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식(보명·66) 간화선 수행 - 하
체험 후에도 ‘진의’ 들고 정진 ‘이 자리’에 점점 익숙해지며 경전·어록 내용 깊이 와닿아 무거운 번뇌에도 초연해져
간화선은 화두를 들고 의심하여 그것을 타파하고, 나아가 돈오(頓悟)의 힘으로 공부를 지속해 나가는 수행이다. 선지식은 공안을 제시하여, 믿음으로 수행 길에 들어선 이로 하여금 화두 의심을 일으키도록 이끌어 준다. 그렇게 잡들어진 활구의심(活句疑心)을 통해 각자의 시절 인연에 따라 화두 의심이 타파되면, 마침내 마음의 눈이 열리게 된다. 즉, 깨닫는 것이다.
깨닫기 전, 궁금하여 알려고 하는 단계에서는 스승이 “이 뭐꼬?”라고 물으며 제자에게 화두를 걸어준다. 이 과정에서 수행자는 자연스럽게 화두를 풀려고 애쓰며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시간이 지나면 화두에 대한 의심이 점차 익어가며 ‘임시 의심[假疑]’의 상태에 들어선다. 그러다 깨달음이 찾아오면, 스스로는 분명히 알지만 말로 표현할 수 없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이 뭐꼬’ 상태가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자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행자는 스스로 ‘진짜 의심[眞疑]’으로써 ‘이 뭐꼬?’를 반복하며, 마치 목동이 소를 기르듯 수행을 이어간다.
김홍근 교수님께서는 수행 과정에서 의식을 확장할 수 있도록 허공을 마주하는 탁 트인 장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라고 당부하셨다. 이에 나는 제천의 오지인 백운면 애련리 진소마을에 작은 수행 공간을 마련했다. 마을을 둘러싼 연꽃 모양의 산과 산자락을 헤집고 흐르는 물줄기, 노니는 생명들, 잔잔한 물결 따라 황금빛 햇살을 머금고 솟아오르는 윤슬,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과 어머니의 사랑을 닮은 달빛까지. 그곳에서 아미타부처님의 무정 설법을 들으며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수행이 깊어지며 불경과 조사어록의 가르침이 더욱 실감 나게 다가왔다. 반야심경의 ‘색·수·상·행·식이 공한 도리’, 금강경의 ‘운하항복기심 응무소주(如何降伏其心 應無所住)’, 육조혜능 선사의 “어찌 자성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본래 동요가 없음을 알았으며, 어찌 자성이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겠습니까?”라는 가르침이 마음 깊이 와닿았다. 달마대사가 강조한 “밖의 인연을 쉬고, 안의 헐떡임이 없이 마음이 꽉 막혀야 도를 이룰 수 있다”는 가르침도 마찬가지였다. 또한, ‘눈을 막고, 귀를 막고, 입을 가린’ 원숭이 조형물에서 무언의 가르침을 읽었고, 숭산 스님의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이라는 법문을 수행 속에서 온전히 체득할 수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많은 문제가 이제는 번잡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직장 동료로 인한 억울한 징계, 상속 문제로 인한 형제 간의 소송, 부동산 등기 위탁 과정에서 법무사 사무장의 일탈로 인한 곤혹, 무지로 인해 발생한 추징세금의 당혹감, 그리고 옛 친구들의 이른 부고까지. 이제는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수 있었다. 이는 분명히 마음공부의 힘이었으리라.
2022년 5월 부처님오신날에는 인사동에 김 교수님의 ‘인사동선원’이 개원했다. 근·현대 한국 선(禪)의 중심지였던 인사동에서 재가자들도 간화선을 더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반가웠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만약 눈 밝은 선지식을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칠흑 같은 무명 속에서 헤매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이는 불도에 입문한 후, 기도처를 순례하며 선지식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발원한 덕분이 아닐까 싶다.
어느덧 청량리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기내에 울린다. 일요일 아침, 세 시간여를 달려 선원을 향하는 이 길은 언제나 설렌다. 선지식과 도반이 함께하기에 내 입가에는 어느새 맑은 미소가 번진다.
[1769호 / 2025년 3월 1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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