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 하나로 시작된 불연, 불자요양시설로 회향하겠습니다”

불사비용 대신 스님이 걸어준 연등 이후 사업 번창하며 불자의 길 합장도 몰랐지만 사암연합 소임 맡아 스님들과 가까이 일하며 신심 키워 코로나 속 스님 삶에 반성·참회 인사부터 달라진 삶의 태도 불자요양시설 건립 발원하며 직접 공사장서 구슬땀 흘려 “자비가 삶이 되는 공간 만들겠다”

2025-05-16     유화석 기자
오명권 제천불교사암연합회 사무총장은 스님이 걸어준 연등을 계기로 불교에 가까워졌다. 이후 제천불교사암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신심을 굳혔고 현재 불자요양시설 건립을 발원하며 공사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저에게 종교 활동은 어릴 적 간식 준다는 말에 친구를 따라 교회를 가본 게 전부였어요. 종교엔 관심도, 인연도 없었습니다. 그저 먹고사는 일에 정신이 없었죠. 그런데 지금은 경전도 외우고 법당에서 삼배도 합니다. 이게 다 연등이 맺어준 인연 덕분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을 바꾸는 ‘순간’이 있다. 토목 건설업에 몸담으며 누구보다 현실적인 삶을 살아왔던 오명권(67·강운) 제천불교사암연합회 사무총장에게 그 순간은 뜻밖에도 ‘못 받은 공사비’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그는 불교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신심을 다지고 회향의 길을 걷고 있다. 오명권 씨는 자신이 신행 여정을 ‘연등 하나로 시작된 불연(佛緣)’이라 회고했다.

그 인연은 원주의 한 사찰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는 불사를 맡은 토목 사업자였다. 절이 좋아서 간 것이 아니었다. 일 때문에 방문한 것이 전부였고, 산속 절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공사를 마쳤다. 그러나 사찰 사정이 여의치 않아 공사비 2000만원을 받지 못한 채 돌아서야 했다.

스님은 공사비 대신 법당 앞에 큰 연등 두 개를 달아주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다. 불자도 아니었고, 절에 예를 갖추는 방법도 몰랐다. 합장도, 절도 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평안했다. 화도 나지 않았고, 원망도 없었다. 그저 불 밝힌 연등만 마음에 담은 채로 돌아섰다. 

그 일 이후 몇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그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20억원 규모의 공사를 수주하게 된다. 입찰 순위로는 4순위였기에 가능성이 희박했지만, 마치 운명이 이끌듯 사업을 따냈다. 어째서였을까. 연등이 자꾸 생각났고, 결국 그는 다시 사찰을 찾아 스님께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는 “남은 공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했다. 당시에는 ‘보시’라는 말도 알지 못했기에 어떤 표현을 써야할지 몰라 기부하겠다는 말로 대신했다.

이후에도 여러 사업들을 따내며 승승장구했다. 그럴때마다 절에 걸렸던 회사명이 적힌 연등이 아른거렸다. 그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절에 가는 것이 낯설지 않았고, 스님들과의 인연도 자연스러워졌다. 종교에는 관심조차 없었고 사업을 꾸려가기에 급급했었지만 마음이 점점 불교 쪽으로 기울었고, 법당에서 절하는 법도 서서히 익혀갔다. 그렇게 조금씩 ‘신심’이라는 것이 자리잡아갈 즈음, 제천의 불교신도연합회에서 활동 중인 지인의 추천으로 신도연합회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까지도 그는 ‘불자’가 아니었지만, 낯가림 없는 성격 덕분에 행사 사회를 맡게 됐고, 부처님오신날 행사나 제등행렬 등 다양한 행사에도 참여하게 됐다.

“이왕 일을 맡게 됐으니 단순한 참여자에 그치고 싶지는 않았어요. 마이크를 잡으며 불자들과 교류하고, 스님들과 호흡하며 점점 깊이 불교 안으로 들어가게 됐죠.”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그에게 어느 날 사암연합회 스님들이 사무총장을 맡아달라고 제안했다. 불자도 아닌 자신이 어떻게 그런 자리를 맡느냐며 망설였지만, “이 또한 인연”이라며 마음을 굳혔다.

불자가 아닌 채 맡게 된 중책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진심으로 불교에 귀의하고 나 스스로 변화하면, 사람들의 시선도 자연히 바뀔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았다. 매 행사, 만나는 인연마다 성실하게 임했다. 그러자 주변의 인식도 조금씩 달라졌다. “절에 들어서면 저절로 합장을 하게 됩니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삼배를 올리고, 삼귀의와 사홍서원, ‘반야심경’도 막힘없이 읊을 수 있게 됐다. 

