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초월명상과 비틀즈-하
초월적 신 대신 명상 통해 진리 추구 60년대 종교적 재구성 진행 대중, 내면서 자아발견 원해 동양종교 수행서 해답 찾아 초월명상, 대표 방법에 등극
1960년대는 미국을 중심으로 서양 사회가 격변을 겪은 시기였다. 암살과 폭력, 전쟁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미국에서는 반전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하며 전통적 가치에 대한 거부감이 만연했고, 새로운 사상들이 민주주의적 이상으로 스며들었다. 특히 인종차별과 빈곤해소를 위한 아프리카계 미국인(African-American)의 사회운동과 남녀평등, 여성해방을 위한 페미니즘 운동이 크게 발전했다. 서양인의 종교적 삶에서도 큰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이때는 지배적 종교인 기독교가 중대한 위기를 맞았다. 1950년대 후반부터 기독교의 쇠퇴가 분명히 드러났으며, 이와 함께 1960년대부터 종교적 재구성이 일어났다고 학자들은 말한다. 이 시기에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내면의 깊이를 지닌 존재로 여기기 시작하면서 전통과 권위를 벗어나 내면의 진정성과 주관적인 경험을 추구하며 ‘참된 자아 찾기’에 초점을 맞췄다. 내면에서 자아를 찾는 영적 추구의 모습은 과거 반세기 동안 서양 사회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던 힌두교와 불교의 영향 덕분이었다. 1893년 다양한 종교 전통의 수행자들이 모인 시카고 세계종교의회에서 힌두교를 대표해서 온 비베카난다(1863~1902)는 말했다.
“마음속의 공간을 생각하고 그 공간 한가운데에서 불꽃이 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불꽃을 자신의 영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불꽃 안에는 또 다른 찬란한 빛이 있는데요. 그것은 바로 당신 영혼의 참된 영혼, 즉 신의 영혼입니다. 그것에 대해 명상하세요.”
요가와 명상은 마음속의 신을 만나는 방법이며, 힌두교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유익하다는 그의 설명은 서양 종교 전통의 내용과는 사뭇 달랐다. 이로써 서양 사람들이 동양의 명상을 더욱 신비하게 여기도록 유도했다.
마하리시의 초월명상은 비베카난다에서 시작된 대중화의 연속선상에서 크게 발전했다. 비베카난다 이후 많은 영적 스승(구루)이 유럽과 미국으로 건너가 요가와 명상을 통한 자기 변화를 가르쳤다. 초월명상은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수행법이 되었다.
비틀즈와 마하리시의 만남은 1960년대 후반 서양의 영적 전환을 상징하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 비록 1968년의 마하리시 아쉬람 방문은 비틀즈가 기대한 것과 다르게 끝을 맺었지만, 비틀즈와 마하리시가 함께 명상하는 사진과 비틀즈의 인터뷰 등은 그 당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명상에 대한 기대를 더욱 키웠다.
이 시기의 서양 대중문화는 전통 종교에서 얻을 수 없었던 비전을 제시했다. 대중은 새로운 방식의 영적 경험을 추구했고, 이러한 영적 수행을 추종하는 젊은이들은 그들의 내면에서 신과 연결되기를 바랐다. 바깥에 있는 신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내면에 있는 진실을 얻게 되는 것. 기독교와 유대교에서는 이것을 찾을 수 없었고, 힌두교와 불교 등 동양의 종교적 전통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1960년대 서양의 ‘반문화 운동’에서 1970년대 뉴에이지 운동에 이르기까지 핵심적인 원동력이 되었다.
“당신이 기독교인이든, 이슬람교도든, 유대교도이든 상관없이 명상으로 가능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종교에서 명상을 수행하면 됩니다.”
존 레논의 말은 그 당시 개인적 깨달음과 종교적 융합을 열망했던 젊은이들의 의지에 불을 붙였다.
문진건 동방문화대학원대 교수 cherryhill2736@gmail.com
[1764호 / 2025년 2월 1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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