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은 협력이다

연기적 관계성과 상호 의존성을 더욱 깊이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담긴 본능적 지혜

2025-06-27     성진 스님

강연을 다니다 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질문을 받곤 한다. 흔히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성선설이나 성악설, 그리고 원죄나 업의 개념으로 설명하곤 한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을 정의하려면 먼저 어디까지를 본성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

불교에서는 인간의 성품을 표층의식과 심층의식으로 나눈다. 표층의식인 제6식과, 이를 바탕으로 한 심층 무의식인 제7식(말나식)과 제8식(아뢰야식)으로 구분된다. 즉, 인간의 본성은 어떤 의식의 차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제6식인 의식적 차원에서는 인간의 성품이 선과 악, 옳고 그름과 같은 분별적 기준에 따라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세계는 의식적 인식의 범위를 초월한 영역이다. 인간의 무의식 세계에 대한 탐구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이는 ‘투명한 색’을 찾는 것처럼 어려운 과제다. 이러한 인간 본성에 대한 해답을 최근에는 진화생물학적 측면에서도 찾으려 하고 있다. 인간 또한 생명을 가진 수많은 존재 중 하나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제7식과 제8식의 심층 무의식 세계는 진화생물학적 접근으로 더 잘 설명될 수도 있다.

흔히 생명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자주 언급되는 책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이다. 도킨스는 유전자가 생존을 위해 협력하는 ‘상호 이타성’ 전략을 설명하며, 이는 인간 본성의 긍정적 측면을 드러낸다. 이러한 협력적이고 상호 의존적인 관계는 게임이론에서 말하는 비제로섬 게임(non-zero sum game)의 개념과도 잘 연결된다. 이후 로버트 라이트는 ‘Nonzero’에서 비제로섬 게임을 통해 인간 사회가 협력 속에 발전해왔다고 설명한다. 자연 세계의 진화 역시 근본적으로 협력과 공생이라는 비제로섬 게임의 원리에 따라 이루어진다.

불교의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는 중도(中道)의 연기법은 모든 존재가 서로 의존하여 존재한다는 관계성을 의미한다. 이는 생명체의 본능을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조화롭고 긍정적인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함을 알려준다. 인류의 역사는 협력과 상생을 통해 지속적으로 번영해 왔다. 가족, 부족, 국가와 같은 사회적 공동체는 협력 없이는 유지될 수 없다. 갈등이나 전쟁 역시 결국 협력과 평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즉, 연기적 관계성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는 것이 인간 본성에 담긴 본능적 지혜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경쟁이 아닌 협력과 공존임을 알아야 한다. 타인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기에,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한다. 오늘날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분열은 연기적 관계성을 망각한 채 본능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제로섬 사고의 결과이다. 이제 다시 연기와 중도의 정신으로 생존 본능의 협력적이고 긍정적인 면모를 인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의 본성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홀로 존재하지도 영원히 지속되지도 않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우리가 협력적이고 긍정적인 비제로섬 게임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일깨워준다.

성진 스님 남양주 성관사 주지 sjkr07@gmail.com

[1783호 / 2025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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