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테라와다불교 초대 이사장 아짠 빤냐와로 스님
윤회를 벗어나는 길은 호흡을 분명하게 관찰하는 데 있다 큰 스님 추모법회에서 아귀계에 공양 올리는 건 공덕의 회향을 의미 임종 후가 아닌 임종 전에 스님을 모셔 편안한 죽음 맡도록 노력해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다섯 가지의 공양법은 공덕 쌓는 최상의 수행
오늘은 한국테라와다불교 상가라자 뿐냐산또(도성) 큰스님의 추모 법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런 추모 법회에서는 ‘뿝바뻬따 발리(pubbapeta bali)’라고 해서 아귀계에 공양물을 올리는 의식을 합니다. 아귀계에 태어난 분들이 우리가 공양 올리는 마음을 받아들여 “나는 나쁜 일을 많이 해서 아귀계에 태어났다. 남들에게 인색하게 산 것이 참 후회되는구나.”하는 마음이 들 때 그 세계를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상시 큰스님께서는 인색한 적이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아귀계에는 태어나지 않으셨을 겁니다. 그렇다면 왜 아귀계에 태어나지도 않았을 큰스님을 위해 아귀계에 공양물을 올리는 것일까요?
테라와다에는 ‘발리(bali)’라고 하는 공양의 다섯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 국가에 세금을 냅니다. 다음은 가족, 친지들을 챙기는 일입니다. 또 하나는 법을 설해 주시는 스님께 공양 올리고 보시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는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을 대접하는 겁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서 올리는 공양입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위해 올리는 공양물은 아귀계에 태어나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이 공양물을 올리면서 돌아가신 큰스님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을 냈다면 그 마음은 어디에 닿을까요? 천신들이 있다면 그것을 알아들을까요? 여러분의 말은 못 알아들어도 여러분의 마음은 받아들일 겁니다. 수행을 열심히 하는지 나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보일 겁니다. 그렇다면 천신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여러분 잘했습니다. 싸두 싸두 싸두” 하면서 여러분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또 뿐냐산또 큰스님을 위해 공양물을 올리고 회향했는데 실제로는 뿐냐산또 큰스님이 아니라 여러분이 과거 생부터 무수히 지어 왔던 인연 중에서 아귀계에 태어난 사람들이 여러분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여러분의 가족과 지인 중에서 돌아가신 분이 있을 겁니다. 스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님도 은사 스님께서 돌아가셨지만 어디에 태어나셨는지 모릅니다. 다만,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뵈었을 때 얼굴이 무척 평온했습니다. 돌아가신 모습도 굉장히 맑았습니다. 편안하게 잠드시듯 열반에 드셨습니다. 그렇더라도 큰스님께서 어디에 태어나셨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 이런 의식을 합니다. 그것을 보통 빨리어로 ‘빳띠다나(pattidāna)’ ‘빳띠 아누모다나(patti anumodanā)’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공양을 드리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공덕을 회향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공덕을 회향하기 위한 조건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은 함께 기뻐함이다. 청정하고 깨끗한 자질을 갖춘 사람들에게 공양물을 올림으로 인해서 올린 사람들이 깨끗한 마음이 되어 그것으로 인해 그 공양물들이 풍요롭게 되고, 그 공덕들이 나를 비롯한 돌아가신 분들께 회향된다.”
회향하지 않으면 본인 것만 됩니다. 회향함으로 인해 나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공덕이 나누어집니다. 스님들은 무엇으로 회향합니까? 법을 설하는 것입니다. 수행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공양물을 받고 보시를 받았을 때 항상 공덕 회향 게송을 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회향할 방법이 무척 많습니다. 헌혈도 회향입니다. 단체나 필요한 곳으로 기부하는 것도 회향입니다. 자원봉사 역시 여러분이 할 수 있는 회향입니다.
여기 불단에 놓여 있는 것은 큰스님의 바리때입니다. 이 바리때를 큰스님이라고 생각하고 꽃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공양물을 올리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은 오계를 수지하고, 경전을 독송하고, 법문을 들었습니다, 태국에서는 이런 때 방생도 합니다. 새를 날려 보내주거나 물고기를 놓아주며 수행할 때, 이럴 때도 반드시 끝나고 나서 회향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공덕으로 인해서 모든 이들이 행복하기를.’ 아니면 특정한 사람을 떠올리며 ‘돌아가신 큰스님께서 행복하시기를.’ 하는 마음을 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완전하다”라고 표현하셨습니다.
테라와다에도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여러 의식이 있습니다. 테라와다에 49재는 없습니다. 그 대신 돌아가시기 전 좀 더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호흡을 관찰하면서 돌아가실 수 있게끔 스님을 초청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잘되지 않습니다. 대부분 임종 후 스님을 모셔 염불을 청하지만 돌아가신 분께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봅니다. 엄밀하게 임종 후 염불은 살아 있는 분들의 마음이 안정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테라와다의 추모 의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만 돌아가시고 나서 일주일째, 또는 돌아가시고 나서 3주 또는 한 달째, 또는 매년 기일에 의식을 올립니다. 그 방법은 주로 스님들께 탁발 공양을 올리고, 스님들께 가사를 올리고, 스님들의 법문을 청해 듣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한 가지를 일주일이 됐든 한 달이 됐든 일 년이 됐든 관계없이 반드시 하게끔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이 세 가지를 다 하고 경전 독송도 함께 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아직 여러분들이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사람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코를 잡고 1분만 숨을 참아 보십시오. 고통스러워서 못 참습니다. 지금 움직이고 있는 이유가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함임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실제로 그렇습니다. 움직이지 않으면 고통스러워서 견디지 못합니다. 살아 있음 자체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어떤 결과가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쳐서 다음 생을 좌우할지 그것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할 것 같으면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한 움직임으로 자꾸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을 내더라도 싫어하는 마음이나 욕심부리는 마음이 아니라 베푸는 마음, 자애의 마음을 내어야 합니다. 탐욕이나 어리석음으로 인해서 움직이려고 하지 말고 분명히 알아차리며 움직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그 결과가 여러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왜 그러한가. 우리는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죽을 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결과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담마(dhamma)입니다. 담마만이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한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여러분이 언제 죽을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대신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금 현재 일어나고 사라지는 현상들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지금 말하고 행동하고 마음먹는 것에 있어서 선한 마음들을 많이 쌓도록 해야 합니다. 죽음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 있는 동안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큰스님을 추모하는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늙고 병들고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일으켜서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고 그 죽음으로 내 삶이 결정되기 전에 하루빨리 이 세상의 윤회에서 벗어나든지 아니면 선한 공덕을 많이 쌓아서 다음 생이 결정되도록 하든지 둘 중 하나는 하자는 겁니다.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은 호흡의 느낌을 분명하게 관찰하는 것입니다. 호흡의 느낌이 열반으로 대체되는 상태가 되도록 만들면, 여러분은 죽음이 와도 두렵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설혹 나에게 죽음이 닥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알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이 다시는 나쁜 곳으로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을 지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열심히 수행해야 합니다. 또 수행하지 않더라도 공덕을 쌓는 일을 등한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권장될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이라고 다섯 가지 공양방법인 발리를 정리하신 것입니다. 그것들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하고, 그러한 일을 했을 때 반드시 공덕을 회향하는 마음을 자꾸 가지시길 바랍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한국테라와다불교(이사장 떼짓사라 스님)가 4월19일 울산 붓다의길따라 선원에서 봉행한 ‘상가라자 뿐냐산또 마하테라 추모법회’에서 한국테라와다불교 초대 이사장이며 붓다의길따라 선원장 아짠 빤냐와로(진용) 스님이 설한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