그는 사암연합회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종단의 스님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때로는 서로 간의 거리감이나 단절도 느껴졌다. “종단을 넘어서 함께 모였으니, 이제는 나누고 화합하며 부처님의 가르침 아래 하나가 돼야 하지 않겠냐”는 그의 제안은 연합회에 또 다른 변화를 가져왔다. 공동체가 하나로 뭉치며, 종단 간 경계를 넘어 더 많은 일을 함께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무렵 코로나19 팬데믹이 닥쳤다. 사회 전체가 멈추다시피 한 시기였다. 오 씨에게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산중에서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도 묵묵히 계율을 지키는 스님들을 보며 큰 감동을 받았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날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제천으로 이사 왔을 때, 사투리 때문에 따돌림을 당했고, 잦은 다툼 끝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중장비 기술을 익히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거칠게 살았다. 그러나 스님들의 단정하고 정직한 삶의 태도는 그에게 깊은 반성과 참회의 계기가 됐다.

“저도 스님들처럼 따뜻하고 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현장에선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일하는 분들께 커피와 간식을 챙기기 시작했죠.” 그렇게 삶의 태도를 바꾸자, 주변 사람들도 변했다. 더 많은 신뢰를 보내주었고, 일의 능률도 올라갔다. 마음이 편안해졌고, 불자로서의 정체성은 더 확고해졌다.
 

 

오명권 제천불교사암연합회 사무총장이 건립한 불자요양시설의 전경과 내부 모습. 현재 불자요양시설 공사를 마치고 개관을 앞두고 있다. 

이후 그는 새로운 목표를 마음에 품게 됐다. 불자 어르신들을 위한 요양시설을 만드는 일이었다. 여러 사찰을 다니다 보니 도시 절에는 젊은이도 보였지만, 시골 절에는 노인뿐이었다. 고령화의 현실을 절에서 체감하며, 그는 ‘누군가는 이런 분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 노년의 어르신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집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마음은 일광사 일광 스님과의 만남으로 구체화됐다. 60여 년 간 방생과 자비나눔을 실천해온 스님은 그에게 큰 가르침이 됐다. 오 씨는 매달 스님을 찾아 법문을 듣고, 방생에 함께 참여했다. 그러던 중 스님으로부터 폐교 하나의 상태를 알아봐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스님은 그 자리가 노인요양시설로 적합한지 의견을 구했다. 심장이 뛰었다. 자신이 오랫동안 생각해온 꿈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폐교는 여러모로 여건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이미 준비하고 있던 부지와 계획을 스님께 상세히 설명했다. 요양시설을 짓고, 특히 불자 어르신들 가운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편히 지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스님은 그의 뜻을 지지해줬다.

그러나 실현까지는 수많은 고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사진 산을 깎고 나무를 베며 땅을 다졌고, 인허가 서류도 직접 작성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거의 모든 일을 직접 진행했다. 포크레인을 몰다 튄 돌에 이가 부러지기도 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가족들 역시 말없이 그의 선택을 응원했다. 매일 먼지범벅이 되어 집에 들어오던 그를 묵묵히 응원해줬다.

1년 후, 드디어 기공식이 열렸다. 그 후에도 현장에서 빠지지 않았다. 수도를 끌고 전기와 인터넷을 연결하며, 요양시설의 기본 골격을 완성했다. 식당, 숙소, 남자 생활동, 여자 생활동까지 총 4동의 건물이 하나씩 지어졌다. 모든 과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는 힘들수록 스님의 가르침과 ‘연등 하나에서 시작된 인연’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금 완공된 이 시설은 끝이 아닙니다. 시작일 뿐입니다. 불자들을 위한 진정한 요양 단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개관을 앞둔 시설엔 75세 이상 불자 어르신 가운데 경제적으로 어려운 분들을 우선적으로 입소시킬 것이라는게 그의 계획이다. 이용료는 최소한으로 책정하고, 여유가 없는 분들은 시설에서 운영하는 텃밭, 공동 프로그램 등에 참여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둘 생각이다. 더 나아가, 입소 인원이 늘어나면 요금을 낮추는 방법도 모색할 계획이다. 수익을 위한 시설이 아니라 회향의 실천이라는 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 요양시설을 통해 “불교의 자비가 삶으로 실현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그리고 그 실현이 단 한 번의 공덕으로 끝나지 않도록, 앞으로도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불자는 경전을 다 아는 사람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이라 배웠습니다. 저도 늦게 시작했지만, 이제는 그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 시설이, 부처님께 받은 가피와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좋은 인연들을 회향하는 제 방식입니다.”

오명권 사무총장은 지금도 현장에서 직접 땀 흘리며 일하고 있다. 여전히 바쁜 일정 속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다. 그에게 있어 불교는 단지 믿음이 아닌, 삶의 태도이자 방향이다. 그리고 지금도 그는 그 길 위에, 연등의 빛처럼 따뜻하게 서 있다.

유화석 기자 fossil@beopbo.com

[1777호 / 2025년 5월 21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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