 그 자체는 모양이 없습니다. 모양 없는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 모든 상이 거짓이라 하신 것입니다.
종경 스님이 ‘금강경 오가해’에서 읊은 게송에서도 이 가르침이 잘 드러납니다. “‘보화비진요망연 법신청정광무변 천강유수천강월 만리무운만리천(報化非眞了妄緣 法身淸淨廣無邊 千江有水千江月 萬里無雲萬里天)’, 보신과 화신은 진실이 아니니 완전히 망령된 인연이다. 법신은 청정하여 넓고 끝이 없다. 강에 물이 있는 곳마다 달이 비치고,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으니 하늘이 끝없이 펼쳐진다.”
보화는 보신과 화신을 가리킵니다. 보신은 부처님이 바라밀행을 통해 얻으신 32상의 몸입니다. 화신은 싯다르타 태자라는 역사적 인물이 가진 육신입니다. 이 보신과 화신은 모두 망령된 인연입니다. 우리 존재도 마찬가지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연 없이는 존재할 수 없듯, 모든 인연은 영원하지 않고 허망하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무엇일까요? 법신이 진실입니다.
법신은 모양이 없음을 경계선이 없고 끝이 없다고 표현합니다. 또 법신은 청정한데, 방을 깨끗이 치우는 것처럼 모든 것을 비워 없앤 ‘공(空)’의 상태로 묘사합니다.
보름달이 뜨면 강물에 비칩니다. 강마다 물이 있으면 달빛이 드리워지며,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을 때 달빛이 더욱 환히 비칩니다. 달이 보화, 깨끗한 하늘이 법신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조금 어렵나요? 강원 시절 많은 가르침을 주신 대강백 덕민 스님께서는 지금도 한시를 술술 외우시며 “어려울수록 공부할 맛이 난다”라고 하십니다. 불자 여러분께도 그러한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부처님 법을 공부하는데 모르는 것이 없다면 과연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불교가 다소 어렵게 느껴질 때 마음속에 진리의 불꽃이 타오르는 것입니다. 진리의 불꽃과 함께하는 불자가 됩시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지난 10월 16일 금정총림 범어사 금정불교대학 양정교육관에서 봉행된 ‘금정불교대학 전문반 불기 2568년 하반기 특별 강좌’에서 공개 강의한 범어사 교육국장 각전 스님의 법문을 요약한 것입니다.
[1751호 / 2024년 11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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