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번뇌가 왜 108가지인가요?

탐·진·치와 육근 만나 감정·번뇌 일으켜 수행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 고민 95%는 과거 또는 미래 오계, 번뇌없는 삶의 기반 계를 지키면 번뇌도 줄어

2025-06-27     덕산 스님

각 사찰에서 하안거(夏安居) 결제와 함께 100일 정진 기도가 이루어지고 있다. 정진 기도 중인 한 불자가 집에서 기도할 때 번뇌가 많아 정진이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분의 고민을 자세히 들어보니, 잡념 없이 일념(一念)으로 기도 정진을 하고 싶지만 잘되지 않는 듯했다. 과거와 미래, 또 과거에서 미래로 쳇바퀴 돌듯 잡념이 맴돌아 경전을 읽다가도 자주 놓친다고 하소연했다.

우리의 삶에서 번뇌는 왜 이리 많을까.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이 지닌 고민의 95% 이상은 지나간 일에 대한 회한,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안, 다른 사람과 관련된 걱정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근거 없는 걱정이든 당면 과제든 그것을 대하는 ‘마음 자세’에 따라 크게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는 해결책이 있어도 바꿀 수 없다고 여겨 결과가 좋지 않다. 반면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문제를 대하는 이는 어떻게든 원만하게 해결한다.

선 수행을 통한 정진도 ‘생사해탈’이라는,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 인간 본연의 문제에 초긍정의 자세로 몸과 마음을 다해 임하는 수행이다.

불교에서는 탐(貪)·진(瞋)·치(癡, 무명無明)·만(慢)·견(見)·의(疑)의 여섯 가지 번뇌를 근본번뇌(根本煩惱)라고 한다. 이 중 탐·진·치를 ‘유가사지론(瑜伽師地論)’에서는 3가지 근본번뇌로 보며, 불선(不善)의 뿌리, 즉 착하지 못한 근본이라고 한다. 또는 3독(三毒), 3불선근(三不善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같은 3독심의 장애가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며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괴롭힐 때 일명 ‘108번뇌’라고 부른다. 번뇌의 근본은 6가지인데 어떻게 108가지나 되는지 살펴보자.

우리의 몸은 눈, 귀, 코, 혀, 몸, 생각의 여섯 감각으로 살아간다. 불교에서는 이를 생명 활동의 뿌리라 하여 6근(根)이라 한다. 6근은 사물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데, 색깔·소리·냄새·맛·감각·법을 6경(境) 또는 6진(塵)이라 한다. 이 6근이 6경을 대할 때 여섯 가지 감수(感受)작용을 일으킨다. 즉 좋다[好], 싫다[惡], 그저 그렇다, 싫지도 좋지도 않다[平等] 같은 반응을 일으키며, 즐거움[樂], 괴로움[苦], 그 중간의 감정으로 반응한다. 

이를 정리하면 여섯 감각기관(6근)과 외부 대상(6경), 감수 작용을 곱하면 36이 되고, 이것이 과거·현재·미래의 삼세(三世)에 작용하므로 108번뇌가 된다.

기도 또는 선 수행자가 번뇌 없이 정진하려면 불선(不善)의 반대인 최고의 선(最善)을 닦아야 한다. 모든 선을 처음부터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악(惡)을 방비하는 자세가 우선이다. 이를 위한 최선의 조건은 원인을 만들지 않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불자오계(佛子五戒)를 지키는 일은 집을 짓기 전에 땅을 다지는 것처럼 안전하고 튼튼한 기반을 만든다.

계를 지키며 몸과 마음을 잘 다져가다 보면 ‘초발심자경문’의 첫 구절인 ‘나쁜 벗을 멀리하고 착하고 현명한 이들을 가까이 하라’는 ‘수원리악우(須遠離惡友)’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고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욕구가 많다는 뜻일 수 있다. 한꺼번에 다 이루려 하지 말고 잘하는 것부터 하다 보면 번뇌는 줄고 성취는 차곡차곡 쌓일 것이다.

이런 노력에 불보살님의 가피(加被)가 더해지면 모든 일이 순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처럼, 나는 얼마나 많은 회한과 불안, 타인과의 문제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덕산 스님 조계사 교육수행원장 duksan1348@nate.com

[1783호 / 2025년 7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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