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산불 속 성보 사수…“생명 내걸고 부처님 지켰다”
성보 이운 긴박했던 순간들 고운사·장안사·봉정사 등 산불 인접 사찰 이운 ‘분투’ 좌복도 긴급상황서 완충재
경북과 부산 일대에 확산된 산불로 인해 다수 전통사찰이 화마에 노출되면서, 문화유산 긴급 이운이 숨 가쁘게 진행됐다. 불길과 연기 속에서 불상과 불화를 옮기던 순간, 성보 보존을 위한 현장의 분투는 목숨을 건 작전과 다름없었다.
3월 25일 오후, 조계종 제16교구본사 고운사에서는 보물 제246호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이 긴급히 트럭에 실렸다. 당시 현장에 있던 국가유산종합수리업체 다경의 김윤기 이사는 “불길이 관덕리 방면으로 치솟기 직전 간신히 불상을 차량에 실었다”며 “좌대는 옮기지 못하고 나올 수밖에 없어 가슴이 미어졌다”고 전했다.
이미 3월 24일 긴급 대비령이 발령되자 고운사 관계자들은 불상과 불화, 고서 등 불교문화유산 100여 점을 선제적으로 5km 떨어진 창고로 옮겼지만, 그곳마저 산불로부터 안전하지 않았다. 김 이사는 “창고도 불길 위협에 노출되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며 “신도들과 문화유산 관계자들의 협력으로 간신히 안전한 장소로 재이동할 수 있었다”고 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문화유산 이운은 단순한 운반이 아니라 생명을 건 사투였다. 김 이사는 “예불에 쓰던 좌복조차 충격 방지용으로 활용할 정도로 준비의 유무가 상황의 성패를 갈랐다”며 문화유산 유형별 대응 매뉴얼의 필요성을 절감했다고 밝혔다.
고운사 총무국장 도륜 스님은 “고불전 부처님을 끝내 모시지 못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며 “사찰과 산림 사이에 최소 20m 정도라도 벌목했었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이진 않았을 것”이라고 탄식했다.
같은 날 부산 기장군 장안사에도 긴박함이 감돌았다. 울주군 산불이 도량 인근 2km까지 접근하자, 국가유산청은 긴급 이운 권고를 내렸다. 이에 장안사(주지 도림 스님)는 현장 지휘부를 설치하고, 범어사성보박물관과 부산박물관 전문가 40여 명이 합류해 문화유산 포장 작업에 돌입했다.
장안사에는 보물 제1771호 ‘대웅전’과 제1824호 ‘석조석가여래삼불좌상’을 비롯해 시 지정 문화유산 13점이 보존돼 있다. 해당 유산은 화재 상황이 더 악화될 경우, 부산 시내 각 박물관으로 분산 이운하기로 결정됐다. 불상과 불화, 법구는 이미 이운 준비를 마쳤으며, 전각·석조물 등은 방염포를 설치해 보호 조치를 강화했다.
범어사 호법국장 정수 스님은 “부산 지역 사찰의 피해를 막기 위해 모든 역량을 다하겠다”고 했고, 범어사성보박물관 이현주 부관장도 “부산 전역의 문화유산을 지키기 위해 실시간으로 진압 상황을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밝혔다.
문화유산 보존을 위한 절박한 이운 과정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우리 전통문화의 정수를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박건태 기자 sky@beopbo.com
박동범 부산지사장 busan@beopbo.com
[1771호 / 2025년 4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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