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법당, 성보만 안은 채 눈물 머금고 돌아섰다”
고운사·운람사 산불 피해 현장 강풍 업고 순식간에 덮친 불길 동산 성보 옮기며 대비했지만 "눈앞에서 타는 전각에 망연”
강풍을 타고 순식간에 번진 불길은 깊은 산중 사찰, 더 깊숙한 곳까지 거침없이 집어 삼켰다. 주요 전각과 수행 공간은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천년고찰 고운사와 운람사를 덮쳤고 소중한 문화유산은 무참히 소실됐다.
3월 22일 경북 의성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날이 지날수록 그 기세를 더했다. 시시각각 산자락을 휘감으며 번져나가던 불길은 고운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25일 기어코 고운사 경내를 덮쳤다. 법당과 보물 가운루, 연수전 등이 붕괴되듯 무너졌다. 스님들과 신도들은 전날부터 불상과 불화 등 이운 가능한 성보들을 옮기며 간절히 기도했지만, 거센 불길 앞에서도 꿈쩍 않는 전각들 만큼은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소방당국도 즉각 대응에 나섰다. 대응 2단계가 발령된 상태에서 소방차, 헬기, 진화 인력이 현장에 투입됐지만, 거센 바람을 등에 업은 불은 사찰의 중심부를 순식간에 휩쓸었다. 일주문, 대웅보전, 사천왕문 등은 진화대의 고군분투로 가까스로 지켜냈지만, 국가문화유산 보물인 가운루와 연수전을 포함한 21동의 전각은 대부분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한 스님은 불길이 지나간 자리에서 “어떻게든 전각들을 지키고 싶었지만, 불길이 너무 빨리 덮쳐 손 쓸 겨를이 없었다”며 애통함을 감추지 못했다. 화재 소식을 접한 지역 주민과 신도들은 충격에 빠졌다. 평생 고운사에서 신행활동을 해온 한 신도는 “고운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라 우리 지역의 정신적 기반이었다”며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져버린 것이 믿기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불과 이틀 전인 3월 22일, 경북 의성군 안평면 천등산 자락에 자리한 신라 고찰 운람사도 산불의 참화를 피하지 못했다. 산불은 오후부터 강풍을 타고 천등산을 넘으며 빠르게 운람사로 접근했다. 본사인 고운사와 말사 스님, 신도들은 긴박하게 현장으로 모여 대응에 나섰다. 불길이 번지는 와중에도 아미타삼존불, 탄생불, 신중탱화 등 주요 성보를 조문국박물관으로 옮기며 목숨을 건 사투를 벌였다.
그러나 거센 바람은 불길을 더욱 자극했고 결국 대웅전, 삼성각, 요사채 2채, 공양간 등 총 6동이 전소됐다. 운람사 주지 등오 스님은 “눈앞에서 사찰이 불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며 “그래도 주민들 피해가 없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이라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과 신도들은 자발적으로 복구 기금 마련에 나서며, 사찰 재건을 위한 모금 운동을 시작했다. 조계종 또한 범불교적 차원의 복구 기금 조성을 추진 중이다.
고운사·운람사=류현석 대구·경북지사장
[1771호 / 2025년 4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