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신사참배에서 ‘종교’를 본 사람들

의례·언어서 ‘종교성’ 선명히 드러나 교육 기관 폐쇄 직면 하자 미션스쿨에도 신사참배 명령 언더우드, 교세 약화 이유로 참배 거부자들 비판에 앞장

2025-01-17     이창익 교수

종교는 해석의 싸움이다. 남 눈에 별거 아닌 문제가 종교인에게는 목숨 바칠 문제로 굴절하기도 한다. 신사참배도 마찬가지다. 신사참배는 원래 종교적인 문제였지만, 언젠가부터 민족적인 문제로 치환됐다. 신사참배라는 ‘상상의 척도’를 최초 자리로 돌려보내 해체할 필요가 있다.

1931년 만주사변과 1932년 상하이 사변 후 조선총독부가 기독교 미션스쿨에 전몰군인 위령제에 참여할 것을 명하면서 신사참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기독교인들은 신사의식을 구성하는 공물(供物), 강신(降神), 승신(昇神) 같은 의례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었다.

일부 선교사들은 1901년에 일본 대심원(大審院)이 신도를 종교라고 선언한 적이 있고 이 선언이 취소된 적이 없으므로, 신도는 일본 국교이자 일본 국민 생활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중요한 것은 신도의 용어가 순연한 ‘종교 언어’라는 점이었다. 즉 신사참배는 의례와 언어의 측면에서 볼 때 종교 행위가 분명하다는 것이 조지 매큔(George S. McCune) 같은 선교사들의 입장이었다.

이들은 대다수 일본인이 신사를 종교로 인정하고 있고, 저세상과의 영적 교통을 위해 신사에 간다고 주장했다. 또한 조선에서 조상숭배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핍박받았는데, 이제 와서 일본 황실 조상을 숭배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하는 신자도 있었다. 조선 장로교회의 총회와 노회 등은 신사참배를 허용한 학교 대표를 탈퇴시키기도 했고, 목사 가운데는 이교의 신을 숭배하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자, 신사참배 문제로 투옥되거나 고문받은 자도 있었다.

따라서 미션스쿨은 정부 명령에 복종하여 신사참배를 하고 교육기관의 존속을 꾀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거부하고 학교를 폐쇄당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교원 중에도 학교를 그만두기보다 정부 방침에 찬동하여 신사참배에 종교적 의미가 없다고 가르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 정부도 국가신도 의식은 비종교적인 국가 공식 행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신도의식은 종교적인 신도를 모방한 점이 많아 외견상으로도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국가신도 의식은 국가 영웅을 기념하여 애국정신을 고취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리고 무릎을 굽히거나 엎드려 절하는 것이 아니라 ‘경례!’ 하는 호령과 함께 고작 몸을 조금 구부려 절하고 퇴장하는 것이 의식의 전부이므로 이것은 종교가 아니라는 설명이 늘 따라붙었다. 국가신도의 이러한 주장은 특히 기독교인을 혼란스럽게 했다.

호러스 언더우드(Horace Underwood)는 신문이나 강연을 통해 신사참배를 적극적으로 거부하면서 종교 박해와 순교의 광경을 환기하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그는 신사참배는 참렬과 경례로 이루어지고, 일본에서 경례는 존중과 인사의 표시이므로 여기에 숭배의 의미는 없다고 주장했다. 장례식 때 영정 앞에서 경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언더우드는 그런데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면 미션스쿨이 전부 폐쇄될 것이고, 어차피 학생들이 비기독교 학교에 가서 비기독교 선생의 지도하에 신사참배를 계속할 것이라는 점, 무교육자와 15년 이상 신사참배를 한 자 가운데 누구를 장래의 교회 지도자로 선택할지의 문제, 비기독교 선교사가 치안 방해와 불충 교사 선동 혐의를 받을 거라는 점, 교육 이외에 전도와 의료 사업도 곤란해지고 장차 교세가 약해질 거라는 점 등을 거론했다.

이창익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changyick@gmail.com

[1762호 / 2025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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