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유우식 경북대 인문학술원 객원연구원·국제문화재전략센터 전문위원

“내 주장이 터무니없다면 해외 학계에선 왜 인정하겠나?”

2024-11-04     법보
유우식 경북대 객원교수·국제문화재전략센터 전문위원.

2024년 11월 1일자 ‘불교IN’에 필자의 연구 내용과 논문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2024년 10월 15일자 ‘법보신문’에 실린 “‘직지’보다 앞선 금속활자본 ‘자비도량참법집해’ 찾았다”라는 기사에 대한 반박 기고문이었다.

필자가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의 남권희 교수님 연구실을 찾은 것은 2017년경의 일이다. 앞서 고려대장경연구소를 설립하고 연구소장과 이사장을 맡으셨던 종림 스님을 경남 함양군 안의면에 있는 고반재로 찾아뵀을 때였다. 스님께 문화재와 서지학 분야에서도 디지털 이미지 분석 기술을 접목해서 연구하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경북대학교에 가서 남권희 교수님을 찾아뵙고 의논해 보라고 말씀해 주셨다. 남 교수님은 서지학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았기에 바로 연락드리고 연구실로 찾아뵈었다. 당시에는 세계 최고 금속활자 ‘남명천화상송증도가’를 인쇄했던 금속활자 ‘증도가자’를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 계셨다.

필자는 교수님께 서지학 분야에서도 안목 감정이나 경험에 의존한 연구에서 탈피해서 최신 기술을 활용하여 연구 결과를 가시화해서 보여 주고 데이터를 정량화해서 누구나 검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만들어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는 제안도 해드렸다.

남권희 교수님의 초대와 소개로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와 인문학술원에서 연사로 여러 차례 특강도 했다. 전주 한옥마을에 있는 대장경문화학교에서 운영하는 완판본문화관에서 공동 세미나를 하기도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도 고문헌관리학을 담당하시는 옥영정 교수님도 찾아뵙고 공개 세미나를 개최하기도 했다. 2019년부터는 경북대학교 인문학술원의 객원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남권희 교수님의 소개로 시작된 일로 필자를 인문학 분야로 이끌어 주신 분으로 먼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이번 기고문의 표제어는 조금 자극적이지만 남권희 교수님의 입장이 함축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어 아래에 싣고 필자의 간단한 답변을 소개한다.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는 이어서 소개한다.

■남권희 경북대 명예교수 주장과 필자의 반박

“고인쇄박물관본·개인소장본 내가 처음 발견”
→ 귀중한 연구자료를 발굴해 주셔서 감사하다.

“두 판본 모두 시기만 다를 뿐 같은 목판서 인쇄”
→ 두 판본을 자세히 보면 같은 목판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미 30년 전부터 서지학계에서 확인된 내용”
→ 안목 감정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또 30년 동안 기술도 발전했고 데이터베이스도 충실해졌다. 새롭게 수집된 자료를 포함하여 일반인도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

“목판, 가로보단 세로로 줄어드는 건 기본상식”
→ 동의하지만 글자의 모양이 달라지고 굵어지는 것은 두 가지 판본이 동일한 목판으로 인쇄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그리고 동일한 목판으로 인쇄되었다고 하더라도 개인 소장본의 길이가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번각 목판본보다 긴 것으로 보아 목판이 크게 수축하기 전의 이른 시기에 인쇄된 것은 확실하다. 또한, 상권 제1장에 찬술자가 조구(祖丘) 스님임이 기록된 제1장까지 남아 있는 개인 소장본의 역사적 가치가 보물로 지정된 청주고인쇄박물관 번각 목판본보다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 소장본 ‘자비도량참법집해’를 국가 문화유산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 모인 자리서 공개적으로 발표하지 않고 비전공 분야 학회지에 지속 발표하는 의도 의심”
→ 서지학회지를 비롯한 관계 분야 국내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으나 26차례 게재 불가 판정을 받았다. 매번 서지학계의 결론과 다르다는 이유를 들어 게재 불가 판정을 하고 있다.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폐쇄적인 연구 풍토를 개인적으로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국내 학술지 중에서도 과학 분야 학술지, 국내 불교 학술지 및 해외(스위스, 일본, 캐나다, 영국) 전문학술지에 투고해서 16편의 논문이 출판되었다. 필자의 주장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이라면 다른 학술지에서도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하는 남권희 교수님이 제공한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보물 ‘자비도량참법집해’ 하권 30장 전엽의 이미지와 필자가 금속활자본이라고 주장하는 개인 소장본 같은 면의 이미지를 비교한 것이다. 개인 소장본의 광곽의 길이가 청주고인쇄박물관소장 번각 목판본보다 약 15mm 길다. 이것은 약 7.9%의 길이 차이로 목판의 수축으로 설명할 수 있는 범위이다. 참고로 광곽의 폭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것은 목판의 가로 방향이 나무의 성장 방향으로 목재의 건조에 따른 수축이 거의 없는 방향으로 당연한 결과이다.

