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택단(대각성·69) 위빠사나 수행 - 하
간화선 수행 중 ‘대적광’ 체험 “앞으로의 공부 더 신중해야” 위빠사나로 질긴 습기 제거 ‘너’와 ‘나’ 둘이 아닌 삶 당부
2009년 불교를 더 깊고 체계적으로 공부해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전하고자 동국대 선학과에 입학했다. 박사과정에서는 천태 스님의 ‘마하지관’을 주제로 삼았고, 그 가르침을 실참 수행으로 검증하기 위해 안국선원장 수불 스님의 지도 아래 7일간 간화선 집중 수행에 참여했다.
당시 수불 스님이 제시한 화두는 “나로 하여금 손가락을 까딱거리게 하는 이놈이 무엇인가!”였다. 화두를 들자 분별망식이 단박에 끊어지며 ‘이 뭐꼬’라는 의심이 온몸으로 들려왔다. 이튿날부터 좌선을 이어가자 강한 에너지의 흐름이 전신을 관통했고 몸이 진동하며 통증도 뒤따랐다. 특히 가슴과 머리가 열릴 때의 고통은 전기고문을 방불케 할 정도였으나 “무슨 일이 일어나도 화두를 놓지 말라”는 수불 스님의 가르침을 붙들고 끝까지 정진했다.
죽을 각오로 화두 의심을 놓지 않고 계속 정진하던 중, 어느 순간에 이르자 가슴이 뻥 뚫리며 화두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이어 밑 빠진 독처럼 오장육부가 사라지고 한없는 희열이 끊임없이 치밀어 올랐다. 손끝과 발끝까지 모든 세포가 형언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충만해졌고, 무한한 행복과 평온감이 전신을 감쌌다. 그러다 머리에서 번개 치듯 번쩍이며 밝은 빛이 퍼졌고, 대명천지보다 밝은 대광명이 경계 없이 드러났다. 이후에는 지극히 고요하고 평온한 상태만이 남게 됐고, 오직 그 이전부터 비추고 있던 무한한 대광명만이 존재했다.
이에 수불 스님은 “이제는 경전을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첫 체험이 끝이 아니니 매사에 살얼음 걷듯 신중히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후 ‘나’라는 생각[我相]은 점차 희미해졌고 현실 그 자체가 법의 실상임을 체득하게 됐다. 번뇌가 곧 보리이며, 생사가 곧 열반임을 직관하는 지혜가 열리기 시작했다.
간화선은 무위법(無爲法)으로서 무생사제(無生四諦)의 공조차 공이 아닌 중도실상(中道實相)을 바로 깨닫는 원각(圓覺)의 선법이다. 반면 남방불교는 ‘인연 따라 생긴 것은 본래 실체가 없다’는 인연소생법(緣起所生法)의 관점에서 분석을 통해 존재의 실체 없음, 즉 공성(空性)을 관찰한다. 나는 간화선을 통해 자성이 본래 공적영지인 적광(寂光)임을 확연히 확인하고, 위빠사나 관법을 통해 고래심줄보다 질긴 습기를 하나하나 제거해 가고 있다.
나의 첫 은사였던 정일 큰스님의 입적 이후, 위빠사나 수행공동체인 붓다선원에서 김열권 법사를 만나 위빠사나를 3년간 익혔다. 이 시기에는 걷기 명상, 오온 관찰, 16특승, 사념처 수행법을 배웠고, 지금까지도 홀로 수행을 이어가고 있다.
수행이 깊어지자 현상이 일어났던 자리에서는 오직 ‘사라짐’만이 보였고, 외부 경계에 휘둘리지 않게 됐다. 심념처 수행에서는 한 생각이 일어나는 즉시 그것을 알아차리고 관함으로써, 무상·공·무아임을 깨닫고 오온 작용으로부터 더 이상 휘둘리지 않게 됐다. 법념처 수행에서는 소리를 들을 때 귀·소리·의식 중 하나에 집중해 무상·공·무아를 관하며, 소리에 따른 욕망이나 분노에 끌려가지 않게 됐다. 예컨대 누가 악담을 했을 때, 예전 같으면 분노했겠지만 지금은 그 분노 자체를 알아차리고 관하면 그것이 실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게 분노가 사라진 자리에는 자애의 마음이 일어난다.
부디 우리 모두가 오온에 대한 집착과 전도된 분별망심을 내려놓고, 오온 작용이 곧 불성의 작용임을 아는 참된 지혜를 얻어 조화롭고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감사와 찬탄으로 예배하며, 너와 내가 둘이 아님을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1773호 / 2025년 4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