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보를 사수하라”…고운사, 화마 속 긴박했던 이운 현장
3월 25일, 갑작스런 불길 변화로 석조여래좌상 등 보물 긴급 이운 “좌대는 옮기지 못해 발만 동동… 고불전 부처님께 죄송한 마음뿐” 현장 관계자들 가슴 먹먹함 호소 “문화유산 특성별 대응 매뉴얼 필요” “전각 반경 20m 벌목해 방화띠 구축도”
“화마가 고운사를 덮친 순간은 상상보다 훨씬 빠르고 무서웠습니다. 불이 그렇게 급작스럽게 밀려들 줄은 몰랐습니다. 보물인 ‘석조여래좌상’을 급히 트럭에 싣자마자 관덕리 쪽으로 불꽃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소방관들이 ‘성보도 중요하지만 인명이 더 중요하다’며 탈출을 지시했습니다. 아직도 옮기지 못한 좌상의 좌대가 눈에 선합니다.”
지난 3월 25일 제16교구본사 고운사의 성보 이운 작업에 참여한 국가유산종합수리업체 다경의 김윤기 이사는 화재 직전 고운사의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보물인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은 3월 26일 오전 9시 기준, 영주 부석사박물관에서 다시 안동청소년문화센터로 옮겨졌으며, 소규모 불화와 도서 등 100여 점도 부석사박물관에 안전히 보관 중이다.
김윤기 이사는 “산불이 고운사를 비켜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25일 오후 4시부터 상황이 급변했다”며 “방어선을 구축하고 주요 전각에 방염포를 설치했지만 화마 앞에선 무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탈출할 때는 좌우에서 불길이 치솟고 연기가 자욱해 앞을 볼 수 없었다. 고불전의 부처님도 모시려 했지만 무리라고 판단해 결국 ‘죄송합니다’라고 하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산불에 대비해 고운사의 목조 문화유산을 5km 떨어진 창고로 선제적으로 옮겼지만, 그곳도 화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김 이사는 “차량 4대 분량의 목불을 창고에 보관했던 터라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며 “다행히 고운사 신도회장을 비롯해 문화유산 관련 종사자들의 도움으로 성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장에서는 산불 대비를 위한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김윤기 이사는 “이번 일을 겪으며 성보의 재질과 특성에 따라 이동 매뉴얼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며 “석조, 목조, 동산문화유산, 건조물 등 유형별로 대응 방식을 달리하고 응급 상황에서 사용 가능한 구조장비를 문화재 특성에 맞춰 매뉴얼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운 장소와 차량 크기까지 사전에 정해놓는 것도 중요하다”며 “급박한 상황에서는 평소 예불에 쓰던 방석조차 충격 완충재로 유용하게 사용될 만큼 평소 준비가 실전 대응의 성패를 가른다”고 말했다.
고운사 총무국장 도륜 스님 역시 “전통사찰 주변에 방화띠를 확보해야 하며, 사찰과 숲 사이에 일정한 이격거리를 둬야 한다”며 “안동 봉정사는 현재 산불 확산 방지를 위해 극락전과 대웅전 주변 30m 이내의 벌목 작업을 긴급히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국가유산 보호를 위해 최소 15~20m 이상의 이격거리를 확보하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한편, 국가유산청(청장 최응천)에 따르면 3월 26일 오전 9시 기준으로 고운사를 비롯해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봉황사 등 주요 사찰은 보물 10건(651점), 시도유형문화유산 5건(17점)을 긴급히 안전지역으로 옮겼다.
영주 부석사는 ‘고려목판’ 3종 634점과 ‘오불회 괘불탱’을 영주 소수박물관으로, ‘조사당 목조의상대사좌상’을 된장체험단지로 이운했다.
안동 봉정사는 ‘목조관음보살좌상’, ‘영산회 괘불도’, ‘아미타설법도’ 등 보물을 국립경주문화유산연구소로 옮겼고, ‘봉정사 소장 고승진영’ 등 유물은 예천박물관에 보관했다.
안동 봉황사는 ‘삼세불화’,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목조삼전패’를 세계유교문화박물관으로 이운했으며, 안동 선찰사의 ‘목조석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은 길안초등학교와 안동시립박물관으로 옮겼다.
영덕 장륙사 또한 ‘건칠관음보살좌상’, ‘영산회상도’, ‘지장시왕도’를 영해면사무소에 옮겨 보호 중이다.
이밖에도 운람사와 옥련사는 삼존불 부처님과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등을 의성 조문국박물관으로 긴급 이운해 피해를 면했다.
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1771호 / 2025년 4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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