‘자비도량참법집해’ 하권 제30장 전엽의 동일한 축적의 이미지 비교 (왼쪽: 금속활자본으로 추정되는 개인 소장본, 오른쪽: 청주고인쇄박물관소장 번각 목판본)
판본 간의 유사도를 확인하기 쉽게 ‘자비도량참법집해’ 하권 제30장 전엽의 세로 방향 광곽의 길이를 조정한 이미지 비교(왼쪽: 금속활자본으로 추정되는 개인 소장본, 오른쪽: 청주고인쇄박물관소장 번각 목판본)

왼쪽부터 두 판본의 제1행, 제6행, 제12행 + 판심제 부분을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이미지를 예시하였다. 세로 방향의 광곽의 길이가 7.9% 차이가 나기 때문에 두 판본의 이미지를 비교해서 차이점을 쉽게 인식하기 어렵다. 두 판본 간의 유사도를 육안으로 인식하기 쉽게 하기 위하여 청주고인쇄박물관소장 번각 목판본의 세로 방향의 광곽의 길이를 목판의 수축률에 해당하는 7.9% 늘린 이미지와 비교해 보았다. 번각 목판으로 인쇄한 청주고인쇄박물관소장본의 글자가 전체적으로 굵고 폭이 넓은 것이 확인된다. 목판으로 번각하는 과정에서 각수가 금속활자본으로 인쇄한 저본의 글자의 묵흔을 침범하지 않고 약간씩 바깥쪽으로 판각한 결과라고 생각된다.

왼쪽부터 두 판본의 제1행, 제6행, 제12행 + 판심제 부분을 동일한 축척으로 비교한 이미지

목재의 수축률은 나뭇결에 따라 차이가 있다. 목재의 함수율이 30% 정도까지는 목재의 수축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목재가 건조하면서 함수율이 30% 이하로 낮아지게 되면 목재는 급격하게 수축하게 된다. 나무가 성장하는 방향으로는 거의 수축이 발생하지 않는다. 수축률이 가장 큰 방향은 수종에 무관하게 둘레 방향(접선 방향)이고 그다음은 나이테 방향(방사 방향)이다. 수축률은 수종에 따라 차이가 있다. 목판은 한 장에 2면을 인쇄할 수 있도록 제재하여 사용하므로 나무의 성장 방향이 목판의 수평 방향이 된다. 따라서 광곽의 수평 방향 폭은 금속활자본과 번각 목판본과 차이가 거의 없다. 목판의 수축은 세로 방향으로 일어나는데 제재 위치에 따라서 둘레 방향 성분과 나이테 방향 성분의 비율이 달라지므로 목판의 수축률에 편차가 발생한다. 목판의 두께 방향으로는 제재 위치가 달라서 수축률이 서로 달라 목판의 뒤틀림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뒤틀림 현상을 줄이기 위하여 목판의 양 끝을 마구리에 삽입하여 고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비도량참법집해’ 이본에서 다섯 면을 조사한 결과 2.1%에서 7.9% 정도의 세로 방향의 수축이 확인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가지 판본을 조사한 결과 1377년에 인쇄된 ‘직지’보다 이른 시기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판본으로 생각되는 판본을 여러 권 찾았다. 하나는 ‘자비도량참법집해’이고 또 하나는 1239년에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추정되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 개인 소장본(구 공인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의 방사성가속기를 이용한 엑스선 형광 분광분석법을 이용하여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인지를 밝혀볼 생각이다.

2023년 12월에는 유타대학 도서관, 위스콘신대학 물리학과, 아이오와대학,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 각 기관의 연구원, 미국과 네덜란드의 인쇄 및 잉크 연구자들과 영어로 화상회의를 개최하여 실험을 준비하기로 하였다. 당시 화상회의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판본에서 금속 성분이 검출되는 원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해외 연구자들의 의문점을 필자가 설명해 주기도 하였다. 필자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엑스선 형광 분광분석으로 이 연구를 진행하는 연구원들은 원리를 이해하게 되었다. 참고로 필자는 최첨단 반도체 재료와 물성을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있으며 엑스선 형광 분광분석을 이용하여 반도체 생산공정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되는 ppb(parts per billion, 10억분의 1) 이하의 극미량 금속 오염을 검출하는 연구로 여러 편의 학술논문을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바 있다. 현재도 반도체 생산공정에서의 불량 검사 및 품질관리에 이미지 분석을 활용하고 있으며 반도체 웨이퍼의 비파괴 물성 검사 장비를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다. 필자는 지금까지의 비파괴적인 조사 및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남명천화상송증도가’와 ‘자비도량참법집해’가 금속활자로 인쇄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앞으로의 엑스선 형광분석 결과를 통해서 필자의 결론이 옳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하면 될 것으로 생각한다.

1377년에 인쇄된 ‘직지’는 프랑스 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직지’를 인쇄하기 전에 수많은 책이 금속활자로 인쇄되었을 것이다. 한 사람의 기술자로서 아무리 간단한 기술이라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프랑스에 ‘직지’를 보여달라고 사정하는 일은 없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필자의 주장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봐 주시면 감사하겠다.

목재의 건조에 따른 수축률의 방향성과 목판 가로 세로 방향의 수축 특성

[1752호 / 2024년 11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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