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극락의 태생
궁전에서 지내지만 감옥과 같아 500년간 왕처럼 생활하지만 갇힌 상태서 생활하니 감옥 아미타부처님 볼 수도 없어 화생할 수 있도록 정진해야
극락에는 모두가 화생합니다. 그런데 ‘무량수경’에는 자씨보살이 부처님께 이런 질문을 합니다. “어떤 원인과 어떤 인연으로 극락에 중생은 태생하기도 하고, 화생하기도 합니까?” 이 말은 극락에 태생이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태생은 인간처럼 자궁 속에서 일정 기간 발육하여 태어나는 것을 말하지만, 극락에는 화생하므로 부모의 몸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서 시간을 보내는 것을 태생이라고 할까요?
‘무량수경’은 극락 가장자리 지역인 변지(邊地)에 있는 아름다운 궁전에서, ‘무량수여래회’와 범본은 연꽃봉오리 속에서 500년 동안 지낸다고 합니다. ‘무량수여래회’는 이를 ‘화태(花胎)’라고 합니다. 범본은 “꽃봉오리 속에 있지만 훌륭한 저택과 정원이 있는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서술하여 어떻게 태생한 중생이 500년 동안 전륜성왕과 같은 생활을 누리는지 설명합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진 상태에서 500년을 지내지만, 이들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감옥에서 족쇄에 묶여 생활하는데, 눈앞에 금은보화가 잔뜩 있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범본에서는 “감옥에서 풀려나기 위해 접촉할 수 있는 모든 인맥에게 부탁한다”는 표현으로 감옥과 같은 궁전에서 나오려는 태생한 중생의 절박한 마음을 비유했습니다. 이들의 처지를 ‘무량수경’은 “재앙”이라고 할 정도입니다.
그 재앙의 첫 번째는 삼보(三寶)를 가까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기껏 부처님 나라에 왕생하고도 부처님을 뵐 수 없고, 설법을 들을 수 없으며, 힘이 되어 줄 동행인 수행자의 모습조차 볼 수 없습니다. 극락에는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가 없어서 괴로움이나 증오 등의 부정적인 느낌이 아예 없으므로 삼보를 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상대적으로 가장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둘째는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공덕을 쌓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극락왕생하는 왕상회향(往相迴向)을 이루면, 이후에도 공덕을 계속 쌓고 법문을 들어서 성불하게 됩니다. 그 후 중생을 구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면 환상회향(還相廻向)을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아미타불을 친견하고 설법을 들어서 반열반을 얻고자 하는데, 태생한 이들은 500년 동안 그 일에서 유예되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무량수경’에는 이런 경고가 있습니다.
“비록 한 세상이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잠시 잠깐이다. 나중에 무량수불의 국토에 왕생하면 즐거움이 끝이 없고, 오랫동안 도(道)와 덕(德)으로 밝으며, 영원히 생사의 뿌리를 뽑아버려 다시는 탐·진·치의 괴로움과 번뇌가 없다. … 그대들은 모름지기 각자 정진하여 마음에서 서원하는 바를 구해야 할 것이지, 의혹을 일으키고 도중에 후회하여 스스로 허물을 지어 그 국토 가장자리의 칠보궁전에 태어나 500년 동안 여러 액난을 받아서는 안된다.”
중생심으로는 극락의 가장자리에라도 갈 수만 있다면 500년 정도는 참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경전에서는 고통스러운 한 세상을 잠시 잠깐이라고 하면서도 아미타불을 친견하지는 못하기는 해도 고통과 괴로움이 없는 500년에 대해서는 경계합니다. 아마도 중생을 위하는 부처님께서 기껏 고통에서 벗어났으니 겪지 않아도 되는 일에는 눈길도 주지 말라는 조언을 하시는 듯합니다. ‘태어난 김에 산다’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극락은 ‘왕생하는 김에 화생’하여 바로 아미타불 곁으로 가야 합니다. 나무아미타불
미탄 스님 mitankha@gmail.com
[1762호 / 2025년 1월 2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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