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 “국가유산청, 승장사 조속히 복원해야”…명칭변경엔 ‘이견’

불교문화유산연구소, 11월 8일 금산 청산회관서 용역설명회 개최 금산전투 참전 유림 후손대표·지역사회·불교계 인사 의견 발표 조헌 측 “승장사 복원 최우선돼야…문헌고증 없는 명칭변경 반대” 고경명 측 “금산전투 참전 충청·전라 의병 포괄 명칭으로 바꿔야” 박범 공주대 교수 “‘칠백의총’ ‘종용사’, 설립시기·설립목적 달라”

2024-11-11     박건태 인턴기자

금산의총(칠백의총) 순의제향을 주도해 온 유림과 금산 지역민들은 영규대사와 800의승을 선양하기 위해 종용사 우측에 있던 승장사를 조속히 복원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일제강점기 종용사와 승장사가 파괴된 후 1952년 재건하는 과정에서 조헌 선생과 영규대사의 위패가 합사된 것이 현재 금산의총 순의제향 논란의 원인으로 본 것이다. ‘칠백의총’ 명칭변경에 있어서는 유림의 종중 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조헌 선생 측 후손대표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명칭변경엔 절대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반면, 고경명 선생 후손 측은 ‘금산지역 전투에 참전한 충청·전라 출신 의승병들을 포괄할 수 있는 명칭으로 바꿔야’함을 주장했다.

11월 8일 충남 금산 청산회관 5층 회의실에서 불교문화유산연구소(소장 호암 스님)가 수행 중인 ‘임진왜란 당시 충청지역 의승의 활동양상 및 금산 칠백의총 명칭변경 타당성 검토 용역 관련 용역설명회(이하 설명회)’가 개최됐다. 이날 설명회는 칠백의총 명칭변경과 관련해 불교계, 종중, 금산 지역사회 등 금산 칠백의총과 관련된 단체들의 의견을 듣는 자리였다.

옥천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 마곡사 기획국장 호선 스님, 불교문화유산연구소 부소장 상원 스님 등 불교계 인사들을 비롯해 조종영 배천조씨문열공종회장, 김문준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장, 고호석 충렬공제봉고경명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 강재용 진주강씨삼강문모헌공종회 대표, 이상호 유교신문사 대표, 장호 금산문화원장, 이상민 칠백의총관리소장 등 금산전투 관련 종중 대표 및 지역사회 관계자 등 30여 명이 참석해 의견을 표명했다.

장호 금산문화원장.

유교계‧지역사회, 이구동성으로 “승장사 조속히 복원돼야”

유림 종중 대표들은 영규대사와 의승의 넋을 기리던 승장사가 종용사 우측에 위치한 사실이 여러 사료에서 확인된 만큼 호국의승을 선양하기 위해 승장사 복원이 우선적으로 진행돼야 함을 밝혔다. 조헌 선생 후손 대표인 조종영 배천조씨문열공종회장은 “문헌상 승장사의 존재와 역할이 분명히 적시된 만큼 복원에 무조건 동의한다”고 밝혔다. 고경명 선생 후손 대표로 참석한 고호석 충렬공제봉고경명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도 “승장사를 우선 복원해 영규대사와 800의승의 업적을 받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금산 지역대표로 참석한 장호 금산문화원장도 “명칭변경보다 더 중요한 것은 승장사 복원이다. 국가유산청에서 승장사를 건립하고 추풍령 등지에서의 영규대사의 흔적을 더 발굴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고호석 충렬공제봉고경명선생기념사업회 사무처장.

“충청‧전라 의승병 아우르는 명칭 바꿔야” vs “고증에 근거하지 않은 명칭변경 반대”

칠백의총 명칭변경과 관련해선 유림 간에 의견이 갈렸다. 칠백의총이란 명칭이 충청지역과 전라도에서 거병한 의병들을 모두 포괄하지 못해 변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고경명 선생 후손 대표 고호석 사무처장은 “‘칠백의총’ 그 자체는 조헌 선생과 700의병이 묻힌 곳이지만 순의제향을 지내는 ‘종용사’는 금산 군민들이 4개 전투장소[연곤평(조헌), 와여평(영규대사), 와은평(고경명), 소산(변응정)]에서 순국한 충청도와 전라도 출신 선열들을 한데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라며 “박범 공주대 교수의 발표에서 알 수 있듯, ‘칠백의총’과 ‘종용사’가 만들어진 목적이 다른데 한 공간에 같이 있다 보니 오해가 커졌다. 따라서 칠백의총, 종용사, 추후 복원될 승장사 및 금산지역에서 전사한 모든 분들을 아우를 수 있는 명칭으로 바꿔야한다”고 의견을 표명했다.

조종영 배천조씨문열공종회장.
김문준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장.

그러나 조헌 선생 후손 대표들은 입장을 달리했다. 조종영 회장은 “선대 할아버지의 무덤 이름을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바꾸려 하는데 후손들 모두가 분노할 수밖에 없다”고 반발했다. 김문준 중봉조헌선생기념사업회장도 “정확한 사료에 근거한 명칭변경을 위해선 금산전투에 적으로 참전한 왜장 가문이 보유한 전공기록을 참고해야 한다”며 “억측이나 일방적 입장으론 논란이 봉합되기 힘들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사실에 입각한 학술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문헌고증을 강조했다.

옥천 가산사 지원 스님.
조윤호 부산대 교수.

가산사 주지 지원 스님은 “기존 문헌엔 모두 칠백의총이라고 쓰였더라도 스님들의 공적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숭유억불 시대 상황을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조종락 배천조씨문열공종회 3대 회장 외아들인 조윤호 부산대 교수도 “의총은 주인 없는 묘를 부르는 방식이다. ‘칠백’이란 단어에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현재 후손들이 힘을 합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조헌 선생 14대 후손인 조윤호 교수는 지난 10월 24일 조계종 전법회관에서 열린 ‘설화로 보는 영규대사와 800의승’ 세미나에 참석해 금산의총 순의제향 논란과 관련해 개인자격으로 사과의 뜻을 전한 바가 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진덕 불교문화유산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칠백의총관리소, 칠백의총사적, 종용사 등 전체를 아우르는 차원의 명칭변경 용역사업이지 ‘칠백의총’ 묘소 자체의 명칭을 바꾸는 사업이 아니다”고 사업 취지를 밝혔다.

국가유산청에 대한 질타 잇따라…칠백의총관리소장 “절차에 맞춰 진행하겠다” 원론적 입장

국가유산청의 소극행정에 대한 질타도 잇따랐다. 고경명 선생 후손 고호석 사무처장은 “국가유산청이 소신 있게 사업을 주도해야 하는데 소극적으로 업무를 추진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헌 선생 후손 대표 조종영 회장은 “국가유산청이 타당성을 검토할 새로운 자료가 나오지도 않았으면서 갑자기 명칭을 변경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잘못”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상민 칠백의총관리소장.

이상민 칠백의총관리소장은 향후 계획에 대해 “절차에 맞게 진행하겠다”며 “승장사 복원이나 명칭변경의 건은 용역사업이 끝난 후 국가유산청에 보고하겠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표명했다. 김진덕 학예연구실장은 연구소 일원들이 학자로서 공정하고 편향되지 않게 용역을 수행했음을 밝혔다.

박범 공주대 사학과 교수.

앞서 박범 공주대 사학과 교수는 ‘칠백의총과 종용사의 역사와 현재’ 발표에서 ‘칠백의총’과 ‘종용사’는 설립시기와 목적이 다름을 구명했다. ‘칠백의총’은 1593년에 지어진 조헌과 700의병을 추모하는 공간이었고, ‘종용사’는 조헌 선생뿐만 아니라 영규대사, 고경명, 변응정 등 금산 주변에서 전투를 벌이다 순절한 분들을 위해 1634년 세워진 추모 공간인 것이다. 박범 교수는 “칠백의총과 종용사가 성격이 다르지만 같은 공간 안에 있다 보니 명칭이 칠백의총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광섭 불교문화유산연구소 연구사.

이광섭 불교문화유산연구소 연구사는 ‘칠백의총 명칭 관련 용례 및 영규대사 의승군 규모 사료 소개’ 발표에서 문헌상으로 ‘칠백의총’ ‘칠백의사총’ ‘의총’ 등의 용례가 사용됐음을 밝혔으며, 의승의 규모가 최소 300명에서 최대 1000명으로 기록됐다고 소개했다. 이광섭 연구사는 “각 사료마다 의승의 규모가 다르지만, ‘선조실록’과 같은 정사에서 금산전투 당시 800명의 스님이 참전했음을 기록하고 있어 이것이 사실에 가장 가깝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편, ‘영규대사및800의승명예회복을위한특별위원회’ 소속 소임자 스님과 금산의총 순의제향 대응 주무부서인 문화부 관계자 등은 이번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아 유림과 지역사회에 불교계의 공식 입장을 전하지 못해 아쉬움을 남겼다.

칠백의총관리소(소장 이상민)가 발주한 이번 용역은 △충청지역 의승 활동양상 규명 △충청지역 의승 관련 문화유산 목록화 △충청지역 의승 관련 문헌기록 국역 △‘금산 칠백의총’ 명칭변경 타당성 검토 등을 목적으로 12월 23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박건태 인턴기자 sky@beopbo.com

[1753호 / 2024년 11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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